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투쟁의 사회학, 혹은 예술가의 사회적 실천과 사회변화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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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투쟁의 사회학, 혹은 예술가의 사회적 실천과 사회변화의 변증법
  • 김동일 대구가톨릭대·사회학
  • 승인 2020.10.1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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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상징투쟁의 사회학: 예술가는 어떻게 세상을 바꿀까』 (김동일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505쪽, 2020.09)   

오늘날 예술의 존재 방식은 어떠한가?

예술은 자율적 실체일까? 예술의 순수성은 여전히 예술이 예술로 존재하기 위해 요구되는 신념이다. 그러나 그 신념은 실재라기보다 허구-이데올로기에 가깝다. 많은 예술가들이 허구에서 벗어나 사회적 문제에 관심을 갖고, 나아가 그 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예술이 추구하는 자유와 해방이 사회적 지배와 억압을 극복하는 것과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술의 다양성과 미학적 실험은 사회공간의 정치적 민주화와 서로 얽혀 있다. 천재로 인정받고자 하는 젊은 예술가의 희망은 생산의 현장에서 착취당하는 노동자 계급보다 못한 예술가의 현실과 마주친다. 예술의 자유와 해방, 미학적 도전,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존엄을 지키는 일은 바로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회적 조건을 확보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예술의 순수성과 자율성, 그리고 그것들을 실현하는 주체로서 예술가의 자격은 특정한 사회적-객관적 조건과 분리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처음부터 예술가의 사회적 개입은 예술가에게 부여된 역사적 운명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예술은 여전히, 왜 이렇게 초라할까

예술가는 순수의 영역에서 안온한 거처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 좁은 거처 밖에서는 대부분 존재감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따금 TV 심야시간에 편성되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이나 대형서점의 인문예술 코너에서 고학력 교양층을 겨냥하는 출판물들은 여전히 동시대 천재들의 신화를 과시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 일상에서, 거리에서 그런 신화는 무용하거나 무시된다. 젊은이들은 예술가와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기 어렵다. 예술가는 더욱 그의 좁은 작업실에 유폐된다. 유배된 작업실에서 미술관이나 공연장의 화려한 조명은 더욱 간절해진다. 그럴수록 예술가의 사회적 삶은 무력해진다. 언론에 오르내리는 소수의, 소위 주류를 제외하면 대부분 예술가들의 미학적 실천은 가까운 장래조차 기약하기 어렵다. 특히 청년 예술가는 질곡의 삶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을 강요받고 있다. 대다수의 예술가는 사회적 무능의 상징이며, 그들이 생산한 작업은 성가신 ‘공해’로 취급당한다. 오늘날 대학의 쓰레기장에서 의미 있는 작업들이 버려지고 소각되는 예는 더 이상 애석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필자는 『상징투쟁의 사회학』(커뮤니케이션북스, 2020)에서 예술과 사회의 접촉면을 복원하고  미학적 실천을 통해 당당하게 사회와 맞서고자 했던 예술가들을 기억하고자 했다. 흥미롭게도 사회학은 이미 여러 곳에서 미학이나 예술학보다 더 예술의 의미와 사회적 중요성을 지적해 왔다. 뒤르케임은 그의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Les formes elementaires de la vie religieuse』 (노치준・민혜숙 역, 1912/1992)에서 ‘의례’(ritual)가 집단을 구성하는 원리라는 점을 밝힌 바 있다. 그가 말하는 의례는 다양한 상징과 몸짓들을 포함한다. 오늘날 우리가 예술로 호명하는 것들은 의례의 일부이자 의례 그 자체를 이룬다. 의례의 상징과 몸짓들은 그것을 공유하는 사람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구성한다. 이미 예술은 그 뿌리부터 사회를 구성하는 원리였다. 그때 노래하고 춤추고 그렸던 그 사람들은 곧 제사장이자 지배자였고, 또한 예술가이기도 했다. 피에르 부르디외는 『예술의 규칙: 문학장의 기원과 구조Les règles de l'art: genèse et structure du champ littéraire』(하태환 역, 1992/1999)에서 장 개념을 통해 예술과 사회의 관계를 고찰했다. 역사적으로 형성된 특수한 사회공간으로서의 예술장은, 다른 개별 장들과 마찬가지로, 장 밖의 사회공간과 관계를 맺는다. 장 내 투쟁의 지형은 장 밖 사회공간의 상황과 분리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사회공간을 지배하는 힘, 그 가운데서도 ‘국가’의 압력은 개별 장들을 동형적 형태로 구조화한다. 부르디외는 이 동형성을 ‘상동성’으로 호명한다. 상동성은 예술장과 사회공간 사이에도 관철된다. 그러나 그러한 예술장과 사회공간 사이의 관계 속에서 예술가들의 미학적 실천이 사회공간을 역전적으로 재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도 열리게 된다.

