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 최초로 출간된 동시대 북한 문학 평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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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최초로 출간된 동시대 북한 문학 평론집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0.10.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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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친애하는, 인민들의 문학 생활: 북한의 페미니즘 소설부터 반체제 지하문학까지, 최신 소설 36편으로 본 2020 북한 인민의 초상 | 오창은 지음 | 서해문집 | 288쪽

김정은 시대의 북한 문학을 통해 본 북한 사회와 사람들의 삶. 아름다운 것(문학예술)과 정치적인 것(프로파간다) 사이에서, 그들은 어떤 소설들을 읽고 썼을까? 이 책은 북한 문학에 대한 비평 작업을 꾸준히 해온 오창은 문학평론가의 첫 북한 문학 소개서로, 남한에서 최초로 출간되는 ‘동시대 북한 문학 평론집’이기도 하다. 북한의 페미니즘 소설부터 반체제 지하문학까지, 36편의 최신 소설을 통해 2020 북한 인민의 초상이 날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생동감 넘치게 다가온다. 최신의 북한 문학을 거의 실시간으로 읽어내는 몇 안 되는 연구자의 내공이 빛을 발한다.

이 책의 제1부에서는 오늘의 북한 문학을 개괄하면서, 대표적인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북한 문학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살펴본다. 북한 문학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전통 아래 ‘노동과 일 중심의 서사, 비극이 없는 낙관주의, 개인주의에 대한 비판과 집단주의의 추구’ 등을 특징으로 한다. 이를테면 2014년 혜성처럼 등장해 북한 문학의 신성이 된 젊은 작가, 서청송의 「유봉동의 열여섯 집」(2017, 홍수 피해의 고난 극복 과정을 낭만적으로 형상화한 작품)을 통해 오늘날 북한 문학계의 미적 기준을 가늠해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문학 관습에 저항하는 새로움의 물결도 있으니, 북한 문단에서도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는 김해룡의 「서른두 송이의 해당화」(2016, 해안 간석지 건설장에서 벌어진 청년돌격대의 활약상과 사랑 이야기)에서는 ‘혁명적 낙관주의’를 깨뜨린 비극적 서사가 눈길을 끈다. 또한 북한 문단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지만 리준호의 「나의 소대원들」(2016, 탄광 설비소대원들의 일상과 내면세계를 그린 작품)의 경우, 개성 넘치는 성격 묘사로 비주류 하층 노동자의 세계를 섬세하게 형상화한 ‘모더니즘적 노동소설’로서, 북한 문학의 예외적인 작품으로 꼽히는 문제작이라 할 수 있다.

최근 10년 동안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북한 평론계의 지속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주요 작가로는 김혜인, 김철순, 서청송 등을 꼽을 수 있다. 김혜인은 치밀한 성격 창조와 내면 묘사를 통해,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양심의 문제와 현재 직면한 선택의 문제를 대비시켜 갈등을 서사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쌍둥이 형제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 「가보」(2010)는 ‘누가 가보를 물려받아야 하는가’를 둘러싸고, ‘혁명가의 핏줄’(앞 세대의 업적)이 중요한 북한 사회에서 부모의 업적에 의존적인(우리 식으로 말하면 ‘부모 찬스’를 쓰는) 젊은 세대에 대해 각성을 촉구하는 주제 의식을 담고 있다. 「아이 적 목소리」(2012) 역시 탄광과 도시를 배경으로 노동 현장에서 발생하는 양심의 문제를 다루는데, 북한 사회의 관료주의 비판으로도 손색이 없는 서사적 긴장을 담고 있다. 김혜인의 작품들은 북한 문학에서 드물게 가족적 요소와 사회적 양심의 문제를 다루기에 눈길을 끈다.

