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으로 치닫는 종교에 대한 질문과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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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으로 치닫는 종교에 대한 질문과 성찰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10.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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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오 마이 갓 오 마이 로드: 바이러스ㆍ종교ㆍ진화 | 방영미 지음 | 파람북 | 248쪽

종교학 박사 방영미는 우리 시대 종교의 존재 양상과 신앙의 문제를 경쾌하고 예리한 필치로 펼쳐내고 있다. 몇몇 학자의 주장처럼 종교는 소멸하지 않고, 여전히 건재하다. 저자는 종교가 존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떻게 존재해야 할지를 깊게 들여다본다. 2017년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했을 때, 개신교 일각에서는 종교가 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라는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우리는 한국의 민족해방 투쟁과 교육, 복지 등에 관해 개신교가 기여한 바를 잘 알고 있고, 한때 기독교인은 존경받는 대상이었다. 그렇게 존경받던 기독교와 기독교인이 언젠가부터 사회의 발목을 잡는 세력이 된 것은 아닌지 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다. 또한 극단적 반공주의와 소수자 혐오의 정서를 퍼트리는 전초 기지 역할을 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코로나19 사태를 거치면서 그런 문제 제기가 전혀 근거 없지 않았다는 점을 어느 정도 드러냈다. 전 세계적 위기 상황에서 시민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저버려 교회는 바이러스 전파의 온상이 되고 말았다. 게다가 거친 입으로 비난받았던 전광훈 목사는 드디어 국가의 방역 체계를 위해하는 심각한 사태를 초래했다. “한국교회는 가뜩이나 추락 중이었는데, 전광훈이라는 망가진 날개로 수직 낙하의 가속도가 붙어버렸다. 어쩌면 이것이 그의 소명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탐욕과 거짓 위에 세워진 위선의 교회를 지금 제대로 붕괴시키는 중이다.” 8·15 극우집회를 계기로 개신교에 대한 반감은 크게 확산되었다. 음식점 등에 ‘기독교인 출입금지’라는 문구가 붙기 시작한 것은 많고 적음을 떠나 가볍게 볼 사안이 아니다. 이 책은 코로나19의 시대 기독교 또는 종교가 가야 할 길을 성찰하고, 세상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 짚어가고 있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종교에 대해 뼈아픈 성찰을 전개하지만, 아이를 목욕시킨 후 물뿐만 아니라 아이까지 버리는 태도를 경계한다. 종교의 여러 폐단 못지않게 종교가 인간사회에서 이어온 긍정적 측면과 문화의 총체라는 사실마저 부정하지는 말자고 한다. 그러면서 21세기의 종교와 신앙의 양상을 제시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제도종교에 구속받지 않는 신앙의 양상은 사실 기독교가 융성했던 서구사회에서 등장했다. ‘선데이 크리스천’이라는 말이 있다. 일요일에만 경건한 마음으로 종교예식에 참여하는 신자를 조롱하는 말이지만, 한편 어찌 되었든 주일을 거르지 않아야 한다는 제도종교의 불문율을 반영한 말이기도 하다.

저자는 코로나19가 함께 종교 예식을 치르는 데 치중한 제도종교의 관행에 타격을 가했음을 지적한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기 위해 처음으로 종교 예식이 중단되거나 온라인으로 대체됨으로써 ‘대면’의 신앙생활에서 ‘비대면’의 신앙생활이 함께하게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초유의 사태는 처음엔 종교계에 극심한 타격을 가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신앙생활의 폭을 넓혀주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는 저자가 이 책에서 일관되게 제기했던 제도종교에 매이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자는 논지와 맥을 같이한다.

중세 말기 흑사병이 유행했을 때, 사람들은 성당 안에 들어가면 그 혹독한 감염병을 피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이 좁은 공간에 모임으로써 병은 더욱 확산되었고, 그들이 믿었던 피난처는 병의 전파지가 되고 말았다. 최근 코로나19를 둘러싼 종교계의 모습은 중세기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는지 모른다. 코로나19를 통해 스스로 온전히 돌아볼 수 있다면, 본연의 역할이라는 차원에서 두고 본다면 이 사태에서 최대의 수혜자는 역설적으로 종교일 수 있다.

저자는 무지몽매한 종교를 극복해야 온전한 신앙인으로 살 수 있다고 재차 주장한다. 시대는 변하고 종교가 관할했던 많은 영역은 일반 사회로 옮겨졌다. 이를 다른 말로 ‘세속화’라고 하는데, 건강한 종교는 사회와 조화해야 한다. 세상의 상식과 어울리며, 시민적 감성과 수준을 외면하지 말아야 종교는 건강해지고 그 본연의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의 현실, 코로나19 사태와 관련된 종교의 속살을 예리하게 관찰하고 심도 있게 분석했다. 저자의 심도 깊은 비평은 더는 외면받지 않는, 더는 시대에 뒤떨어진 종교에서 활기차고 건강한 종교와 신앙생활의 첫걸음을 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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