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베리아(Siberia)라는 지명은 종족명 시버(錫伯, Sibe)에서 유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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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베리아(Siberia)라는 지명은 종족명 시버(錫伯, Sibe)에서 유래한다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11.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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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28)_시버(錫伯, Sibe)에서 유래한 시베리아(Siberia) 지명

우리말로는 시베리아라고 읽는 동토(凍土) Siberia를 영어로는 싸이비리어[saibíəriǝ]라고 하는데.......

▲ 시베리아 설원 풍경

 

북방에서--백석(1912~1996)

아득한 옛날에 나는 떠났다
부여(扶餘)숙신(肅愼)발해(勃海)여진(女眞)요(遼)금(金)
흥안령(興安嶺)음산(陰山)아무우르숭가리
범과 사슴과 너구리를 배반하고
송어와 메기와 개구리를 속이고 나는 떠났다

나는 그때
자작나무와 이깔나무의 슬퍼하든 것을 기억한다
갈대와 장풍의 붙드든 말도 잊지 않었다
오로촌이 멧돌을 잡어 나를 잔치해 보내든 것도
쏠론이 십리길을 따러나와 울든 것도 잊지 않었다
..................(중략)


어려서, 아마 중학교 2학년 때 쯤, 이광수의 소설 『유정』을 바탕으로 한 영화 <유정>을 본 적이 있다. 거기 눈 덮인 설원 시베리아가 있었다. 시대적 상황으로 보아 물론 현지 로케이션은 아니었을 것이다. 시베리아는 광활한 지역이다. 서로는 우랄산맥에서 동으로는 태평양 연안까지, 남으로는 카자흐스탄 초원과 중국, 몽골 국경지역, 북으로는 북극해까지 미치는 광대무변한 공간이다. 이 일대에 산재해 사는 사람들을 중국인들은 통칭 북방민족이라 부른다. 위의 백석의 시 <북방에서> 초반에 나오는 아무우르는 흑룡강을, 숭가리는 송화강을 가리킨다. 우리가 만주라 부르는 곳에 속한다. 여기 사는 사람들, 오로촌, 쏠론 등은 동북민족이라고 한다. 오로촌은 ‘오론’ 즉 ‘순록’ 유목민이다. 쏠론(索倫, 색륜)은 황서랑(黃鼠狼, 누런 족제비)인 ‘솔롱고’를 토템으로 하는 종족을 가리킨다. 과거에 다 우리와 이웃해 살던 족속이다. 이 중에는 선비족(鮮卑族)이 있었다.
 
선비족은 기원전 1세기~기원후 6세기에 오늘날 러시아 아무르강, 중국 측 표기로는 黑龍江(헤이룽장)과 다싱안링(大興安嶺) 일대에서 형성되어 점차 중원으로 이주한 북방 유목민족이다. 선비족의 일파로 위진남북조 시기 북위정권을 수립한 탁발선비의 역사서인 『위서(魏書)』 서기(序起)에 따르면 탁발선비는 대선비산에서 흥기했다. 대선비산은 지금의 다싱안링이다. 이후 탁발선비는 훌룬 부이르(훌룬 호수)로 이주하였고, 일부는 다시 험난한 노정을 거쳐 남쪽의 음산(陰山) 북부로 이동한다.

선비족을 구성하는 주요 하위 집단에는 탁발부(拓跋部), 모용부(慕容部), 단부(段部), 우문부(宇文部), 걸복부(乞伏部), 독발부(禿髮部)가 있다. 탁발은 ‘순록’인 ‘tabu’의 한자어 음사이며, 우문은 ‘동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모용은 ‘풍부한, 부유한’이라는 뜻의 몽골어 ‘bayan’과 같다.
 
싱안링 산맥이 자리한 랴오닝성(遼寧省)의 모용선비 유적에서 다량의 철갑(鐵甲, 쇠붙이를 겉에 붙여 지은 갑옷)과 등자(鐙子, 말안장에 달린 발 받침대)가 출토되면서, 이곳이 등자의 기원지로 주목을 받고 있다.
 
모용씨 선비족은 전연(前燕), 후연(後燕), 서연(西燕), 남연(南燕) 등을 개국했는데, 부족명으로 모용이 쓰이게 된 경위는 단순하다. 선비족은 大人[大酋長, 대추장]의 이름을 따서 부족명을 짓는 관습이 있었는데 삼국시대 河北省 右北平 서쪽 上谷에 이르는 지역에 목연(木延)이라는 이름을 가진 대인이 인솔하는 선비계 부족이 출현한 이래 대인의 이름을 따라 그 족속을 모용씨(慕容氏)라 칭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역사학자 시라토리 쿠라키치(白鳥庫吉) 역시 모용씨에 대해 ‘부유한, 풍부한’이라는 뜻의 몽골어 바얀(bayan, 伯顔)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추정했다. 하나의 선비어에 대한 이표기 목연(木延/mu yan/), 모여(慕輿/mu yu/), 모용(慕容/mu rong/) 등은 또 다른 한자어 백안(伯顔)으로 표기된 몽골어 ‘bayan’과 같은 뜻의 말이다. 慕의 발음이 민남어(Min Nan) 중 호끼엔 방언(Hokkien) 즉 복건화(福建話)에서는 bō로 구현된다.͘ 참고로 중국어에서 話는 사투리, 방언을 가리킨다. 木의 발음은 호끼엔과 테츄 방언(Teochew, 潮州話, 즉 Chaozhou dialect)에서 각각 bok과 bhag으로 실현된다. 외국어 음사를 위해 반절(半切) 표기를 사용하는 중국인들에게 종성인 받침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조주화도 민남어의 하나로 광동성 동부 조산(潮汕) 지역 거주 테츄인(조주인)들이 구사하는 조산화(潮汕話, 조산방언)를 말한다.
 
실위족의 추장을 가리키는 명칭 막하돌(莫賀突)에서의 莫의 발음도 호끼엔 방언에서는 bo̍k / bo̍h로 실현된다. 따라서 莫賀突은 몽골어 bataar(勇士)와 대응되는 한자어 표기라고 할 수 있다. 시베리아라고 하면 바이칼 호수가 연상될 것이다. 바이칼 호수 동남쪽은 늑대족 부리야트(the Buriats)의 주거지다. 만주의 영어 명칭이 만주족의 땅이라는 뜻의 Manchuria이듯, Siberia라는 지명은 시버족(錫伯族, Sibe, Sibo, Xibo)에서 유래한다. 우랄산맥 동쪽에서부터 예니세이 강에 이르는 시베리아 남부 삼림지대에 사는 시베리아 타타르족의 “잠자는 땅”이라는 뜻의 말 시브 이르(Sib Ir)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시베리아 타타르족은 자신들을 “오래된 거주민”이라는 뜻으로 예를레 카를룩(Yerle Qarluq, 葛邏祿 갈라록)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근래 이주해 온 볼가 타타르와 자신들을 구별 짓기 위해서다. 나는 여기서 카를룩(qarluq)이 신경 쓰인다. 카를룩은 “눈의 사람”이라는 뜻이 종족명이라서다.   
 

▲ 1882년 헨리 랜스델이 그린 청나라 옷차림의 시버족 군인들의 모습
▲ 1882년 헨리 랜스델이 그린 청나라 옷차림의 시버족 군인들의 모습

나는 시버족이 선비족, 실위족의 계보를 잇는 집단일 것으로 의심한다. 시버족의 자칭은 Xibo나 Sibe가 아니라 Śivə로 이는 실위(室韋)의 음가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의심할 일이 참 많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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