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 종교’ 혹은 ‘국가와 신앙’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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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종교’ 혹은 ‘국가와 신앙’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0.11.0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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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국가와 종교: 유럽 정신사 연구 | 난바라 시게루 지음 | 윤인로 옮김 | 소명출판 | 311쪽

태평양전쟁을 전후로 한 시기의 일본 자유주의 사상을 대표하는 정치철학자인 저자가 플라톤과 칸트를 중심으로 서구 정신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정치철학을 되짚어 이것이 서구 국가의 성립에 어떤 영향을 주었으며 또 근대에 이르러 어떤 ‘비정신화’된 위기를 맞았는지를 고찰하는 책이다. 저자는 ‘진정한 신의 발견’ 對 ‘인간·민족·국가의 신성화’라는 적대 구도를 설정하고 신적인 것과 정치 간의 관계 양태들을 세밀하게 추적한다. 이는 격동의 시기, 서구는 물론이요 전 세계를 휩쓸었던 맑시즘과 나치즘이라는 현상을 분석하는 동시에 나치즘을 비판하는 방식으로 일본 군국주의를 에둘러 비판하면서 ‘신’을 잃은 나라 일본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려는 시도였다.

무릇 국가의 문제는 근본에서 문화 전체와 내적 통일을 갖는 세계관의 문제이고, 따라서 궁극적으로 종교적 신성의 문제와 관계하는 일 없이는 이해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확신이다. 저자가 보기에 국가와 종교는 서로 합쳐져서는 안 되는 별개의 원리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만약 종교가 국가에 통합되면 종교는 종교대로 그 순수한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고, 국가도 국가로서 올바른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런 논의를 해나갈 때 저자가 종교의 모범으로 삼는 것이 근동에서 발생하고 유럽에서 흥성한 기독교다. 기독교야말로 인간의 보편적 구원의 길을 밝힌 참된 종교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그러므로 종교와 국가의 관계를 중심에 두고 ‘유럽 정신사’를 연구하는 것은 특정한 지역의 역사 연구에 그치지 않고 인류 보편의 문제에 대한 탐구가 된다.

▲ 난바라 시게루(南原 繁)
▲ 난바라 시게루(南原 繁)

저자는 아래의 개정판 서문을 통해 목적의식을 분명히 한다.
“어떤 시대 또는 어떤 국민이 어떠한 신을 신으로 삼고 무엇을 신성으로 사고하는가는 그 시대의 문화나 국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다. (.....) 참된[진정한] 신이 발견되지 않는 한, 인간이나 민족 혹은 국가의 신성화는 끊이지 않을 것이다.

대체로 종교의 문제에 대한 근대적 사유는 불행한 과정을 더듬어 왔다. 19세기의 실증주의적 합리정신과 그 계승자인 마르크스적 경제유물사관이라는 것은 종교에 무관심한, 혹은 종교에 대한 부정의 정신에 다름 아니었다. 그것에는 단지 낡은 전통적 형식종교나 정치적으로 조직화한 교회에 대한 항의 또는 반[정]립으로서의 의미는 있을지라도, 그것이 결코 문제의 해결은 아니다. 거기서는 기술이나 경제적 물질이 신성의 자리를 차지하고 머지않아 종교적 대용물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

진실로 근대 실증주의 정신 위에서 발달을 이뤄온 자연과학과 기술문명이 지닌 놀랄만한 위력은 인간을 혼이나 정신에 대한 배려로부터 현저히 멀어지게 해왔다. 현대정치의 불안과 공포는 그런 사정과 관계가 없지 않다. 역사상 일찍이 없었던 절대 병기의 출현 앞에 인류의 존재 자체가 질문되고 있는 것은 그런 사정을 말해 주고 있다.

종교의 힘은 개인만이 아니라 정치적 국가 생활에 대하여, 각각의 시대에 각각의 형태로 근본적인 문제를 제시해 왔다. 이는 실제 정치가가 아무리 간과하거나 무시하려고 할지라도 인류의 긴 역사를 통해 그러했듯 장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근대의 과도적 반[정]립의 시대를 지나 현대 인류가 직면하기에 이른 정치적 한계상황에서 우리들은 종교적 확신이나 신앙으로부터 무엇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현대의 정치사회 투쟁의 근저에 가로놓인, 종교를 포함한 사상 혹은 학문의 문제로서의 문화투쟁이다. 또한 그것은 세계관 투쟁이고 현실의 정치적·사회적 투쟁이 끝나고서도 남는 문제이기에 인류가 존속하는 한 끊임없이 새롭게 되는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

그런 뜻에서 종교와 국가의 관계에 대한 이론은 유럽정신사 속에서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전개되었던 것이고, 우리들은 거기서 장래의 해결을 위한 방법까지도 추출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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