김철순은 청년 과학자들의 사랑 이야기를 과학적 성취와 연결함으로써 열정의 창조적 전환을 그리는 데 뛰어나다. 사랑은 문학이 탐구해온 가장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소설 속 사랑에 대한 서사는 그 사회가 지향하는 ‘관계 맺기’의 심층을 드러낸다. 그의 소설 「인연」(2013)과 「꽃은 열매를 남긴다」(2012)는 과학기술 발전에 대한 헌신과 청춘 남녀의 사랑을 엮어낸 작품들로, 자기 욕망에 충실한 사람과 냉정하고 현실적인 사람 간의 관계가 사랑의 서사를 끌고 나가기도 하고, 세련된 플롯과 극적인 반전으로 ‘애국주의적 사랑’을 낭만적으로 탁월하게 형상화하기도 한다. 서청송의 작품들은 젊은 시대감각과 새로운 개성들로 넘쳐난다. ‘손전화 통보문’(문자 메시지)이나 ‘휴대용 콤퓨터’(노트북), ‘다매체화’(멀티미디어화) 같은 용어도 자연스럽게 소설에 녹아들어 북한 젊은이들의 일상과 언어를 발랄하게 재현한다.

제2부와 3부에서는 생태소설, 페미니즘 소설, 실화문학, 지하문학, 전쟁문학 등 다양한 소재와 주제의 작품들을 통해 북한 문학 특유의 다채로움을 엿볼 수 있다. 아울러 청년, 여성,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 가족과 지역공동체와 국가기구의 긴장 관계 등 북한 사회의 내밀한 이야기에도 좀 더 가까이 귀 기울여본다.

고난의 행군 이후 황폐해진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북한에서는 대대적인 ‘산림복구전투’ 운동이 펼쳐졌는데, 이를 형상화한 작품을 통해 북한 사회의 생태환경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산림 복구 사업을 둘러싼 지역공동체와 국가기구의 긴장 관계, 미래 세대의 윤리 문제, 무분별한 벌목과 개간을 둘러싼 공적/사적 욕망과 생태주의의 충돌, 반환경적인 생산력 중심주의에 대한 성찰 등 흥미로운 지점이 많다. [황철현의 「푸른 숲」(2016), 김창림의 「생활의 선율」(2017), 김향순의 「두 번째 작별」(2016), 박성호의 「출발의 아침」(2016)]

2000년대 북한의 문학 작품에서 여성은 어떻게 형상화되고 있을까? 그리고 고난의 행군이나 선군시대·선군정치 같은 사회적 사건은 어떤 방식으로 여성의 일상에 개입해왔을까? 고난의 행군 시절에 대한 고통스러운 기억과 공포, 생산력 증대를 위한 농촌 여성들의 힘겨운 노력, 그리고 그 과정에서 불거지는 세대 갈등과 젠더 갈등 등을 통해 당시 국가기구의 ‘국민 총동원 체제’(남성성의 이데올로기)에 포박된 북한 여성의 상황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조인영의 「한 녀인에 대한 추억」(2005), 윤경찬의 「넓어지는 땅」(2001), 김영선의 「불길」(2005)]

북한 문학에서 특기할 만한 점은 ‘실화문학’(우리 식으로는 ‘르포문학’)이 하나의 장르로서 중요하게 다뤄진다는 점이다. 작품 공모전에서도 ‘소설문학’ 부문을 ‘단편소설, 단편과학환상소설, 단편실화문학, 수필’ 등으로 구분할 만큼 실화문학은 별도의 영역으로 취급된다. 실화문학은 ‘사실’과 ‘문학’이 중첩된 장르이기에 그 어떤 장르보다 북한 사회의 생생한 현실이 담긴 ‘내밀한 이야기’다. 북한 민중이 공유하는 ‘진짜 이야기’, 민중의 생활사가 투영된 작은 역사의 구현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남한의 독자들에게는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한철순의 「보석은 땅속 깊이」(2012), 리성식의 「필요한 사람」(2014), 리룡운의 「초석」(2014), 전충일의 「재부(財富)」(2012)]

이외에도 2011년 김정일 사망 직후 애도와 치유의 문학이 어떻게 ‘기억의 정치’를 구현했는지, 최고지도자의 ‘현지지도’라는 독특한 통치술이 당과 인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등을 살펴보고 김하늘의 「영원한 품」(2012), 최종하의 「깊은 뿌리」(2012), 김금옥의 「꽃향기」(2012), 석남진의 「사진에 깃든 이야기」(2012)], 북한에서 거의 유일하게 ‘아름다운 비극’이 허락된 전쟁 서사를 통해 북한 사회가 안고 있는 분단의 공포와 불안의 심연을 들여다본다[오광천의 「대렬 선창자」(2016), 백상균의 「로병 동지」(2017), 김기성의 「금반지」(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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