▲ 가는패, 〈노동자〉, 1987민중미술은 전시장과 현장에서 다양한 미학적 실험을 수행했다. 특히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민중미술가들은 ‘걸개그림’을 통해 광장과 거리를 민주주의를 숭배하는 장소로 변화시켰다.
▲ 가는패, 〈노동자〉, 1987민중미술은 전시장과 현장에서 다양한 미학적 실험을 수행했다. 특히 현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민중미술가들은 ‘걸개그림’을 통해 광장과 거리를 민주주의를 숭배하는 장소로 변화시켰다.

상징투쟁의 이중성

필자는 『상징투쟁의 사회학』에서 ‘상징투쟁’ 개념을 통해 예술가들의 미학적 투쟁이 사회공간을 역동적으로 재구성할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자 했다. 물론 부르디외의 전체 저작에서 상징투쟁은 예술적 실천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장 내 참여자들 사이에서 수행되는 인정투쟁이라는 보다 포괄적으로 의미로 사용된다. 장 내에서 벌어지는 인정투쟁의 결과물은 일종의 ‘오인효과’를 통해 장 밖의 대중에게 자동적으로 승인된다. 예술장 내에서 수행되는 예술가들의 미학적 인정투쟁은 자율과 순수의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장 밖 사회공간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예술가들의 미학적 실천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미 사회적 개입을 포함한다. 상징투쟁의 관점에서 예술가의 미학적 실천은 그 정당성을 장 내외에서 인정받기 ‘위한’ 투쟁이며, 그렇게 인정받은 상징을 ‘통한’ 투쟁이다.

예술과 사회의 열림과 닫힘

▲ 〈오아시스 동승동 프로젝트 720〉 오아시스 동인들은 2005년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유 건물로 한동안 비어 있던 건물을 720시간 동안 점거,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벌였다.
▲ 〈오아시스 동승동 프로젝트 720〉 오아시스 동인들은 2005년 당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소유 건물로 한동안 비어 있던 건물을 720시간 동안 점거,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벌였다.

『상징투쟁의 사회학』은 예술가의 개입과 사회의 요구 ‘사이’에서 벌어지는 상징투쟁의 이론과 경험을 동시대 한국미술의 상황에서 다룬다. 한국사회에서 사회적 변화와 예술표현 가능성의 열림과 닫힘은 그런 상징투쟁의 결과라 할 수 있다. 1부는 피에르 부르디외의 사회이론을 중심으로 상징투쟁을 포착하기 위한 기본적 어휘들을 살펴본다. 먼저 하우저의 반영론과 부르디외의 장 분석을 상호 재해석할 때 우리는 하우저보다 더 하우저다운 부르디외, 부르디외와 더 부르디외다운 하우저를 만날지도 모른다. 또 미술관을 상징투쟁이 수행되는 제도적 교차점으로 설정하고, 국립현대미술관, 리움, 대안 공간을 중심으로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예술과 사회의 변증법을 살펴본다. 나아가 동시대 예술가들의 상징투쟁의 근거가 되고 있는 커뮤니티와 상징투쟁으로서의 커뮤니티아트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2부는 상징투쟁의 양상을 개별 사례들을 통해 살펴본다. 예술가의 사회적 개입의 전형은 1980년대 민중미술에서 발견된다. 그들은 민주주의의 집합표상을 제출했다. 걸개그림과 열사의 초상은 민주화를 숭배하는 공동체로서 민중을 구현했다. 그 가운데서도 1980년대 민중미술 동인 ‘두렁’은 민중의 일상에 스며드는 감성투쟁을 통해 상징투쟁의 차별화된 일면을 보여 주었다. 2000년대 중반 불꽃처럼 타올랐다가 미련 없이 소진된 오아시스 동인의 활동은 ‘점거’라는 범죄적 행동의 미학화를 통해 사회 공간에서 ‘유휴 공간 활성화’라는 정책적 상상력에 크게 기여했다. 임흥순은 영화와 시각예술의 차별적 아비튀스를 혼용함으로써 역사와 사회를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한다. 아울러 스티브 잡스의 사례는 상징투쟁의 한 형태로서 창의성의 가능성을 제공한다. 『상징투쟁의 사회학』은 예술과 예술가들이 무익하거나 무의미한 존재가 아니라 이미 사회의 깊숙한 곳까지 틈입해서 우리 사회를 펄떡거리게 하는 심장임을 보여주고자 한다. 


김동일 대구가톨릭대·사회학

대구가톨릭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다. 서강대학교 사회학과 학부, 석사, 박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9년 한국 사회학회 논문상, 2011년 월간미술 대상 학술평론 부문을 수상했다. 『피에르 부르디외』(2016), 『예술을 유혹하는 사회학: 부르디외 사회이론으로 문화읽기』(2010) 등을 출판했다. 예술 현상을 사회학적으로 개념화하거나 사회학적 개념을 미학화하는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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