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수업, 한의학계의 교훈과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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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대면 수업, 한의학계의 교훈과 전망
  •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 승인 2020.10.18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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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규용의 행림방담(杏林放談)]

코로나유행으로 인해 모든 교육기관의 비대면 수업이 벌써 세 분기째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허공에 강의하는 것 같아 영 어색하고 학생들의 반응과 대답을 확인하기 어려워 많이 답답하더니만, 이제는 서로 적응해서 리액션과 질문이 곧잘 이어지니 나름 할 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학생들에게도 소감을 들어보니 사전녹화방식 및 수업 유형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필자와 같이 실시간 강의를 진행하는 경우에는 현장감도 있고, 무엇보다 반복해서 들을 수 있어 좋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처음엔 일시적이라 생각하였지만 이제는 긍정적인 장점을 알게 된 이상 향후 한의대의 교육과 연구방법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을 할 필요가 생겼다.

우선 드는 생각은 교육과정 상의 기본지식을 더 이상 수업시간에 해야만 할 필요가 없고, 반드시 같은 대학의 교수여야 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교수진이래야 전국 대학을 다 합쳐도 500명 남짓이고, 기초의학은 과목별로 많아야 2명이어서 세부전공별로 분담하여 심화할 필요가 있었던 참인데, 지금이 바로 변화의 적절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은 한의대 사정만일 수도 있지만, 생각해 보면 소규모대학이나 전국에 몇 안 되는 희소학과 혹은 전공에서도 비슷할 것이기에 고민을 나누는 의미에서 그간의 소감을 공유해 보려고 한다.

코로나유행을 겪으면서 한양방 갈등이 첨예화된 지금, 한의학계는 내외부적 환경변화에 대한 새로운 대응과 해결방법이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예컨대 나날이 바뀌어가는 새로운 질병패턴과 그에 맞는 한의진단치료이론 확립, 해부생리학과 분자생물학 같은 메카니즘 중심 의학패러다임 및 새로이 등장한 임상시험위주 근거중심의학 패러다임에의 적응, 이 두 조건을 만족하는 실험적 입증과 논리 확보 및 연구지원 요청을 위한 과학자 사회와 정부 설득, 과학기술변화에 부합하는 적용방법과 한의학응용기기 개발 등의 작업이 당장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업무들은 한의학연구원과 한의약진흥원까지 합쳐서 600명도 안 되는 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 서양의학은 전 세계 의사들의 연구와 임상과정에서 이들이 자연히 이루어지지만, 한의학은 존속을 위한 자기입증이 훨씬 더 중요하여 교육과 연구의 본말이 전도된 지 오래다. 이런 다방면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의계가 소속을 떠나 특기적성에 따라 인력을 안배하고 분업과 협업시스템을 조직화할 수밖에 없다.

사실은 이밖에 진짜 일이 또 하나 있다. 의학계에서 수시로 날아오는 한의학 공격과 비난에 대한 방어전이다. 의사와 한의사가 증가하면서 의료시장에서 경쟁이 증가하다 보니, 한의학을 공격하면 질병치료 의제를 선점하여 환자를 의사시장으로 유도하는 효과가 있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동시에 한의학의 과학적 근거를 입증하기 위해 기기를 사용하여 측정하고 실험하면 모방이나 하는 한의학이고, 한의학 논리를 가지고 연구하면 비과학적인 한의학이라 비난한다. 그들의 가치관에 맞게 정량화된 과학적 논리와 증거만을 요구하니 그 일만도 벅찬데….

이런 문제들을 타개하기 위한 방법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디서부터 시작할 것인가? 지금까지는 기실 대부분 안에서 북과 장구를 다 치는 인소싱이었고, 아웃소싱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효율적으로 조직화하고 통합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인간의 질병이 자연환경과 사회요소들 간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관계들을 변증이론에 포괄하고 있는 한의학의 천인합일론적 특성 때문에 과학지식이 늘어날수록 습득해야 할 정보량이 커질 수밖에 없다. 비대면 수업을 해보기 전까지는 이를 교수 혼자 감당하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렇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온라인학습에서 관련 분야의 적절한 자료들을 교육에 이용하는 것은 권장사항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과감하게 외부의 관련전문가를 스카웃하고 우리는 한의학의 본질적인 연구와 임상기술에 집중하여야 한다. 문제는 스카웃을 어떻게 하느냐 인데, 이때 반드시 먼저 이쪽에 잠재력과 함께 시장이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유능한 인재의 관심을 유인할 수 있으며, 동시에 어떤 부분에 어떤 작업이 필요한지 분명하게 제시하여야 처음 의도한 목표를 얻을 수 있다. 지나간 선례들을 미루어볼 때, 후자의 경우 작업요구서가 명확하지 않아 분자생물학이나 약리효능 등 실험연구 분야에의 일정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한의학으로 환원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한의대 교육에서, 우리가 원하는 통합적인 의학체계를 갖추기 위해서는 해부생리학과 기능의학적 기초이론의 학습시스템이 필요한데 국내에서는 해당 인력을 스카웃하기가 어려워 아예 요구서를 내밀 수도 없었다. 하지만 이제 외국 대학에서 제공하는 자료들을 이용하는 것은 교육품질 제고와 졸업생의 진로확장 측면에서 바람직하다.

