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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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0.11.0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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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성 정치학 | 케이트 밀렛 지음 | 김유경 옮김 | 쌤앤파커스 | 736쪽

사회 곳곳에 뿌리 깊게 자리 잡아 제도화된 남성 중심 지배 이데올로기인 가부장제 아래에서 여성은 교묘한 형태로 “내면의 식민화”에 빠지게 된다고 진단하며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을 최전선에서 이끈 케이트 밀렛의 《성 정치학》 초판 출간 50주년 기념 한국어판이다. 이 책은 ‘정치’를 정당을 중심으로 한 협소한 개념으로 보지 않고 “권력으로 구조화된 관계와 배치”로 정의해 가부장제에서 성(性)이 지니고 있는 정치적 함의를 분석했다. 이 때문에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이다(The Personal is Political)’라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제2물결 페미니즘 운동의 이론적, 철학적 토대를 제공할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헨리 밀러, 노먼 메일러, 장 주네의 작품을 통해 남성과 여성의 관계 속에 내재된 지배와 권력의 개념을 분석하고 성 혁명과 관련한 이론을 제시한다. 2부는 미완으로 끝난 첫 번째 성 혁명과 이후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하는 보수 반동 세력의 역사적 사례를 조명한다. 마지막 3부는 D. H. 로렌스, 헨리 밀러, 노먼 메일러로 대표되는 반 페미니즘 작가의 작품을 분석하며 가부장제가 어떻게 유지되어 왔는지 살펴보고 있다. 마지막 장 주네의 경우는 앞서 소개된 작가들과 달리 동성애라는 금기에 대항하는 모습을 중심으로 《성 정치학》이 불러올 두 번째 물결에 대한 기대를 나타낸다.

헨리 밀러의 《섹서스》에 등장하는 적나라한 성애 묘사로 시작하는 1부는 페미니즘 문학 비평의 첫 장을 연 역사적인 저술로 독자를 이끈다. 친구의 아내를 유혹해 성관계를 갖는 모습(헨리 밀러, 《섹서스》)을 통해 자신이 가진 권력을 자랑하듯 보여주거나, 아내를 살해한 후 하녀를 성폭행하면서 지배 욕구를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있다(노먼 메일러, 《미국의 꿈》). 이처럼 철저하게 여성을 ‘지배’하는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을 대상화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넘어 자신의 의지에 따라 마치 ‘사육’하려는 모습을 통해 가부장적 사고방식을 정당화하고, 독자의 욕망을 채워주며, 결과적으로 현실에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고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옴을 보여준다. 반면 장 주네의 작품을 통해 사회가 만들어낸 ‘남성성’과 ‘여성성’을 조명하고 성이 문제의 핵심에 깊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고 설명한다. 밀렛은 이어서 완벽하게 사회화 체계를 갖춘 가부장제의 권력 작동 방식을 이데올로기, 생물학, 사회학, 계급, 경제ㆍ교육, 폭력, 인류학, 심리적 측면까지 다양한 시각에서 분석하고 해체한다. 이를 통해 왜 성을 ‘정치’의 범주에서 고찰해야 했는지 증명한다. 이를 통해 기존의 제도와 체제로는 변화를 이룰 수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2부에서 제1물결 페미니즘 운동 과정과 반동기를 세밀하게 돌아보며 진정한 혁명적 변화는 남녀 간의 정치적 관계의 근본적인 영향을 주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제1물결 페미니즘 운동이 참정권으로 대표되는 제도적 개혁의 성과를 평가하고 있다. 다만 “지나치게 중요한 문제가 되어버린” 참정권 쟁취처럼 자체의 불완전함으로 운동이 와해되고 반동기를 불러옴을 지적한다. 사실 이러한 결과는 불가피한 일이기도 했다. 여성으로부터 도전을 받은 가부장제는 “과학이라는 최신식 언어”를 동원해 전통적인 성 역할을 정당화하고 여성의 기질적 열등함을 증명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로 ‘남근 선망 이론’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동원한 프로이트를 꼽으며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비판한다.

영문학자인 밀렛은 3부를 통해 대표적인 반 페미니즘 작가 3인(D. H. 로렌스, 헨리 밀러, 노먼 메일러)의 작품에 내재된 가부장제 부활에 대한 욕망을 낱낱이 파헤친다. 여성을 ‘제물’로 여기며 살해 행위로서의 성관계를 묘사한 로렌스, 이상적인 여성이란 창녀라고 생각하며 “절대적 음부”라는 기능으로 여성을 한정한 밀러, 진정한 남성성을 폭력과 전쟁의 이미지로 다룬 메일러까지 “위협을 받으며 궁지에 몰린” “남자다움”을 지키기 위해 하나같이 성을 왜곡하는 모습을 보이며 여성을 공격하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한다. 밀렛은 현대 작가 중 유일하게 장 주네만이 억압당하는 집단으로 여성을 그리고 있다고 말하며 앞선 작가와 주네를 대비시키고 있다. 이것은 주네가 성 역할을 통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성애라는 금기에 대항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제2의 성 혁명 물결은 마침내 인류의 절반을 태곳적부터 계속되어온 예속에서 해방하려는 목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를 인간애로 훨씬 더 가깝게 갈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다. 심지어 가혹한 현실 정치에서 성의 범주를 제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는 우리가 지금 사는 사막에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낼 때만 가능하다.”(711쪽,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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