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의 형이상학적 의미,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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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형이상학적 의미,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처소”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10.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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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27)_‘집’의 형이상학적 의미

“현재에 살며 과거 속으로 들어가는 일은 때론 힘들어 재미없고, 때론 재미있어 힘이 안 든다. 역사 공부가 그러하다.”

자불(Zabul) 혹은 자불리스탄(Zabulistam)은 오늘날의 아프가니스탄 남부에 위치한 자불 주와 가즈니 주에 해당하는 역사적 지역이다. 현재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자불, 이란에서는 자볼이라는 이름의 도시가 고대의 자불을 계승하고 있다. 이곳은 10세기 말 활약한 고대 페르시아 시인 페르도우시(Ferdowsi, 935/940~1019/1026)의 서사시 『샤나메』(Shahnameh, 왕들에 관한 책)의 주인공인 영웅 로스탐(Rostam)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페르시아 국민 시인으로 추앙받고 있는 페르도우시의 본명은 아불-하심 페르도우시 투시(Abul-Qasem Ferdowsi Tusi)로 그는 자신의 작품에서 자불리스탄을 시스탄과 상호교체적으로 사용한다.

▲ 이란 투시에 있는 페르도우시의 동상
▲ 이란 투시에 있는 페르도우시의 동상

시스탄(Sistan)의 문자적 의미는 “Si의 땅”이다. 이곳을 이전에는 사카스탄(Sakastan) 즉 “사카의 땅”이라고 불렀다. 기원전 2세기 무렵 시작된 사카족의 이동에 따른 이름이다. 7세기 아랍의 이란 침공 이후에는 다시 이름이 시지스탄(Sijistan)으로, 결국에는 시스탄으로 변화되었다. 굴곡의 역사 속에서 지명의 의미를 담고 있는 앞부분은 상당히 달라졌지만, ‘땅’을 가리키는 페르시아 어미 ‘-stan’은 변함없이 제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지명 말고도 학문, 종교 분야에서 페르시아가 중앙아시아와 인도 지역에 미친 영향은 심대하다. 무굴제국(1526~1857년)은 명칭부터 몽골의 페르시아식 표기이며, 스스로는 “부마국(사위의 나라)”이라는 뜻으로 구르카니(Gurkani)라 불렀던 제국의 건설자 바부르(Babur, ‘호랑이’라는 뜻)는 오늘날의 우즈베키스탄 페르가나 지역의 어린 군주였다. 그는 티무르의 후손이자 모계로 칭기즈칸의 혈통을 잇는 인물이었다.
 
티무르 제국 시대의 투르크-몽골 전통은 칭기즈칸의 후예가 아닌 사람은 칸이 될 수 없었기 때문에 티무르는 스스로 칸이라 부를 수 없었다. 대신 ‘지휘관’이라는 뜻의 ‘아미르(amir)’를 이름 앞에 붙이거나, ‘위대한’이라는 뜻의 수식어 ‘칼라(kala)’를 아미르 앞에 덧붙여 불렀다. 그리고 칭기즈칸의 후손을 허수아비 칸으로 세워 그의 이름으로 통치한 뒤 ‘구르칸(부마)’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종당에는 티무르 왕조의 군주들이 칭기즈칸 황실의 공주를 아내로 받아들여 떳떳한 부마국의 자격을 갖췄다. 고려 말 우리나라도 원나라(몽골)의 부마국이었다. 
 
무굴제국 황실은 칭기즈칸의 혈통보다는 티무르 왕조의 일원임을 강조하며 스스로 부마왕조  구르카니가 된다. 또 바부르는 과거에 티무르가 인도를 점령했었고, 자신은 티무르의 후손이므로 인도를 지배할 정당한 군주라 주장하며 인도를 침략한다. 

▲ 영국 록밴드 Queen
▲ 영국 록밴드 〈Queen〉

지지난해 선풍적 인기몰이를 한 영국의 전설적 록 밴드 <Queen>의 리드 보컬 프레디 머큐리(1946~1991년)의 혈통도 조로아스터교인들에 대한 박해를 피해 이주한 페르시아계 인도인이다. 식민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가 고향인 그의 본명은 파로크 불사라(Farrokh Bulsara)다. Bulsara는 Bulsar 출신의 가문임을 말해주는데, 이곳은 오늘날의 서인도 구자라트주 봘사드(Valsad)시가 되었다.

▲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주 쿠차 키질 석굴 입구의 구마라집 동상
▲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주 쿠차 키질 석굴 입구의 구마라집 동상

인도와 西域의 관계, 나아가 우리와의 교류 또한 다방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구마라집 삼장(鳩摩羅什 三藏, Kumārajīva: 344~413년)은 카시미르 출신의 아버지 쿠마라야나와 쿠차국왕의 누이동생인 어머니 지바카 공주 사이에서 태어났다. 삼장은 경장, 율장, 논장에 두루 능한 큰스님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마라집은 384년 쿠차로 쳐들어온 후량(後涼)의 장군 여광(呂光)의 포로가 되어 18년 동안 갖은 시련을 겪다가 401년 후진(後秦) 황제 요흥(姚興)을 만나 국사(國師)가 된다. 대지도론(大智度論) 등 범어로 쓰여진 불경의 역경 작업에 바친 그의 노고는 칭송에 칭송을 받아야 한다. 이 글에서의 관심사는 그의 이름에 사용된 범어 jīva다. “생명력, 생명체”라는 의미를 지니는 이 말의 어근은 jīv인데 “숨 쉬다, 살다”라는 뜻이다. 황당한 소리라고 펄쩍 뛸지도 모르나 우리의 ‘집’도 “우리가 살아 숨 쉬는 생명의 공간”이어야 마땅하다 싶은 생각이 든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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