무엇을 믿고 무엇으로 소통하는가-뮤지컬의 (이상적인) 레퍼토리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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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믿고 무엇으로 소통하는가-뮤지컬의 (이상적인) 레퍼토리화 방식
  •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 승인 2020.1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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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의 뮤지컬 인사이트]
▲ 뮤지컬_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사진(사진제공=CJ ENM)
▲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사진.(사진제공=CJ ENM)

창작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박천휴 작, 윌 애런슨 작곡)을 보면, ‘계속 살아 움직일 수 있는’ 레퍼토리 뮤지컬의 특징이 발견된다. 먼저, 시즌을 거듭하며 공연이 지속된다는 점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우란문화재단 시야 플랫폼 프로그램을 통해 개발되어 2016년 초연 때 대중과 평단의 고른 지지를 받아 2017년 앵콜 공연, 2018년 재연, 2020년 삼연(전성우, 양희준, 강혜인, 한재아, 성종완, 이선근 출연, 6월 30일~9월 13일)을 이어갔다. 최근 삼연에서는 코로나19 창궐로 취소되었던 공연 회차를 10월 26일, 11월 2일 양일간 온라인 공연으로 전환하여 ‘공연의 영상화’ 대열에 합류하기도 했다. 또한 <어쩌면 해피엔딩>은 초연에서 삼연을 거치는 사이 두 번의 해외 공연도 마쳤는데, 2017년 일본 도쿄 공연과 2020년 초 미국 애틀랜타 공연이 그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 사이에 서울과 제주에서 작가 박천휴 연출로 음악회(우란문화재단 주관, 2017)까지 열렸으니, 뮤지컬 한 편에서 파생될 수 있는 시도들이 다양하게 진행된 셈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새로 프로덕션이 꾸려질 때마다 공연에 변화가 생겼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초연 직후의 일본 공연은 신스웨이브가 제작하면서 김지호 연출(초연을 포함해 국내 공연은 김동연 연출이 계속 맡았다)로 새로 라인업이 구축되었고, 무대와 의상 콘셉트가 컬러풀하게 바뀌며 일본 시장에서의 문화할인율을 낮추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미국 공연은 제목을 영어로 직역한 <Maybe Happyending>으로 바꾸고 프로듀서 제프리 리차즈, 연출 마이클 아든 그리고 미국 현지에서 캐스팅된 아시아계 배우들로 라인업이 완성되며 3년의 기간을 거쳐 스몰 라이선싱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줄어든 러닝 타임부터 무대 콘셉트, 그리고 음악의 추가 및 삭제, 오케스트라 편성 확장 등 많은 부분의 변화가 있었지만, ‘미래의 서울’이라는 극 공간은 변하지 않았다. 700석 규모의 애틀랜타 얼라이언스 시어터에서 공연된 <Maybe Happyending>은 무대가 국내 버전보다 훨씬 디지털 베이스로 변화한 것이 특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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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사진.(사진제공=CJ ENM)

또한 국내 버전에서도 크고 작은 변화들이 있었는데, 가장 큰 변화를 보인 CJ E&M 제작(더블케이 필름앤시어터 제작대행)의 삼연은 피아노 컨덕터를 포함한 밴드가 무대의 2층에 배치되고 무대 중앙에 개폐되는 문이 달린 세트가 들어와 공간의 변화가 자유롭게 표현되며, 주요 연기공간으로 쓰이는 무대 공간에 상승하는 바닥이 첨가되고, 영상의 활용이 전체적으로 늘어나는 등 전반적으로 무대 미술에 변화가 생겼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 스타일과 보컬톤에 인공적인 느낌이 더욱 가미되어, 인물-로봇의 정체성을 명확히 했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래의 서울을 배경으로 폐기되기 직전의 고장 난 로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나,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핵심인 작품이다. 올리버의 오래된 재즈 LP판 수집 취미, 올리버가 식물(화분)과 절친한 친구이며 제주도에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에 병을 줍는다는 설정, 클레어와의 소통이 ‘실 전화기’로 시작되는 것,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의 감정이 수많은 반딧불과 함께 만개하는 것 등 작품은 오래된 것의 가치, 그리고 ‘만남과 접촉’을 통한 정서적 소통의 가치에 큰 무게를 싣는다. 삼연의 변화는 이러한 정서를 더 명확해진 미래-로봇의 형상화 방식과 균형점을 맞추는 선에서 이루어지고 있어 흥미롭다.

이처럼 하나의 작품이 다양한 프로덕션으로 확장되고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가장 큰 원동력은 작품을 양질의 수위로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창작진들의 열정과 노력에 있다. 꼼꼼하게 대본을 재검토하여 드라마의 흐름을 유연하게 다듬는 작업은 고통스럽고 지난하지만, 레퍼토리로서 작품의 생명력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올리버의 일상이 매우 ‘오랫동안’ 똑같은 패턴으로 되풀이되어 왔음을 우체부가 늙어가는 모습을 통해 보여준다든지, 올리버가 클레어의 충전을 도와주면서 결국 ‘받아들이는’ 과정을 발랄한 템포로 확장하여 극에 개연성을 높이려는 시도들이 눈에 띈다. 특히 최근 삼연에서는 배우의 자연스러운 보컬톤으로 노래하는 넘버를 지정하여 인물의 내면을 설명했는데, 이는 드라마를 넘버로 구사하는 매우 뮤지컬다운 선택으로서 정확한 강조점 아래 인물의 가장 솔직하고 정확한 심정이 토로되는 순간을 마련했다. 클레어역의 한재아 배우와 올리버역의 전성우 배우는 각각 ‘사람들로부터 배운 것’과 ‘나의 방 안엔(리프라이즈)’을 로봇의 인공미 대신 배우 본연의 톤으로 노래하여 인물의 ‘지금 현재’가 무엇인지 내밀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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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공연사진.(사진제공=CJ ENM)

따라서 결국 작품성이다. 작품에 대한 믿음은 이 모든 노력과 열정에 선행하는 근본적인 토대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고장 난 고물 로봇들의 사랑을 다루고 있지만, 인간 사이의 진정한 소통과 이해를 말하는 작품이다. 소재와 주제 사이의 절묘한 아이러니와 균형감은 <어쩌면 해피엔딩>의 작품성을 견인하는 핵심이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가꾸어져야 할 요소다. 정확한 약속과 철저한 수행에 근거한 예술적 비전은 레퍼토리의 생명력을 확장하고 지속시킬 것이다. 우리는 개발 당시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가꾸고 다듬어지지 않아 낡아 버린 작품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최승연·청강문화산업대 공연예술스쿨/뮤지컬평론가

런던대학교(로열 할러웨이)에서 연극학 석사를, 고려대에서 국어국문학 박사를 했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국제한국학센터 연구교수, 워싱턴 대학교(시애틀) 동아시아학과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강문화산업대학교 공연예술스쿨 교수로 있다. 주요 논저로는 “한국 창작뮤지컬에서 재현된 서울의 양상”, “여성국극의 혼종적 특징에 대한 연구”, “한국적인 것’의 구상과 재현의 방식”, “번역된 문화와 한국적 디코딩”, “‘근대적 지식인 되기’를 향한 욕망의 서사”, 『제국의 수도, 모더니티를 만나다』(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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