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과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성과 시대정신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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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과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지성과 시대정신은 비로소 빛을 발한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0.10.25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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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 | 김호기 지음 | 메디치미디어 | 520쪽

한국 현대사를 이끌어온 힘은 무엇인가? 그것의 하나는 바로 지성과 시대정신이었다. 지성이 개인적·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에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를 일깨웠다면, 시대정신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와 가야 할 길을 비췄다. 이 책은 파란만장했던 대한민국 100년 지성사를  누비며, 더욱 풍요롭고 보다 정의로운 미래를 꿈꾸게 했던 60명의 지식인의 삶과 시대정신을 담고 있다.

저자의 가장 큰 고민은 이념적, 학문적, 역사적 균형감각을 가지고 지난 100년 우리 현대사를 대표하는 60명의 지식인과 책을 선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보수와 진보, 인문학과 사회과학, 예술과 자연과학, 국내와 해외에서의 연구 등 다채로운 분야의 지식인들과 그들의 대표작을 담아냈다.

흥미로운 점은 60명의 인물 중 몇몇은 지식인의 범위를 넘어선다는 것이다. 이승만, 김구, 안창호, 여운형,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게는 독립운동가 또는 정치가라는 이름이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이들은 우리 지식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역사적 존재로서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이들의 삶과 사상은 민족독립과 해방, 산업화와 민주화, 세계화와 정보사회라는 대한민국 100년의 과거와 미래를 밝히는 통찰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지난 100년 대한민국의 역사는 전진과 후퇴가 공존했다. 그리고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미래에는 불투명성과 불확실성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개인과 공동체가 위기에 처했을 때, 그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성찰하고 전망하는 지성과 시대정신이 비로소 빛을 발하는 법이다. 지금 우리를 있게 한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을 기다리지 않았다. 책을 읽고, 스스로 생각하고, 먼저 행동했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이 남긴 사상을 공부하고 미래를 밝혀가야 할 차례다.

이 책은 또한 1947년 출간된 김구의 《백범일지》부터 2000년대 이후 출간된 장하준의 《사다리 걷어차기》까지 소개하고 있다. 해방공간의 화두였던 새로운 나라 만들기에서 시작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쳐서 세계화 시대 신자유주의 비판까지, 우리 사회의 선 자리와 갈 길을 탐색하는 데 《현대 한국 지성의 모험》은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지성의 역사를 인문학과 사회과학이 독점할 순 없다”는 저자의 말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는 예술, 자연과학, 역사학의 지식인과 그들의 사상이 폭넓게 담겨 있다. 한용훈, 이육사, 윤동주, 김수영, 박경리, 최인훈, 조세희, 박완서, 박노해, 한강 등 한국 작가들의 역동적인 삶과 개성 있는 작품 세계는 흔치 않은 재미를 선사한다. “예술은 사회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타자와 공유할 수 있는 공감과 연대를 선물한다”는 점에서 현대 한국 지성이 남긴 또 하나의 커다란 성취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역사의 실존적 기억과 집합적 기억을 자세히 살펴본다. 지식인 역시 특정한 시대를 살아갔던 개인이다. 사랑과 미움, 성공과 좌절, 고독과 연대에 대한 개인으로서의 지식인의 실존적 기억을 읽으며 우리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충실한 삶을 향해 전진하게 된다. 또한,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지식인의 사상은 공동체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다. 우리는 지식인들이 기록하고 사유한 집합적 기억을 공유함으로써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끌어가기 위한 통찰을 얻을 수 있다.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60명의 지식인에 대한 동료와 후대 학자들의 기록과 평가다. 역사학자 서중석이 기록한 김구의 삶, 시인 정지용이 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초판 서문, 사회학자 김귀옥이 평가한 이은숙의 독립운동은 우리 역사에 헌신했던 이들에 대한 시대의 예의를 기억하게 한다.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문제적 인간’ 이광수, 여전히 공과 과가 엇갈리는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후대 학자의 평가는 역사를 보는 다양한 시각을 제공하기도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위기에 처해 있다. 역설적으로 이런 때야말로 우리는 60명의 지식인과 그들의 사상 그리고 시대정신에서 지혜와 용기를 얻어야 한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이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잊어서는 안 될 과거의 기억들을 소환하고 다음 세대에게 전승하는 것이다”라고 이 책의 집필 의도를 밝혔다. 100년 우리 현대 지성의 고투와 기억은 현재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100년을 열어갈 용기를 안겨줄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 ‘100년의 기억, 100년의 미래’다. ‘100년의 기억’은 암울한 시대를 살았던 지식인들이 식민지배와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우리 공동체를 민주공화국으로 일궈낸 사상의 기억이다. ‘100년의 미래’는 경제·사회적으로 완전한 선진국을 이룩하고 인류 평화와 번영을 선도하는 문화국가로 나아갈 시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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