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을 지식안보의 원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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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을 지식안보의 원년으로!
  • 홍성민 동아대학교·정치철학
  • 승인 2019.12.3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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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시론_ 한국 대학과 지식안보

소위 세계화의 바람에 스쳐간 후 한국의 대학은 경쟁과 순위 다툼으로 지금까지 치달아 왔다. 발전기금의 모금 액수가 사립대 총장의 최대 치적으로 평가되고, 학생들의 취업률이 보직교수들의 능력으로 평가되는 것이 오늘날 한국 대학의 실상이다. 신진교수들은 업적평가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서 논문을 쓰는 기계가 되었고, 대학 신입생은 취업을 위해서 고시학원과 자격증 학원을 전전하는 삭막한 취업준시생이 되고 말았다. 교수에게도, 학생에게도 대학 강의실은 이제 더 이상 학문을 하는 곳이 아니다. 이제 한국의 대학은 돈 버는 데 혈안이 된 초라한 ‘주식회사’와 같다. 대학이 왜 이렇게 몰락했을까?

나는 그 원인을 한국 대학의 식민성에서 찾으려 한다. 한국 대학은 그 시작부터 미국 패권의 입맛에 맞도록 주물러져 왔으며, 따라서 지적 식민성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지식인의 책임이 크다. 비판적 반성 능력이 사라진 한국의 대학 교수들이 한국 대학의 몰락을 자초했다고 감히 말하고자 한다. 또 미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데 있어서 지식이 중요한 수단이며, 따라서 주권독립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른바 지식안보에 대한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하고자 한다. 이와 관련된 외국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한국의 경우를 논의해 보자.

우선 2차 대전 이후 프랑스 사례를 보자. 미국의 트루먼 정부는 전후복구를 위해서 엄청난 돈을 유럽에 제공하면서 미국식 대학을 설립하라고 요구한다. 유럽의 정신문화를 지배함으로써 경제투자의 이익을 장기적으로 빼먹자는 노림수가 배어 있었던 것이다. 이를 두고 당시 프랑스의 두 지식인이 충돌한다. 레이몽 아롱과 장 폴 싸르트르. 아롱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서 자유주의 사상가로 인정받게 되고, 싸르트르는 이에 맞서 싸운 좌파 지식인으로 대비된다. 충돌의 타협점은 파리 시내에 대학원 중심 대학을 설립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때 들어선 학교가 바로 파리 고등연구원이다(EHESS). 이곳을 중심으로 미국의 이데올로기가 전파되기 시작했고, 하여 10년 후에는 프랑스 대학생들이 미국식 리바이스 청바지를 입고, 할리 데이비드슨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것이 유행하게 된다. 이에 비하면 한국에서 미국의 대학 정책은 훨씬 천박하고 노골적이었다. 1945년 미군정이 경성제국대학을 서울대학으로 전환시키면서 미국정책에 반대하는 좌파 지식인들을 의도적으로 배제했다. 미군정 산하에 설치된 조선교육위원회가 대학교원 인사를 결정하였는데, 미군정은 사회질서를 유지한다는 차원에서 좌파지식인, 민족주의자들은 배제하면서도 친일 지식인들은 그대로 잔존시켰던 것이다. 한편 1946년 미군정의 교육원조계획에 의거하여 유학생이 파견되기 시작했다. 또 미국 공보국이 지원하는 단기 유학프로그램도 있었는데, 신문사의 편집국장과 같이 오피니언 리더들이 선발되어 6개월에서 1년 정도 미국을 시찰하는 형식이었다. 현재에도 미국 대사관에는 한국의 반미 인사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미국여행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결국 한국의 근대교육과 대학의 성립과정 자체가 미국의 헤게모니 아래서 성립되다 보니, 자체적으로 인재들을 생산해 내는 전통이 사라지고 말았다. 1948년 유진오는 ‘대학의 위기’라는 제목의 칼럼을 <조선교육>이라는 잡지에 기고하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교수진을 우리 손으로 양성하는 데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듯하니, 이것도 또한 가탄할 일이다.”

두 번째는 1980년대 남미의 사례를 살펴보자. 2차 대전 이후 1970년대까지 미국이 전 세계에 홍보했던 근대화 이론은 남미의 종속 이론에 의해서 심각한 위기를 맞게 된다. 대표적인 이론가였던 오도넬은 ‘관료적 권위주의 모델’을 주창하면서, 미국식 수입대체 산업화가 남미의 1차 산업을 경제적 희생양으로 내몰았고, 민중의 저항을 막기 위해서 남미 여러 나라에 권위주의 국가가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1980년대 미국의 정보국은 남미의 종속 이론가들을 회유하기 위해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남미 사회연구센터를 설립한다. 여기에 초대원장을 맡게 된 사람이 바로 오도넬이다. 후일 그는 콜롬비아 대학의 연구교수로 초빙되어 막대한 연구지원금을 받은 대가로 미국식 근대화이론을 개조한 “민주화 이행론”이라는 이론을 연구, 발표한다. 이때부터 남미에서 마르크시즘에 기반한 종속이론은 위력을 상실한다. 그리고 남미가 경제적으로 낙후하게 된 원인은 자국의 정치 리더십이 부족한 탓이라는 논리가 대세가 된다. 한편 이것이 한국에는 ‘민주주의 공고화론’으로 수입된 후, 실질적인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관료들의 리더십이 중요하다는 논리로 정착된다. 쉽게 말해 ‘민주화 이행론’과 ‘민주주의 공고화론’은 남미와 한국과 같은 제 3세계에서 미국의 책임을 회피하도록 한 이데올로기적 지식체계였던 것이다.

