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법, 중도 그리고 자비는 현대 정치가 지향해야 할 가치체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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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법, 중도 그리고 자비는 현대 정치가 지향해야 할 가치체계
  • 방영준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윤리교육 및 사회사상
  • 승인 2020.11.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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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붓다의 정치철학 탐구』 (방영준 지음, 인북스, 260쪽, 2020.09)
   
이 책은 붓다의 가르침을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탐구하면서, 불교 정치철학의 정립과 체계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교분리는 서구 계몽시대에 나온 선언적인 구호에 지나지 않는다. 문제는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바르게 정립하는 것이다. 여기에 정치철학의 중요성이 제기된다. 정치철학의 제일 큰 주제는 정치현상과 정치권력을 윤리 도덕적으로 평가하고, 바람직한 정치 규범을 제시하는 것이다. 불교라는 수레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라는 두 바퀴로 굴러가는 것이다. 불교는 단순한 ‘깨달음’의 종교가 아니다. 오히려 깨달음은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도구일 수 있다. 하화중생과 자비 정신을 이 세상에서 구체화하고 실천하기 위해서는 정치적 영역과 밀접한 관계를 맺는 과제가 많다. 정치철학은 정치체와 정치 구성원이 공동선을 추구하게 하여 인간이 행복한 정치 생활과 행복한 삶의 양식을 구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은 <붓다 정치철학 탐구를 위한 첫 디딤돌>로서 다섯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붓다의 정치철학을 탐구하기 위한 예비적 성찰이다. 즉 종교와 정치의 관계, 진속이제(眞俗二諦)의 문제, 정의론의 특징과 전망에 대한 인식,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해와 분석 그리고  복합체계이론과 비판적 체계윤리를 다루었다. 붓다 정치철학을 탐구하기 위하여 복합체계이론을 다룬다는 것은 생뚱맞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는 붓다의 가르침을 현대적 용어로 푸는 데는 복합체계이론이 매우 유효하다고 본다. 복합체계이론을 윤리학과 접목한 것이 비판적 체계윤리이다.   

제2장은 <이데올로기와 종교 그리고 불교>로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와 믿음의 유형과 불교 신앙체계의 특징을 살펴보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의 기능은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을 함께 지니고 있다. 이데올로기 자체는 흉기가 될 가능성을 이미 가지고 있는데 바로 이데올로기의 함정과 오류이다. 오류의 함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 비판 능력이 필요하다. 인간 삶의 모습은 다양한 믿음의 구조 속에서 진행된다. 기독교가 절대주의적 입장이라면 불교는 상대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연기의 법칙은 상대성의 원리이다. 붓다는 이 원리 위에 불교라고 일컬어지는 사상과 실천의 전 체계를 구축했다. 중도의 사상도 연기법(緣起法)에 따라 이루어진 실천의 원리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불교 교리 자체는 이데올로기의 신념체계와 많이 다르다. 불교의 믿음 체계는 절대적 대상이나 사상을 맹신하는 타자적 믿음이 아니라, 스스로 진리를 깨달을 수 있다는 주체적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제3장은 <불교 정치철학의 체계화>로서 현실에 대한 상황규정, 지향가치와 이상사회 그리고 실천 방법과 전략 등 세 차원으로 접근하여 불교 정치철학의 체계화 작업을 시도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불교 교리를 어떻게 정치철학의 용어로 치환시키느냐의 문제이다. 즉, 자유, 평등, 정의 등을 붓다 다르마와 어떻게 관계시키느냐 하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진제적 내용을 속제적 용어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불교 정치철학에 나타난 현실에 대한 상황규정의 특징으로  ‘염세적 낙관주의’, ‘연기론적 세계관’, ‘현실적 인식론과 실용주의’ 그리고 ‘중도(中道)와 개방성’을 제시하였다. 지향가치와 이상사회의 특징은 ‘대자유인 지향’, ‘행복한 삶의 실천’, ‘자비(慈悲) 공동체 구현’, ‘연기의 중정(中正) 정치 구현’ 그리고 ‘생명ㆍ생태사회의 구현’으로 제시하였다. 불교 정치철학이 내세우는 지향가치와 이상사회는 현대 이념이 지향하는 내용이 다 포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실천 방법과 전략은 바로 ‘팔정도의 실천영역’의 문제로 연결된다. 따라서 팔정도의 내용을 정치철학과 사회윤리로 어떻게 치환하여 속제화시키냐가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팔정도의 실천영역은 ‘개인윤리적 차원’, ‘사회윤리적 차원’ 그리고 ‘사회운동적 차원’으로 나누어 논해 보았다.

