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분쟁과 표준의 지정학, 표준이라는 권력
상태바
미-중 분쟁과 표준의 지정학, 표준이라는 권력
  • 이희진 연세대학교·정보시스템학
  • 승인 2020.10.25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표준으로 바라본 세상: 일상에서 만나는 표준의 정치경제학』 (이희진 지음, 한울아카데미, 256쪽, 2020.09)

2020년 5월 21일은 미국은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적 접근”이라는 정책 문서를 발표했다. 백악관 이름으로 나온 이 문서에는 표준(standards)이라는 단어가 10번 등장한다. 그중 여덟 번은 ‘기술표준’ 또는 ‘산업표준’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이 책에서 다루는 표준이다. 미국의 최고위 외교 정책 문서에서 표준이 핵심어로 사용된 것이다. 여기서 표준과 관련된 주요 내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은 중국의 표준을 세계적으로 확산시키려는 의도를 가진 전략이다. 미국은 앞으로 5G, 인공지능 등 첨단 분야 국제표준화에서 주도권을 놓치지 않을 것이며, 동맹국들과 힘을 합쳐 중국 표준의 세계화를 막을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이 표준 문제를 단지 기술경쟁, 산업경쟁의 영역이 아니라 전략적 도구, 지정학적 틀로 보는 시각을 공식화한 것이다.

한편 중국은 2021년 “중국 표준 2035”(China Standards 2035)라는 문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는 “중국 제조 2025”의 후속편 또는 확장판으로 간주되는데 주요 내용은 바이오를 포함해서 인공지능, 얼굴인식 등 소위 말하는 4차 산업혁명 기술 분야에서 표준을 포함하는 지적재산권 분야에서 주도권을 쟁취하겠다는 의지가 주요 내용이라고 알려져 있다. 중국의 산업정책 입안자와 산업계에서 자주 회자되는 말이 있다. “삼류 기업은 제품을 만들고, 이류 기업은 기술을 개발하고, 일류 기업은 표준을 제정한다.” 결국 경기의 규칙을 정하는 표준 설정자가 되겠다는 중국의 비전을 보여주며, 5G에서의 성과는 중국이 이런 목표를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미국과 중국은 ‘기술표준’을 둘러싸고 국제전략 또는 지정학 차원에서 다투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기술표준의 지정학적 경쟁’ 또는 ‘표준 세계대전’이라고 부른다. 그러면 왜 미국과 중국은 표준을 둘러싸고 지정학적 차원에서 다투는 것일까?

그것은 표준이 바로 권력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타인의 의지에 반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행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중에서도 표준은 가장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형태의 권력인데, 표준 사용자가 자신이 표준 제정자가 의도한 대로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과 과정 속에는 다 표준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표준으로 바라본 세상’이다. 또한 이 표준에는 표준을 만든 사람들이 생각하는 세상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라투르(Latour)의 새겨넣기(inscription) 개념이 표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아무리 사소하게 보이는 표준이라도 하나하나 정치하고 지루한 교섭과 타협 또는 치열한 경쟁을 통해 만들어진다. 왜냐하면 표준을 잡는 자가 권력을 갖기 때문이다. 부제를 ‘일상에서 만나는 표준의 정치경제학’으로 삼은 이유이다. 이런 표준의 중요성에 비해 표준에 대한 사회과학적 연구는 그리 활발하지 않다. 표준을 사회과학적 연구 주제로 정립하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 중의 하나이다. 또 하나 이 책의 시기적인 측면에서 집필 동기는 화웨이, 5G로부터 시작해서 반도체로 전개되는 미국과 중국의 쟁투를 표준의 관점에서 설명하고자 해서이다.

이런 목적으로 이루고자 이 책은 여섯 개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선 1장에서는 표준이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표준이 우리의 행동을 어떻게 좌우하는가 등에 대해서 일상의 예를 통해서 보이고자 했다. 옥탄가 측정 표준과 장비와 같은 예는 표준이 기업 또는 산업 차원에서 어떻게 권력이 되며, 지속적인 이윤 창출의 원천이 되는가를 보여준다. 

