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 베토벤을 알리는 데 앞장섰던 베를리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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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 베토벤을 알리는 데 앞장섰던 베를리오즈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0.11.0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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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베토벤과 아홉 교향곡: 새로운 세계와의 만남 | Hector Berlioz 지음 | 이충훈 옮김 | 포노PHONO | 260쪽

2020년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기념해 다양한 콘서트가 기획되고 관련 저서들이 쏟아진다. 전 세계는 그야말로 베토벤 축제 중이다. 이렇게 모두가 기리는 위대한 인물로 자리잡은 베토벤이지만, 그 역시 생전에는 무명이던 시절이 있었다. 대표작 〈환상 교향곡Symphonie fantastique〉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의 후기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음악 평론가 엑토르 베를리오즈는 이렇게 적는다. “그 당시 프랑스에서 베토벤의 작품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 훌륭한 음악을 듣는 즉시 음악가들 대부분이 얼마나 비판을 해댔는지 지금으로서는 생각도 못할 것이다.” 전혀 알려지지 않고 비판을 받는 베토벤의 모습이란 현재 우리에게 매우 낯선 풍경임이 틀림없다.

이 책은 ‘거장이 만난 거장’ 시리즈의 여섯 번째 권으로, 베를리오즈가 만난 베토벤을 이야기한다. 베를리오즈는 의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의학을 공부하다가 글루크, 스폰티니 등의 오페라에 매료되어 뒤늦게 작곡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의 작품들은 당시의 정통 음악 어법을 벗어난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지휘자와 음악 평론가로도 활동하며 시대를 앞서나간 인물이었다. 낭만주의 시대를 살아낸 예술가답게 그는 보수적 음악가들의 무지와 편견에 맞서 당대 음악을 옹호했으며, 베토벤 역시 그 대상 중 하나였다. 당시 프랑스 비평계에는 베토벤의 음악을 꺼리는 분위기가 팽배했지만, 새로운 음악의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베를리오즈는 여러 매체에 베토벤에 대한 호평과 찬사의 기사들을 기고하고 직접 그의 작품을 지휘하며 작곡가를 알리고 작품을 이해시키는 데 힘썼다.

이 책은 베를리오즈의 평론집 『노래를 가로질러A travers chants』(1862)에 실린 베토벤 관련 평론 다섯 편과 그의 초기 평론 중 하나인 베토벤 전기를 한데 엮은 것이다. 앞의 다섯 편은 1837-1860년에 걸쳐 〈가제트 뮈지칼Gazette Musicale〉〈주르날 데 데바Journal des debats〉 등에, 마지막의 ‘베토벤 전기’는 1829년 세 차례에 걸쳐 〈르 코레스퐁당Le Correspondant〉에 게재됐다. 이 가운데 베토벤의 교향곡 아홉 편을 분석한 ‘베토벤 교향곡’이 이 책의 뼈대를 이룬다. 『단순성과 구성: 루소와 디드로의 언어와 음악론 연구』로 파리 제4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이충훈 한양대 교수가 원문을 우리말로 충실하게 옮기고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해설과 함께 악보 및 교향곡 자료를 보충했다.

베를리오즈의 또 다른 글(‘베토벤의 삼중주와 소나타에 대한 몇 마디’)은 우리를 19세기 초반의 어느 날로 데려간다. 그곳에는 베토벤의 〈C샤프 단조 소나타(‘월광’)〉를 연주하는 서로 다른 모습의 리스트가 있다. 아직 채 영글지 않았던 젊은 날의 리스트는 박자와 악센트를 제멋대로 하며 베토벤의 곡을 연주해 베를리오즈를 끔찍한 고통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몇 년이 흐른 뒤 베를리오즈는 전혀 다른 모습, 이른바 거장의 연주를 목격한다. 어스름한 빛만이 비치는 어두운 방 안에서 단순한 연주로 솟아나온 그것은 베토벤의 그림자이자 목소리 그 자체였다고 베를리오즈는 감동에 찬 음성으로 전한다.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한 편의 시와 같은 음악을 침묵과 눈물 속에서 나누는 당시 음악가들의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듯하다.

베를리오즈가 나서지 않았더라도 베토벤의 천재는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드러났겠지만, 다수가 그 음악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홀로 확신을 가지고 외로운 싸움을 벌였던 베를리오즈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눈에 띄지도 않은’ 분파의 노력이 없었다면 역사는 또 다르게 쓰였을지 모를 일이다. 지금의 베토벤이 있기까지 베를리오즈의 역할을 결코 간과할 수 없으며, 그런 의미에서 베토벤이 아직 대중에 낯선 존재이고 평단에는 불편한 대상이었을 때 부단히 이 작곡가의 가능성을 외치고 그를 “음악 문명에서 가장 앞서나간 첨병”으로 치켜세운 이 글들은 현대의 독자에게 베토벤의 ‘처음’을 선명하게 목격할 수 있는 인상적인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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