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판단의 보편적 잣대에 대한 요청: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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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 판단의 보편적 잣대에 대한 요청: ‘힘의 논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한 전제
  • 선우현 청주교육대·철학
  • 승인 2020.1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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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도덕 판단의 보편적 잣대는 존재하는가: 일상적 삶의 실천철학적 이해』 (선우현 지음, 울력, 383쪽, 2020.09)

1. 최근의 우리 사회를 들여다보면, 사회 전반에 걸쳐 온통 ‘진영논리’가 판치고 있음을 간취하게 된다. 주요 정치적 이슈는 말할 것도 없고, 부동산 정책을 비롯한 경제적 현안이나 다양한 사회 문화적 문제들의 경우에도, 그것의 옳고 그름과 도덕적 선악 판단, 규범적 정당성의 여부는 거의 전적으로 진영논리에 의거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자신이 속하거나 지지하는 집단에 의해 선택되고 결정된 사안과 입장은 무조건적으로 옳고 정당한 반면에, 자신과 다른, 무엇보다 정치적·이념적 차원에서 대립적 위치에 놓인 상대 진영의 견해나 주장은 전적으로 그르고 잘못된 것으로 간주된다. 이렇듯 구성원들로 하여금 비이성적인 불합리한 사유와 판단을 수행토록 호도함으로써 한국 사회를 두 적대적인 진영으로 나누어 이분법적 대립구도로 고착화하면서, 상호 간에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 대결을 부추기는 진영논리는 본질상 ‘유사(類似) 힘의 논리’에 다름 아니다.

주지하다시피 특정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려는 정부의 시도에 맞서 야권 진영이 거세게 반발하며 저항하는 경우, 그러한 정책의 강행이 ‘정치철학적 차원’에서 타당하고 올바른 것인가의 여부를 객관적으로 따져보기 위한 ‘합리적인 민주적 방안’으로 주어진 것이 다름 아닌 ‘이성적 토론과 논쟁’이다. 하지만 진영논리는 그러한 ‘보편적인 절차적 판단 방식’을 거부한 채, 자신들의 정책적 시각과 입장만이 전적으로 옳다고 강변하면서 상대 진영에게 일방적인 수용 혹은 철회를 강요하는, 집단적 이해관계의 정략적 관철을 위한 ‘정치 공학적 논리 체계’로서 기능한다. 그에 따라 이런 경우에, 정책 추진을 둘러싸고 격렬하게 대립하는 두 진영 가운데 어느 편이 정치윤리의 관점에서 규범적 원칙에 합당하며 정당성을 지니고 있는가는 현실적으로 어느 진영이 보다 더 막강한 권력과 힘, 실질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이 점에서 진영논리는 전형적인 ‘반(反)민주적인 힘의 논리이자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논리’에 다름 아닌 것이다.  

2. 한데 이러한 진영논리로 인해 야기될 수 있는 보다 중대한 문제점은, 윤리적으로 결코 정당화될 수 없는 주장이나 사안 등을, 막강한 현실적 힘을 지닌 권력 집단이나 세력이 나서서 마치 정당한 것인 양 강변하여 오인시키는 경우에 대다수 사회 구성원들은 얼마든지 그것들을 타당한 것으로 인식하여 수용할 여지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게다가 진영논리에 입각하여 자신의 정당성을 상대방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상호 투쟁적 대결 사태가, 이념적·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야 간에 장기화될 시, 윤리적 판단 과정에서 극심한 피로감에 젖게 되는 사회 구성원들은 대체 어느 쪽이 옳고 그른지를 온전하게 파악하지 못한 채, 양자 모두에게 문제가 있는 양 양비론적 시각에 따라 해석하게 됨으로써, 정치적 현실에 대한 실망을 넘어 환멸을 드러내면서 체념적 무관심 상태에 처하기 십상이다. 그에 따라 개별 구성원들이 위임한 통치 권력을 사적·집단적 이익의 증대와 기득권 강화를 위해 남용하는 특정 정치 세력의 부도덕한 악행은 용인되어 버린다. 반면, 그에 따른 폐해는 고스란히 시민 구성원들 각자에게 귀착되는 ‘민주주의-퇴행적인 사태’가 연출된다.

