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도 뇌물은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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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에도 뇌물은 진화하고 있다
  •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 승인 2020.1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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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조니워커 레드’와 ‘켄트 담배 한 보로’ 학창 시절 내가 목격했던 결코 적다고 할 수 없는 뇌물이었다. 물건을 건네는 사람의 신속한 동작과 보는 눈이 많으니 어서 넣어두라는 조바심 어린 눈빛, 물건을 받는 사람의 순간적인 당혹감과 놀라움이 묻어나는 시선 그리고 이내 공모자의 시선이 되어버리는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 생생한 장면들이다. 뇌물이 횡행했던 그 시절보다 적어도 관례적인 뇌물은 줄어든 오늘날이 더 청렴한 사회가 되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고대에도 현대에도 뇌물은 있었고 앞으로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뇌물의 역사』(이야기가 있는 집)는 서가에서 꺼내기가 민망한 책이다. 뇌물 자체가 은밀하게 주고받는 법인데 그것을 다룬 책을 본다는 것이 혹시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비추어지지는 않을지 괜한 걱정이 들어서이다. 이 책의 미덕은 그야말로 ‘뇌물의 역사’를 동서고금을 망라하여 흥미롭게 전해준다는 것이다. 조선시대를 우리나라 뇌물의 역사에서 정점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상세한 기록이 있다는 점에서 뇌물과 관련된 일화를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게 해준다. 뇌물은 그 액수나 규모 면에서 왕을 능가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만 뇌물을 받았다고 왕이 처벌받는 것은 아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연산군은 “이 땅의 들꽃 하나도 다 내 것이다”라고 했다. 더 압권인 것은 태종의 말이다. “왕에게 뇌물을 바쳤다고 처벌하는 경우가 있느냐?” 아무리 권세가 대단한 신하라고 해도 왕에게 대적할 것이 아니라면 입을 다물게 하는 한마디 말이다. 반면에 도둑을 잡는 포도청이 부패한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우선 과학수사 기법을 사용할 수 없다 보니 협박과 고문에 의존하게 되었고 억울한 피해자 혹은 피해자를 자처하는 사람은 뇌물을 써서 위기를 모면해야 했다. 포도청과 우범자의 공생 관계, 포졸의 적은 월급도 뇌물이 오가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았다.

서양의 뇌물 역사에서 종교와 왕권은 중요한 역할을 했다. 교황은 가톨릭이라는 종교의 수장이지만 교황청의 재산과 영토를 지켜야 할 세속 군주이기도 했다. 군대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용병이 필요했고 그들에게 급여를 주려면 돈이 있어야 했다. 15세기 이노첸시오 8세는 추기경들에게 뇌물을 주어 교황으로 선출된 뒤 들어간 돈과 용병에게 들어갈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관직을 크게 늘렸다. 교황의 명령서에 납땜을 붙이는 봉납 서기만 52명이었다니 굳이 다른 예는 찾아보지 않아도 될 듯싶다. 의례 뇌물은 아랫사람이 출세를 위하거나 처벌을 면하기 위해 윗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그 반대인 경우도 빈번하다. 이른바 ‘빵과 서커스’ 정책의 상징물인 콜로세움을 보면 뇌물은 위에서 아래로 가기도 한다. 네로에 이어 로마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는 전임 황제의 궁전 터에 로마인을 위한 공용 극장인 콜로세움을 세우게 했다. 황제는 시민들에게 싫증나지 않게 하고 그들의 다양한 기호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검투사와 맹수의 대결 같은 고전적인 싸움 말고도 유대가 로마에 멸망당하는 스펙터클한 장면까지 연출했다.

뇌물과 관련된 미국의 역사도 흥미롭다. 링컨이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배경에는 부정부패와의 단절이 있었기 때문이라니 말이다. 전쟁 장관에 임명된 캐머런은 전쟁을 감당할만한 그릇이 못되었고 그의 내각에는 제대로 된 서류도 없이 이루어진 불투명한 계약과 부정부패가 만연했다. 링컨은 캐머런을 해임하고 변호사 시절 그를 긴팔원숭이라고 불렀다는 스탠턴을 장관에 임명하여 뇌물과 청탁을 엄단한 결과 남북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 뇌물 스캔들로 사약을 받고 최후를 맞은 우암 송시열(왼쪽)과 백호 윤휴
▲ 뇌물 스캔들로 사약을 받은 우암 송시열과 백호 윤휴

뇌물로는 돈이 최고지만 현물경제 시대 조선에서는 교환이 가능하고 가치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쌀이 그 역할을 대신했다. 저장과 이동이 가능한 젓갈도 중요한 뇌물 품목이었다. 담배와 인삼도 조선시대 뇌물의 역사에서 획을 긋는 품목으로 지적된다. 일반적인 상거래와 구분이 어렵고 현금화가 쉬웠으니 말이다. 이 책의 저자는 뇌물을 준 자 뿐 아니라 받은 자까지 처벌하고 스폰서형 뇌물도 금지한 세종을 김영란법의 원조라는 해석을 덧붙이기도 한다. 다만 세종도 뇌물에 대해서는 쌍방처벌이라는 원칙은 세웠지만, 실제 사안에 대해서는 모두 처벌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지적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뇌물의 근본적인 척결과 잘못에 따른 처벌은 원칙에 기반한 정의의 문제와 현실론이 맞물리면서 실천하기 어려운 과제가 되고 만다. 중국에 대한 조선의 조공 혹은 뇌물, 국제 거래에서 사업 수주를 위해 오간 뇌물, 외국에서 일어난 뇌물 사건에 대한 국내법 적용 여부 등이 현실론을 만들어낸 예시들이다. 그럼에도 뇌물죄에 있어 예외조항이 늘어나다보면 부패의 고리는 끊어지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다.


박아르마 서평위원/건양대·프랑스 문학

건양대학교 휴머니티칼리지 교수. 서울대 대학원에서 프랑스 현대문학을 전공하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 휴머니티칼리지 브리꼴레르 학부 학부장과 박범신 문학콘텐츠 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지은 책으로 『글쓰기란 무엇인가』, 『투르니에 소설의 사실과 신화』가 있고, 번역한 책으로 『살로메』, 『춤추는 휠체어』, 『까미유의 동물 블로그』, 『축구화를 신은 소크라테스』, 『칸트 교수의 정신없는 하루-칸트 편』, 『데카르트의 사악한 정령-데카르트 편』, 『녹색 광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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