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없음※ 관람 전 예습 필수! 영화 〈테넷〉의 물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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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없음※ 관람 전 예습 필수! 영화 〈테넷〉의 물리학
  • 손승우 한양대·응용물리학과
  • 승인 2020.11.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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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리포트]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듯 비디오 대여점에서 비디오를 빌려 보던 시절이 있었다. 옛날옛적 이야기 같지만 불과 십여 년 전의 일이다. 현재 스트리밍 서비스로 인기를 끌고 있는 세계적인 기업 넷플릭스도 미국의 비디오 대여 체인점에서 시작했다. 비디오로 영화를 보다 어떤 부분이 이해되지 않으면 되감기 버튼을 눌러 뒤로 되돌아가 영화를 다시 한 번 보곤 했다.

그 되돌아가는 과정에서는 화면의 모든 영상이 지금껏 보던 것과는 반대로 돌아간다. 사람들이 뒤로 걷고, 멈춰있던 자동차가 뒤로 달리기 시작하고, 엎질러진 물이 다시 컵에 담긴다. 그중 어떤 장면은 거꾸로 돌렸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다. 원하는 지점에 도달하여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면 지금까지 거꾸로 본 영상이 다시 자연스럽게 흘러간다.

요즘은 마우스 커서를 즉시 움직여 원하는 위치를 몇 번 클릭해 찾기 때문에 뒤로 감기 버튼을 누를 일이 없다. 원하는 위치를 기다리며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경험이 생소해졌다. 기술의 발전이 시간을 아낄 수 있는 편리함을 주는 대신에 우리에게서 경험을 앗아간다. 이제는 누구도 좋아하는 가수의 곡을 거꾸로 들으니 어떤 몽환적 목소리가 들린다고 호들갑 떨지 않듯이 말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테넷>은 우리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다면 어떤 것이 가능해질까를 상상해 보도록 한다. 한 번도 경험해 볼 수 없었던,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상황이 이물감처럼 불편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영화 안에 담겨있는 물리학적 원리를 이해한다면 영화가 좀 덜 불편할까? 영화의 중심이 되는 시간과 엔트로피부터 살펴보자. (영화를 아직 못 본 독자를 위하여 영화의 스토리는 최대한 언급하지 않으려 한다.)


포인트1_시간

▲ 영화 테넷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을 그려낸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 영화 <테넷>은 시간의 흐름을 거스를 수 있을 때 생길 수 있는 일을 그려낸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고전역학(고등학교와 대학교 일반물리 과정의 대부분)에서 ‘시간’과 ‘공간’은 물체의 위치와 상태를 표현하기 위하여 주어지는 절대적인 좌표와 같다. 쥐고 있던 공을 놓아서 떨어트리는 자유낙하 과정을 상상해 보자. 공을 손에서 놓는 순간 정지해 있던 공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중력을 받기 때문이다. 뉴턴의 운동 법칙 는 가해진 힘에 대해서 질량을 가진 물체가 어떻게 가속하는지 기술한다. 중력은 질량에 비례하기에 모든 물체의 가속도는 중력가속도로 같다. 일정한 가속도는 속도를 일정하게 증가시킨다. 즉, 공의 속도는 점점 일정하게 빨라지며 공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이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서 거꾸로 돌려 보자.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면 어떻게 보일까? 바닥에 있는 물체가 위쪽으로 움직인다. 움직이는 방향이 반대되었으니 분명히 속도의 방향이 바뀌었다. 거꾸로 돌리는 1초와 시간이 바로 흐르는 1초 동안 공이 움직이는 거리는 같다. 그러니 속도의 크기는 시간의 방향과 관계없이 이전 상황과 같다. 속도의 크기는 같으나 방향만 반대이다. 공은 위로 움직이며 속도를 서서히 늦춰 손에 도달한다. 누군가 공을 바닥에서 던져 올려 준 것과 구분할 수 없다. 중력 또한 그대로 작용하고 있다. 이럴 경우 우리는 시간이 바로 흐르는 것과 거꾸로 흐르는 것을 구분할 수 없다. 이를 가역적이라 한다. 영화의 예고편에 바로 이 장면이 나온다. 처음에 물체가 바닥에 가만히 놓여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면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지 알 수 없다.

