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대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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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대에게 공부는 어떤 의미일까?
  • 함인희 이화여대·사회학
  • 승인 2020.10.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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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대학원생 제자로부터 최근 웃픈(?)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신칠거지악(新七去之惡)(?)이 새롭게 등장했다는데, 서른 살 넘어, 외모도 별 볼 일 없고, 가족 배경도 내세울 것 없는 데다, 결혼도 못 한 채, 취직과는 거리가 먼 순수학문을 하기 위해, 대학원에 진학하는 여자를 일컫는 말이라는 게다. 웃자고 하는 농담조의 이야기였지만 왠지 뒷맛이 씁쓸해 옴을 감출 수 없었다.

오랜 직장생활을 접고 나이 마흔에 다시 공부를 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한 93학번 제자는 20여 년 만에 다시 들어간 강의실에서 일종의 문화충격을 받았노라 했다. 자신이 대학 다닐 때만 해도 대부분의 학생이 전공에 대한 호기심이 비교적 왕성했고, 전문지식을 전달해주는 교수님을 향한 존경 어린 눈길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다시 찾은 대학 강의실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했다. 전공에 대한 호기심은 물론이요 교수님에 대해서도 관심조차 없는 듯했고, 그저 취업을 위한 스펙 쌓기의 일환으로 대학 졸업장과 자격증을 동일시하는 분위기에 적잖이 실망을 느꼈다 했다.

물론 지식과 정보를 얻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한 상황에서 대학 강의실이 변화의 무풍지대로 남아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일 것이다. 덕분인가, 세상은 눈부시게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 중인데 왠지 고답적(高踏的)인 분위기가 물씬한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학생들을 향해, 공부는 그들 삶에서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솔직한 생각을 묻고 싶었다.

나의 뜬금없는 우문(愚問)에 학생들은 제법 현명한 답변을 남겨 주었다. 그중 일부를 소개하자면, “제가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힘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질문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과정입니다. 이를 통해 나 자신이 걸어온 길을 새롭게 해석하고 또 걸어가야 할 길을 확장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 공부의 애씀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 기대”(석사 2학기)한다는 의젓한 의견도 있었고, “‘대학에 가고, 직장을 갖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의 과정 중, 직장을 다니다 누구나 그렇듯 슬럼프에 빠졌습니다. 퍽이나 안정적인 일자리였지만 더 가진 이들을 위해 존재하는 조직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일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하던 중,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을 만났습니다. 책의 서문을 읽다가 생각지도 못하게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내가 뭘 하겠어, 내가 한다고 달라지겠어?' 같은 패배 의식에서 벗어나, 먼지 같은 보탬일지언정 그 길을 따라가고 싶었다”(박사 1학기)는 심오한 고백도 있었다.

고등학교 때까지는 '외우기'를 통해 성적을 잘 받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했었는데 “대학교 때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공부가 무슨 의미인가 회의가 들었고, 시원하게 때려치웠습니다. 세상을 향해 나아갔고, 내가 알고 있던 공부를 안 했음에도, 지나고 보니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법, 세상과 함께하는 법을 치열하게 배웠고, 다듬고 다듬어져, 내가 사랑하는 전공(특수교육)으로 돌아와,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가족이 조금 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고 싶어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중략) 내가 배운 지식을 사용해서 소외된 사람들에게 다가가 우리의 삶으로 껴안는 것. 이 세상을 아주 조금이라도 아름답게(=평등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나의 공부의 의미”(박사 2학기)라 했던 감동적 글도 있었다.

나 또한 학생들에게 “여러분이 올려준 주옥같은 글을 읽으면서, 지금까지 내게 공부는 무슨 의미였을까? 앞으로도 펜을 놓는 순간까지 어떤 의미여야 할까? 곰곰이 생각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는 답글을 남겨 주었다.

요즘 학생들은 예전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책 읽는 능력도 감퇴했고 동시에 생각하는 힘도 떨어졌다는 편견을 가졌었는데, 이렇게 소통을 하고 보니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안도하게 된다. “책 읽기의 재미를 느끼는 순간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하며 기뻤다”는 학생들이 있기에,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시대에도, 공부의 의미는 역시 책 읽기의 재미, 생각하기의 재미 그리고 생각을 글로 담는 재미 속에 있음을 고수해도 좋으리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함인희 이화여대·사회학

이화여자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미국 에모리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자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인간 행위와 사회 구조』, 『사랑을 읽는다』, 『여자들에게 고함』이 있고, 공저로 『일상과 예술 속의 커뮤니케이션』, 『중산층의 정체성과 소비문화』, 『변화하는 사회 다양한 가족』, 『한국사회 권력이동』, 『한국의 일상문화와 몸』, 『현대 한국인의 세대경험과 문화』, 『대중매체와 가족』, 『가족과 친밀성의 사회학』, 『오늘의 사회이론가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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