2장 ‘경쟁의 도구로서의 표준’에서는 표준과 지적재산권, 플랫폼 등의 관계를 설명한다. 특히 마지막 절은 중국의 정보통신기술 부문에서의 국제표준화 시도를 역사적으로 추적한다. 중국의 국제표준화는 막대한 국내 시장을 바탕으로 한 ‘우리 고유 기술’로 요약되는 폐쇄적 접근법, 표준 제정의 정치적 성격을 반영한 외국 기업과의 협력 전략에서 오늘날 5G에서 중국의 약진을 이루게 한 지적재산권 기반 표준전략으로 발전해 왔다.

▲ 궤간 단절: 호주에서 사용되었던 22개의 궤간(gauge)를 보여주는 포스터(팀 피셔 가족의 허가를 받아서 사용)
▲ 궤간 단절: 호주에서 사용되었던 22개의 궤간(gauge)를 보여주는 포스터(팀 피셔 가족의 허가를 받아서 사용)

3장 ‘통합의 도구로서의 표준’은 한 국가나 지역이 통합이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우기 시작한 순간부터 표준화가 그 전제 조건이 된다는 명제에서 시작한다. EU 통합이 그렇고, 아세안이 그렇고, 우리나라가 맞닥뜨려야 할 남북통합 나아가서 남북통일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 장에서는 독일 통일과 표준화, EU 통합과 표준을 다룬다. 남북 관계 발전의 상징으로 자주 언급되는 철도 사업의 의미는 호주 철도 역사에서 본 ‘궤간 단절’(breaks of gauges)의 예를 통해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4장은 ‘무역에서의 표준’을 다룬다. 태평양을 건너온 와인을 만 원 정도의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은 컨테이너의 국제표준화이다. 표준은 세계 무역에서 점차 그 중요성이 더해지는 무역 기술장벽(Technical Barriers to Trade: TBT)의 바탕이다. 정보통신기술에서의 표준도 FTA에서 중요한 의제가 된다. 표준은 특히 개발도상국이 공업 분야만이 아니라 농식품 분야에서 산업 발전 또는 수출 전략을 꾀할 때 첫 번째로 부딪히는 어려움이다.

5장 ‘세계 전략으로서의 표준화: 중국의 사례’는 중국의 ‘표준 굴기’를 다룬다. 일대일로는 국제표준화 전략이라는 저자의 오랜 주장은 위에서 언급한 ‘미국의 대(對)중국 전략적 접근’ 문서에서 확인되었다. 중국은 세계 전략의 수단으로서 표준을 의식적으로 채택한 최초의 사례이다. 중국의 고속철도와 얼굴인식 기술과 같은 첨단 분야에서의 약진은 모두 표준이라는 렌즈를 통해 볼 때 그 잠재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 장은 변화하는 기술과 세상의 흐름 속에서 표준의 역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을 달성하는 데 표준은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특히 4차 산업혁명이라는 흐름 속에서 표준이라는 권력을 득하는 기업과 국가는 자기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재설계할 수 있다. 그래서 미국과 중국은 이런 분야에서의 표준 결정에 대해 사활을 걸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산업과 관련 정책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마지막으로 필자는 왜 표준이 사회과학의 주제가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했다. 

이 책은 기업 경영 또는 경쟁 전략에서 표준이 매우 중요하다는 주장을 암묵적으로 깔고 있다. 그러나 이 부분이 명시적으로 비중 있게 다루어지지는 않았다. ‘경쟁의 도구로서의 표준’ 부분에서 산업 경쟁의 차원에서 기업 경영전략을 언급하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다루지는 못했다. 이는 차후의 과제로 남겨 두었다. 이 책이 원론적인 차원에서 표준을 다루었다면, 후속서에서는 경영 전략으로서의 표준을 다룰 예정이다.


이희진 연세대학교·정보시스템학

연세대학교 국제학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학사, 동 대학원 사회학 석사를 마치고 London School of Economics 정보시스템학과에서 시간과 정보기술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브루넬대과 호주 멜번대 교수를 지냈다. 그리위치 표준시에서 시작된 표준에 대한 관심을 줄곧 이어오고 있다. 연세대 ‘융합산업과 표준화 연구센터’(미래융합연구원)와 ‘호주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다. 연구 주제로 시간-표준-철도 세 키워드를 좇고 있다. ‘국제개발협력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정보통신기술과 개발도상국’(ICT4D), ‘표준과 개발도상국 발전’, 호주 관련 등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저서로 “정보기술은 시간을 어떻게 변화시킬까?”와 “4차 산업혁명과 표준화: 사례 모음”(편저) 등이 있으며, 표준과 표준화, 특히 중국의 국제표준화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