▲ 테넷의 예고편에는 바닥에 놓였던 물체를 거꾸로 올려 잡는 장면이 나온다. 떨어지는 공과 손에 잡히는 공은 속도의 크기는 같으나 방향만 반대인 운동을 한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 <테넷>의 예고편에는 바닥에 놓였던 물체를 거꾸로 올려 잡는 장면이 나온다. 떨어지는 공과 손에 잡히는 공은 속도의 크기는 같으나 방향만 반대인 운동을 한다.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반면 공을 바닥에 굴리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구르던 공은 서서히 멈춘다. 바닥이 아이스링크나 볼링장 레인과 같이 미끄럽다면 공이 멈추지 않고 계속 구르겠지만, 마찰이 있는 바닥에서는 구르던 공이 이내 멈춘다. 이를 영상으로 찍어서 거꾸로 돌린다면 어떻게 보일까? 바닥에 있던 공이 점점 빨라져 내 손으로 돌아올 것이다. 보고 있는 영상이 자연스럽지 못함을 바로 안다. 이런 비가역 과정은 시간을 거꾸로 돌려보면 알 수 있다. 폭발이 일어나고, 연기가 퍼지고, 모여 있던 구슬이 흩어지는 것이 모두 비가역 과정이다.

포인트2_엔트로피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라 비가역 과정에서는 엔트로피(entropy)가 증가한다. 엔트로피는 계의 상태에 따라 계산되는 값으로 열역학적 정의와 통계 역학적 정의가 있는데, 다음의 예를 통해서 통계 역학적 엔트로피의 정의를 조금만 이해해 보자. 아래 그림과 같이 A, B 두 개의 상자가 있다.

공 하나를 두 상자 중에 하나에 넣는다. 두 가지 경우가 가능하다. 그 가능성이 반반으로 공이 상자 A에 있는 상태의 엔트로피와 공이 상자 B에 있는 상태의 엔트로피는 같다. 이번엔 공이 두 개인 경우를 생각해 보자. 공 두 개가 모두 A 상자 안에 있는 경우는 전체 네 가지 경우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공이 A, B 상자에 각각 하나씩 들어 있는 경우는 전체 네 가지 경우 중 두 가지 상황에 해당한다. 공이 A, B 상자에 각각 하나씩 들어 있는 상태는 공이 한 상자에 모여 있는 경우보다 엔트로피가 두 배 크다.

공이 매우 많아지면 모든 공이 한 상자에 모여 있는 것은 매우 작은 확률을 갖는 상태가 된다. 즉, 엔트로피가 작은 상태이다. 그에 비해 적당히 공이 퍼져있는 상태는 큰 엔트로피를 갖게 된다. 열역학 제2 법칙에 따르면 고립계에서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 즉, 공이 적당히 퍼져있는 상태에서 공이 한 상자로 모이는 일은 에너지 출입 없이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한 상자에 가지런히 모여 있던 공이 적당히 흩어지는 것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가능하다는 것이다. 조그만 병 안의 향수가 방안에 가득 퍼져나갈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듯 열역학 제2 법칙은 시간의 흐름과 엔트로피의 증가를 연관 지어 준다. 이에 아서 에딩턴은 1928년에 출판된 그의 저서 <물리적 세계의 본성>에서 다른 물리 법칙과 다르게 열역학 제2 법칙만이 시간의 화살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만 있다면 시간이 거꾸로 흐를 수 있을까?’ 영화 <테넷>은 이러한 상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영화 <테넷>에서 인류는 가까운 미래에 ‘알고리즘’을 이용한 ‘인버전’ 기술을 갖게 된다. 인버전은 물체가 시간을 거스를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다. 인버전된 물체의 파편은 바닥에서 거꾸로 올라와 주인공의 손에 놓이고, 인버전 총알은 총을 겨누는 순간 벽에서 튀어 나와 주인공의 총 안에 다시 장전된다. 총을 쏘는 것이 아니라 총알을 잡는 것이다. 이 상황이 현실과 너무나 이질적이어서 극중 인버전의 원리를 설명해 주는 과학자 바버라는 “이해하려 하지 말고 느껴라” 말한다.

▲ 주인공에게 인버전의 개념을 설명해주는 바버라.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 주인공에게 인버전의 개념을 설명해주는 바버라.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영화 <테넷>에서의 ‘인버전’은 타임머신과 같은 다른 시간여행을 다룬 영화 속의 시간 이동과는 다르다. 인버전 물체는 시간의 속도는 그대로이고 시간의 방향만 반대이다. 과거나 미래의 특정 시점으로 획 날아갈 수 있는 시간여행이 아니기 때문에, 시간의 방향이 다른 두 인물이 만나는 상황이 연출된다. 물론 과거로 이동이 가능하기 때문에 “내가 과거로 돌아가 내 조상을 죽였다면 나는 존재할 수 없다”하는 ‘할아버지 역설’과 같은 인과론적 문제를 피할 수 없다. 다만 영화에서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는 닐의 대사로 어느 선에서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타협한다.