셋째 일본의 경우를 보자. 1980년대 일본은 경제적 호황을 기반으로 막대한 자금의 정부출연금을 모아 저팬파운데이션(Japan foundations)을 설립한다. 이를 바탕으로 전 세계의 인재들을 일본으로 초청하여 친일파를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미국이 수행했던 세계 패권의 경영학을 배워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헤게모니를 구축하려고 시도한 것이었다. 특히 미국 내의 일본 연구자에게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여 일본에 유리한 연구 결과를 발표하도록 한다. 독도 문제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세계적인 여론을 이 시기부터 관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와 발맞추어 전범기업들이 배후에 있는 사설 장학재단도 생겨난다. 사사가와 재단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일본에 적대적이었던 중국과 한국의 지식인들을 회유하는데 적극적으로 나선다. 아마도 서울대 후문에 있다는 연구소도 이러한 일본 재단과 연계되어 있을 듯하다. 한편 이즈음 일본학계는 역사학을 중심으로 두 가지 큰 이론을 발표한다. ‘조공 무역론’과 ‘식민지 근대화론’이다. 전자는 과거 일본과 중국의 관계가 대등했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고, 후자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한국의 경제발전에 유익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현재 식민지 근대화론은 한국의 보수 진영의 대표적인 행동논리로 안착되어 한국 정치의 분열을 가중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과 한국 대학의 몰락은 이러한 미국 헤게모니 논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980년대 초반 레이건 행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대학에 투자되던 공적 자금을 제한한다. 여기에는 베트남 전쟁을 반대했던 대학의 풍토를 정부에 유리하게 바꾸려는 의도가 도사리고 있었다. 당시 좌파 지식인의 피난처가 대학이었는데, 대학의 순위 경쟁을 조장함으로써 성장 위주로 대학 운영을 하도록 만들었고, 여기에 비판적 좌파지식인은 자연스럽게 도태될 수밖에 없었다. 또 자본의 세계화가 유행하면서 교육도 상품이라는 논리를 개발하고 유포시켰다. 대학을 기업으로 전화시키면서 대학으로 유입되는 학비와 기부금 그리고 연구지원금 등이 천문학적 액수에 달하기 때문에 이것을 무역의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교육을 생산과 소비가 지배하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것이 신자유주의 대학정책이 탄생하게 된 진짜 이유이다. 여기에 미국 정보국이 뒤에서 조종하는 사설재단이 만들어져 전 세계에 미국의 세계정책을 홍보하기에 이른다. NED(National endowment for Democracy)는 한국과 같은 제 3세계에 미국의 신자유주의 정책과 세계화 논리를 전파하는 진원지이다. 이곳으로부터 나오는 지원금과 연구프로젝트가 제 3세계 학자들을 매료시킨다. 이러한 일을 적극적으로 수행 한 사람이 바로 김영삼 정부에서 세계화 위원회를 이끌었던 사람이다. 그의 보수담론은 미국정치학계가 만들어 낸 "민주화 이행론", 세계은행이 생산한 "거버넌스",  투기적 상업은행이 창출한 "워싱턴 컨센서스"를 한국식 버전으로 바꾸어 놓은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담론이다. 필자가 판단하건대, 1990년대 세계화론은 재정위기에 봉착한 미국의 경제가 생존의 활로를 찾으면서 세계를 상대로 미국 금융투자를 허용할 것을 주장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했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데올로기에 발맞추어 경제구조를 바꾸고, 대학을 개혁해 왔던 것이다. 비판적인 지식인이 사라지고, 돈과 권력 앞에 무기력해진 대학교수의 무능력이 문제이다. 

군사력이 헤게모니 국가를 만들고, 경제력이 세계경제의 패권국가를 만들었던 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지식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었다. 군사와 경제 못지않게 지식의 힘을 경계하고 그에 대한 방어책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그동안 한국은 여과장치 없이 미국의 지식을 받아들이면서 정치가 썩어가고, 경제가 피폐해지고, 대학이 황폐해 졌다. 그래서 국회는 늘 개점휴업상태가 되어 있고, 40대 가장들이 생활고에 목을 메고 있으며, 대학이 구멍가게가 되어 청년들이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나는 한국대학의 위기는 지식의 위기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2020년을 지식안보의 원년으로 선언하자.    
 

홍성민 동아대학교·정치철학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10대학에서 정치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로 『포스트모던의 국제정치학』(편), 『Habitus, Corps, Domination』, 『문화와 아비투스』, 『문화와 계급』(편), 『정치사상, 정치리더쉽, 한국정치』(편), 『부르디외와 한국사회: 이론과 현실의 비교정치학』, 『지식과 국제정치; 한국의 민주화와 학문의 과제』(편), 『문화정치학 서설: 한국 진보정치의 새로운 모색』, 『구별짓기와 취향의 정치학; 프랑스와 한국사례의 비교연구』, 『Culture and Politics』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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