이제 이를 실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작업이 남아있다. 한 학년의 정원이 30명, 50명에 불과한 지방대학이 많은 현실에서 예산은 첫 번째 장애물이다. 또한 교육품질의 표준화는 면허증이 관련된 교육에서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학문의 장기적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연방정부 마인드를 가진 컨트롤 타워가 필요하다. 이 조직은 물론 공적인 목표를 가지고 전체 조직을 연계하여 구성원 전체가 장기적 비전과 목표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잠재력과 시장을 재점검하고 엄밀하게 평가하여야 하며, 여러 분야에서 스카웃된 전문가들이 작업할 수 있는 공통의 연구플랫폼과 통합이론의 얼개를 제시하여야 한다. 또 이 과정에서 각 세부 전공영역별 독자적인 연구방법이 자연히 도출될 것이고 그 정보를 다시 전체와 공유하다 보면 한의학이 견지했던 유기체의학의 지도가 현대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해마다 기업순위가 바뀌고 직업지형이 변화하는 지금, 해체와 융합을 통한 조직의 혁신과 갱신은 존속을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 그러므로 교육과 의료분야에서의 행정적, 법적 규제도 거시, 미래적 관점에서 융통성 있게 적용되어야 한다. 의료는 실천이고 임상기술이어서 이론보다 결과가 선행한다. 환자의 병증을 반복 검증된 이론으로 분석하여 ‘a’로 진단하고 치료하였다 해도 낫지 않았다면 그 이론은 적어도 그 상황에 맞지 않는 것이다. 반대로 환자의 병증을 낫게 하는 치료가 반복적으로 성공한다면 그 치료는 그 병에 효과적인 논리 ‘b’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이론이 과학을 명분으로 치료를 독점한다면 결국 환자에게 불행이며, 의학은 다양한 이론들 중에서 미지의 ‘b’를 찾아 가장 정확한 것을 선별하고 종합하는 과정에서 발전하는 것이다.

한의학이 그동안 사용해온 이론들이 현대의 초중등교육과정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기 때문에 정보보급과 인지도에서 절대적인 열세에 있다. 그렇다 보니 정치적 여론 형성과 다수결로 결정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우리 의제는 늘 설명과 변호부터 시작해야 한다. 냉엄한 경쟁현실에서 힘의 대결을 피하기는 어렵겠지만, 공정한 중재자로서 정부의 객관적이고 세심한 역할을 기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악이나 전통관련 학과들도 비경쟁성과 문화전승이라는 당위성 때문에 좀 다른 면은 있겠지만 크게 보면 우리와 상황이 비슷할 것이다. 만일 정부가 제공하는 경쟁의 마당에서 당초부터 수와 힘에 의해 기울어진 경사가 세심하게 관리될 수 있다면 한의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옵션이 필요한 소비자에게도 큰 기쁨일 것이다.

근 1년 간 비대면 수업을 하다 보니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렀다. 한의학이 과학화도 하고, 4차 산업혁명시대의 첨단기술도 입히고, 양의사들과 경쟁도 해야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과업은 당연히 한의학 본연의 기술향상을 이루어 건강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차제에 자연과 생명의 가치를 고양하며 외로이 분투하는 소수학문들 모두가 비대면 학습경험에서 얻은 아이디어와 교훈들을 다듬고 전망을 확장함으로써 부윤옥하고 덕윤신하며 나아가 더 넓은 세계로 비상하기를 고대한다.


지규용 동의대학교·한의학

경희대학교 한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취득했다. 세명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를 거쳐 현재 동의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로 있다. 대한동의병리학회 회장, 동의대학교 한의학연구소장과 한방바이오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했다. 주요 관심사는 한의학이 예전에 누렸던 정상과학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과 한의학 이론의 일반화다. 저서와 역서로는 『격치고역해』, 『새로운 한의학 터닦기』, 『상한론정해』, 『현대상한론』, 『한방병리학』, 『동양철학과 한의학』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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