▲ 회전문 통로에 선 닐과 주인공.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 회전문 통로에 선 닐과 주인공. (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제공)

필자는 영화에 등장하는 인버전 장치 ‘회전문’의 설정이 흥미로웠다. 회전문은 바로 인버전이 일어나는 곳으로 오른쪽 통로로 시간 순행을 하는 주인공이 들어가면, 격벽이 세워진 왼쪽 통로에서 시간 역행을 하는 주인공이 나오는 방식이다. 영화에서는 시간 순행을 하는 통로를 붉은색 조명으로, 시간 역행을 하는 통로를 푸른색으로 표현한다. 주인공이 회전문을 통과하여 시간 역행이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주변 모든 것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 인버전된 주인공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반대쪽 오른쪽 통로에 회전문으로 ‘들어가는’ 시간 순행하는 주인공이 ‘거꾸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과거의 다른 시점에 주인공이 둘이 되는 것이다. 이에 극 중 테넷 요원으로 나오는 휠러는 두 주인공이 만나면 전자와 양전자처럼 쌍 소멸할 수 있으니 조심하라고 주의를 준다.

포인트3_쌍생성과 쌍소멸

▲ 전자와 양전자의 쌍소멸을 설명한 파인만 다이어그램. (출처: 위키피디아)
▲ 전자와 양전자의 쌍소멸을 설명한 파인만 다이어그램. (출처: 위키피디아)

양전자는 1928년 폴 디락에 의해서 그 존재가 예견된 전자의 반입자로써 전자와 질량, 스핀은 같지만, 전하가 반대이다. 전자와 양전자가 만나면 물질-반물질 쌍소멸을 하게 되고 그 둘의 질량에 해당하는 에너지 1.02 MeV가 감마선으로 방출된다. 반대로 감마선으로부터 전자와 양전자가 쌍 생성되기도 한다. 회전문을 지난 주인공이 반대편의 동일한 주인공을 다시 보는 것과 같이 말이다.

영화의 설정은 1940년 존 휠러(극 중 인물이 아닌 실제 물리학자)에 의해서 제안된 ‘단일전자우주(one-electron universe)’ 가설을 떠오르게 한다. 단일전자우주 가설은 리처드 파인만이 그의 1965년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휠러 교수와의 일화를 소개하여 유명해졌다. 그 이야기를 일부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나는 어느 날 프린스턴 대학원에서 휠러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는 “파인만, 모든 전자가 같은 전하와 같은 질량을 갖는 이유를 알았어요.” “어째서지요?”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같은 전자이기 때문입니다!” 그가 이어서 전화로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전에 생각했었던, 단순히 시간 방향으로 올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닌 시공간에서 무수히 많은 매듭의 세계선(world line)을 생각해 보세요. 고정된 시간의 평면으로 그 매듭들을 끊으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세계선을 볼 수 있을 겁니다. 바로 무수히 많은 전자들을 나타내는 겁니다. 한가지 만 빼고요. 한 쪽이 보통 전자의 세계선이라면, 반전되어 미래에서 내려오는 다른 쪽은 다른 부호들을 가지고 있어요. 이것은 바로 전하의 부호를 바꾸는 것과 같지요. 그 경로가 바로 양전자처럼 보일 겁니다.”

영화에서의 회전문은 휠러 교수의 설명에서 무수한 매듭과 같이 주인공과 인물들을 복사해 낸다. 이들은 서로 만나면 전자-양전자처럼 쌍소멸 하는데 이 모든 것이 한 시공간 위에서 일어난다. 영화 <테넷>에서는 주인공이 시간을 앞뒤로 오가며, 전 세계 엔트로피의 흐름을 뒤집으려는 세력과 싸운다. 하나의 전자가 시간의 방향에서 단순히 앞으로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닌 앞뒤로 오가며 무수히 많은 쌍생성과 쌍소멸 상호작용을 하듯이. 우주 전체의 이야기는 이미 전부 쓰여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미 제작되어 있듯이. 그 어떤 시간을 사는 우리는 단지 이미 쓰인 경로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영화 <테넷>을 두시간 반 동안 보고 있듯이. 영화에서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라는 닐의 대사처럼 말이다.

[출처] ※스포없음※ 영화 <테넷>의 물리학(https://blog.naver.com/ibs_official/222121064448) | 작성자 IBS


손승우 한양대·응용물리학과

포항공대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이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캐나다 캘거리대에서 박사후 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한양대 에리카캠퍼스에서 전산물리, 전산물리응용, 수리물리학 등을 가르치고 있다. 최근에는 학생들과 게임이론과 인공지능을 활용한 비선형 시스템 예측 문제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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