이에 더해 유념해 볼 또 하나의 사항은, 진영논리가 사회 전반에 걸쳐 규범적 판단의 척도로 작용하는 상황 속에서의 개별 구성원들의 처지란, ‘정당성이 결여된 지배 권력에 전적으로 예속된, 그런 한에서 자율성과 자유를 상실한 노예적 삶’을 살아가고 있음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신이 속한 진영의 행태를 맹목적으로 옹호 지지한다는 것은, 진영논리의 구현체인 특정 지배 권력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 조종되어 그것에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 다소 과한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처럼 진영논리가 현 한국 사회를 전일적으로 장악  지배해 나가고 있다는 비판적 진단은 쉽게 부정하기 어렵다. 결국 이는 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을 통해 실질적 민주주의를 온전히 구현하고 그 바탕 위에서 누구나 주체적이며 구속되지 않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시급히 이러한 진영논리의 굴레에서 벗어날 필요성이 있음을 말해준다.

4. 이러한 문제 상황과 관련하여, 이 책은 특정 정치 세력이나 권력 집단, 언론 매체와 지식인 집단의 그 어떤 입장이나 주장에도 휘둘리지 않고, 시민 구성원들 각자가 주어진 사태와 문제 등에 관해 직접 ‘객관적 도덕 판단’을 시도해 봄으로써 그것들의 ‘본질적 실체’를 비판적으로 통찰함과 동시에 그것들이 수용할만한 ‘규범적 정당성과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가의 여부를 제대로 판별해 낼 능력을 온전히 갖추게끔 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기획, 집필되었다. 이때 도덕 판단은 자유롭고 평등한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의 과정을 거쳐 문제시되는 사안의 정당성과 부당성을 판별하는 ‘담론윤리의 의사소통적 절차 방식’에 의거하여 이루어진다.

5. 사정이 이런 만큼 이 책은 철학의 분과학(分科學)들 가운데 윤리학과 도덕철학, 정치·사회철학을 아우르는 ‘실천철학’의 관점에서, 한국 사회 현장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와 쟁점, 논란 등을 비판적으로 분석·검토해 보고 그것들의 윤리적 정당성 여부를 온전히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도덕성의 두 원천인 ‘좋음’과 ‘옳음’에 관한 충분한 이해와 그것들 각각에 기초하여 수립되는 ‘도덕 판단의 객관적 척도’ 그리고 그것에 입각하여 이루어지는 ‘도덕적 판별 절차’ 등에 관해 담론윤리에 관한 규명을 중심으로 비교적 상세한 해명을 개진하였다. 이어 좋음과 옳음에 입각한 두 윤리적 판단 형식이 지닌 강점과 한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일상적 삶의 현장에서 자주 접하게 되는 본질상 ‘가치 연관적인’ 사안들에 관해 제대로 된 도덕적 통찰 및 판단을 시도해 봄으로써 ‘도덕적 정당화의 가능성’을 논리적으로 따져볼 수 있는 다양한 주제와 논제들을 다룬 글들을 배치하였다. 곧 정치적 현안과 직결된 주제들에만 국한하고 있지 않다. 대신, ‘디즈니 만화영화는 성장기 아동들에게 대단히 유익하고 교육적이라는 주장은 과연 규범적으로 타당한가?’, ‘동성애는 과연 비정상적이며 부도덕한 행위인가?’라는 물음들에서 드러나듯, 교육, 환경, 문화, 사회 등 상이한 가치 영역들에서 빈번히 마주치게 되는 여러 현실적 문제 및 사태들에 관해 실제로 윤리적 가치판단을 내려 봄으로써 주어진 현상과 사건들의 본질적 실체를 간파하고 그것의 규범적 타당성과 부당성을 완결된 수준에서 판별해 낼 수 있는 ‘보편적 도덕 판단 능력’을 함양하는 데 초점을 맞춘 탐구 주제 및 내용들로 책의 각 장을 구성하였다.


선우현 청주교육대·철학

연세대 철학과와 서울대 철학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한철학회 부회장과 사회와철학연구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청주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회비판과 정치적 실천』, 『우리시대의 북한철학』, 『위기시대의 사회철학』, 『홉스의 리바이어던』, 『한국사회의 현실과 사회철학』, 『자생적 철학체계로서 인간중심철학』, 『평등』, 『다시 민주주의다』(편), 『한반도의 분단, 평화, 통일 그리고 민족』(편)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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