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지향 체계의 혼돈과 바이너리 코드의 아이러니
상태바
권력 지향 체계의 혼돈과 바이너리 코드의 아이러니
  • 김성재 조선대·언론학
  • 승인 2020.10.25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시론]

2020년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세계를 미증유의 혼돈 속에 빠뜨렸다.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부드러운 테러에 요령 있게 대처하고 있다는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이 혼돈의 통제는 모든 사회체계가 질서를 되찾는 것이다. 질서를 추구하는 모든 사회체계는 인간의 머릿수가 아니라, 시시각각 일어나는 수많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으로 구성된다. 인간 커뮤니케이션이 지속되지 않고 중단되는 순간 모든 사회체계는 당연히 해체된다. 코로나 시국에서 치열한 생존 투쟁을 벌이는 다섯 개의 특별한 체계들이 눈에 띈다. 정치체계, 경제체계, 법체계, 의료체계, 언론체계가 그것이다. 문제는 이 권력 지향적 체계들의 작동 양상이 오늘의 혼돈 상황에서 우리를 극도의 피곤과 혼란 속에 빠뜨린다는 것이다.

현대적 체계이론에 의하면, 위에서 언급한 사회체계들의 구성 및 작동의 원리는 앞뒤로 긍·부정의 가치가 대립하는 바이너리 코드(이원 코드)에서 앞선 가치를 선택하고 뒤선 가치를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체계는 ‘여(與)/야(野)’, 경제체계는 ‘부(富)/빈(貧)’, 법체계는 ‘시(是)/비(非)’, 의료체계는 ‘건강(健康)/병(病)’, 언론체계는 ‘정보(情報)/비정보(非情報)’의 대조 세트(contrast set) 중에서 앞의 가치를 추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체계들 중 법체계와 의료체계는 누구도 원치 않는 부정적 가치인 ‘비’와 ‘병’을 추구하며 유지된다. 언론체계 역시 원칙적으로 선택해야 할 가치인 ‘정보’ 대신 매우 자극적인 ‘비정보’를 선택해 지속적으로 양산하며 살아간다.

놀랍게도 다섯 체계의 공통점은 남의 의지를 내 의지에 복속시키는 권력을 지향하며 한국 사회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지금 ‘촛불혁명’의 승자와 패자 간의 ‘분노게임’을 벌이는 정치체계는 인적·물적 자원의 배분을 여당의 힘으로 결정한다. 경제체계는 모든 자원의 대가를 지불할 수 있는 돈의 흐름을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에 따라 제어하고 있다. 법체계는 정의 실현 대신 유죄를 무죄로, 무죄를 유죄로 만들 수 있는 법의 해석으로 모든 사회체계 위에 군림한다. 최고 엘리트의 특권 의식에 사로잡힌 의료체계는 주권국가의 국민을 농락하며 환자를 인질로 삼아 고소득 챙기기와 특권 유지 게임을 감행한다. 수많은 1인 미디어와 기존의 대중매체가 함께 창조한 정보환경의 혼돈 속에서 언론체계는 나머지 네 체계의 틈바구니에서 권력 줄타기로 비정보 또는 허위정보를 양산해 삶에 지친 독자와 시청자들을 우롱한다.

이러한 권력 지향적 체계들이 우리의 생활세계를 지배할 때 사회 구성원들은 극도로 지쳐가고 이 체계들의 개혁을 크게 외칠 수밖에 없다. 이에 대응하는 정치개혁, 경제민주화, 사법·검찰개혁, 의료개혁, 언론개혁의 당위성은 이미 시대정신이 되었다. 그러나 개혁에 저항하는 세력은 무작정 개혁을 저지하면서 애병필승(哀兵必勝)의 분노를 폭발시키고, 개혁추진 세력을 향해서는 취호멱자(吹毫覓庛)의 사사로운 흠집 내기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보수적인 언론체계는 개혁 반대 세력의 입장을 집중적으로 대변하면서 몇몇 1인 미디어의 자극적인 발언을 여과 없이 인용 보도함으로써 ‘저급 저널리즘’의 극치를 보인다.

잃어버린, 아니면 자칫 잃어버릴 수 있는 권력 되찾기에 목마른 우리 사회의 다섯 체계가 오늘의 혼돈 상황에서 스스로 질서를 찾는다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 구성원들은 지금 묵묵히 견디면서 국가적 바이러스 통제에 동참하듯이, 개혁을 위한 체계 간의 성실한 협업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 질서 있는 사회체계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상반된 가치의 쌍인 바이너리 코드의 존재는 인간의 숙명이다. 하지만 이 코드의 가치가 전도되어 작동하며 빚어내는 아이러니는 선량한 사회 구성원들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체계의 농간(弄奸)이자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상실(喪失)이다.


김성재 조선대·언론학

조선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연세대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스터대학교에서 언론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한국미디어문화학회장, 독일 바이로이트대학교 객원교수, 한국지역사회학회장을 역임했다. 대표 저서로 「체계이론과 커뮤니케이션」, 「매체미학」, 「상상력의 커뮤니케이션」, 「코무니콜로기」, 「피상성 예찬」, 「한국의 소리 커뮤니케이션」, 「플루서, 미디어현상학」 등 다수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