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잡대들”이 사라지면, 댁은 괜찮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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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잡대들”이 사라지면, 댁은 괜찮으시겠어요?
  •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 승인 2020.10.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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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호랑이 담배 먹던 옛적부터, 무한한 은하들 변두리 행성 지구에 작은 나라가 있었어요. 흥망성쇠 하는 열국 틈에서 오천 년 동안 국명이 거듭 바뀐 이 소국은 현재 대한민국이에요. 이곳 교육열이 행성 1등인데, 어릴 적부터 부모들 등쌀에 명문대 진학을 위해 삽니다. 왜냐면 여기 국민은 개성보다 흙수저, 은수저, 금수저 계급으로 평가되는데 신분 상승에 학벌이 절대적이기 때문입니다. 우주 귀퉁이의 행성 주변 소국에서 명문대 출신이 아니면 낙오자라니,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토끼굴을 통해 체험한 동화보다 더 이상한 나라입니다. 지배계급이 수호하는 얼토당토않은 신분체제 하에서 이 나라는 세계 최저 출산율, 최고 자살률, 행복지수 최하위권의 스트레스 왕국이 되었어요.

여기에서 올해 대학 수시전형이 있었어요. 수능응시 접수 인원 50만 이하로 전체 대학 정원에 모자라기에, 많은 지역 사립대가 존폐의 기로에 있대요. 학생들이 가까운 지방대를 외면하고 학령인구 급감으로 자리가 빈 ‘인-서울’ 대학을 선호하니까요. 게다가 신입생 충원율 3% 미달 시 내년 교육부 3주기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에서 재정지원 제한 대학이 될 확률이 높아져요. 2024년에는 현재 대학 정원에 입시생 12만이 모자라니, 곧 “지잡대들” 절반이 ”폭망”한데요.

이상한 나라의 수도권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외쳐요. 지방대 난립은 이전 정권들의 실패작이니 폐교가 마땅하다고요. 물론 대학구조개혁이 필요하고, 부도덕한 부실 대학들은 수도권 밖이든 안이든 정리돼야지요. 그런데 왜 지방사립대만 “지잡대”로 비하되고 폐교되나요. 전부 수도권 대학보다 부실 교육으로 경쟁에 뒤지는가요? 고질적인 국가 행정·교육정책의 책임을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지역대학들에 떠맡기네요. 정부 정책의 실패 여부를 떠나 많은 도시들은 지역대학에 생존을 의존하고 있어요. 지방대들의 흥망이 곧 지방 도시들의 성쇠입니다.

의대, 한의대, 치대, 약대와 법학전문대학원을 갖추고 8개 병원을 운영하는, 제가 속한 2만 구성원의 대학이 무너지면 30만 인구의 도시 존폐가 불투명해요. 인구 65만의 부근 도청소재지도 일부 대학이 소멸하면 스러진대요. 이 대학들이 미련해서 예전에 “문만 열면 학생들이 몰려올” 수도권으로 옮기자는 구성원들의 요청을 물리친 게 아녜요. 대학 이전은 시민들과 지자체의 결사 항쟁에 봉착해요. 대학이 아니라 도시 생존의 문제니까요. 지방대들이 무엇을 잘못했냐고요? 네, 서울에 대학을 세우지 않았고, 기회가 있었음에도 수도권 대학을 불법 인수하지 않았고, 지역 사회와 상생하는 어리석은 죄를 범했지요. 그럼에도 이상한 나라는 수도권 대학들 및 각 도 지역거점 국립대 1개씩 존속할 정책을 진행합니다. 대한민국 지방도시 소멸화와 전국의 수도권화 정책이 아닐진대, 수도권 대학 비중이 40%에 달하니 학령인구 급감에 비례해 수도권 포함한 전국 대학 정원을 고루 줄여야 하지 않겠어요?

이상한 나라의 지역 토끼들은 장차 전체 인구의 70~80%가 수도권에 살게 될 때 역사책 속으로 사라질까봐 지역 살리기에 몸부림칩니다. 아, 이상한 나라가 있는 한반도가 토끼가 아니라 호랑이 형상이라는 해석이 맞네요! 이제 이상한 나라의 토끼굴은 호랑이굴이 되겠지요. 여기는 21세기에도 다른 문명국들과 달리 약육강식이 자랑거리예요. 거대한 ‘SKY캐슬’ 성벽을 비롯해 학연 중심의 별의별 조직 밖에서 절대다수 국민은 패배자로 낙인찍힙니다. 그런데 궁금해요. 토끼들이 약육강식 탓에 사라지면 호랑이들은 옛날처럼 담배 먹고 살까요? 수도권에 진출할 지방 토끼들이 없어지면 누가 호랑이들을 먹여 살릴까요? 남은 토끼들이 생존도 힘든 “헬조선”에서 어리석게 아이를 계속 낳아줄 것 같진 않아요. 그때는 호랑이들이 약육강식의 기득권을 버릴 수 있을까요? “지잡대들”이 망하면 도미노 현상으로 지방이 쇠락하고, 수도권에 매년 올라가서 댁의 풍요한 삶의 수단이 되어줄 토끼들도 사라질 터인데 괜찮으시겠어요?
(* 이 글은 2018년 졸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교수>의 제2편입니다.)


조은영 편집기획위원/원광대·미술사

미국 델라웨어대학(University of Delaware)에서 미술사 석사와 철학 박사 취득, 국립 스미소니언박물관 Fellow와 국제학술자문위원, 미국 국립인문진흥재단(NEH) Fellow, 중국 연변대학 객좌교수, 일본 동지사대학 국제대학원 객원강의교수 등을 역임하고, 현대미술사학회 회장과 미술사학연구회 부회장을 지냈다. 현재 원광대 조형예술디자인대학 미술과 교수로 원광대 국제교류처장과 한국문화교육센터장, 전라북도 문화예술진흥위원,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 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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