제4장은 <현대 정치이념의 불교적 성찰>로 현대 정치이념을 붓다의 가르침으로 진단하고 새로운 좌표를 제시해 보는 것이다. 정치이념을 불교적으로 성찰한다는 것은 바로 이념이 가지고 있는 역기능을 극복하고 행복하고 바른 사회를 구현하는 것이라 하겠다. 여기서는 근대 이후 태동 된 정치이념 중, 오늘날까지 그 생명력을 활발하게 유지하는 이념들과 시대와 사유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면서 새롭게 등장한 열 개의 이데올로기를 선택하였다. 즉,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민족주의, 파시즘, 공동체주의, 페미니즘, 녹색주의, 아나키즘 등이다. 각 이념의 형성 배경과 전개 과정을 살피면서 이념의 원리와 변용 그리고 분화의 특징을 분석하고, 현재적 의미와 문제점을 불교적 시각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해 보고자 했다. 

제5장은 <한국불교의 정치철학적 과제>로서 세 가지 과제 즉 민주적 정의 공동체 지향, 이념적 화쟁과 통일 미래상의 좌표 제시, 그리고 불평등 문제와 자비 공동체 구현을 제시하고 있다. ‘민주적 정의 공동체 지향’은 붓다의 연기법을 정의론으로 연결한 센(Amartya Sen)의 정의론을 많은 비중을 두고 소개하였다. ‘이념적 화쟁과 통일 미래상의 좌표’는 한민족의 평화를 위해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이념적 갈등은 사회정신병리학적이라 할 만큼 우리의 사고 지평을 위축시켜 왔다. 이에 중도의 지혜로 이념적 갈등을 극복하고 나아가 통일 미래상의 좌표를 제시하였다. 필자는 불교의 연기론과 중도 사상에서 창출된 통일 이념은 ‘다원 공동체’적 성격의 이념이 아닐까 생각한다. ‘불평등 문제와 자비 공동체 구현’은 불교 정의론의 핵심이다. 자유는 평등의 가능한 적용 분야에 속하고, 평등은 자유의 가능한 분배 유형에 속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바로 중도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필자는 불평등 문제에 대한 윤리적 접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정치이념으로서의 평등주의가 많은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리적 측면에서 접근하여 구체화하고 그 과제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 사회적 비용도 덜 들고 지속성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여기에 생명, 평화, 자비, 공동체 구현이라는 과제가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이 책의 결론을 정리해 보겠다. 붓다 정치철학의 핵심은 연기법, 중도, 그리고 자비에서 출발하며 이 요소들은 상호 연결되어 작용한다. 붓다의 가르침은 매우 현실적이며 실용적이고 개방적이다. 이러한 특성은 중도의 지혜에서 나오는 것이다. 중도는 유무를 떠나고 진위와 선악 등 이항 대립을 초극하는 사유방식이다. 즉 잠자리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불교 정치철학의 지향 가치는 오늘날 현대 이념이 지향하고자 하는 내용이 다 포함되어 있다. 붓다 다르마의 현대성이 경이롭다는 생각이 든다.
 

방영준 성신여자대학교 명예교수·윤리교육 및 사회사상

성균관대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아나키즘의 정의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성신여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사범대학 학장, 중앙도서관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저항과 희망, 아나키즘』 『공동체, 생명, 가치』 『현대 이념의 제 문제』 등이 있으며, 한국 아나키즘 운동 선구자인 우관 이정규 선생을 기리는 ‘우관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성신여대 명예교수로 있으며, 자유공동체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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