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박을 벗어난 생물처럼”-식민지 조선의 ‘여명’, 김우진과 일본
상태바
“속박을 벗어난 생물처럼”-식민지 조선의 ‘여명’, 김우진과 일본
  • 권정희 성균관대·일본근대문학/한국현대문학/비교문학·문화
  • 승인 2020.10.18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생명력인가, 이성인가 - 일본어가 매개하는 김우진의 텍스트』 (권정희 지음, 소명출판, 380쪽, 2020.08)

▲ 김우진의 흉상 (목포문학관)
▲ 김우진의 흉상 (목포문학관)

극작가 김우진(金祐鎭, 1897-1926)은 일본에서 극예술협회의 조직으로 출발한 이래 ‘연극 실험’과 희곡·비평·번역 등 장르와 언어를 넘나든 문화 실천으로 근대극 연구의 선구자로서 연극사와 문학사의 첫머리에 자리매김되어 왔다. 이 책에서는 김우진의 삶과 다양한 글쓰기를 일본어가 매개mediation 하는 텍스트라는 문제성에서 분석한다.

1915년 구마모토현립熊本縣立 농업학교에 유학한 김우진은 와세다早稲田대학 영문학과 졸업 후 귀국 2년 만에 성악가 윤심덕과 현해탄에 동반 투신하여 비극적인 생을 마감했다. 요절한 김우진의 미완의 생애는, 연극사를 넘어 생과 사 그 자체 식민지기 한국에서 다양한 문화사적 함의를 지닌, 자각적인 ‘인텔리겐치아’의 또 하나의 삶으로서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 식민지 조선의 ‘여명’에 선 청년 김우진이 ‘정사’로 예기치 않게 모던 시대의 ‘여명’이 된 아이러니의 개인주의자individualist의 탄생과 파국은, 개인을 억압하는 식민지의 근대적 자아 발견의 광포한 시대의 문화의 산물이다. 식민지기 한국과 일본을 왕복하면서, ‘조선말 없는 조선문단'을 질타한 ‘조선 문화의 기획자’로서의 혜안과 외국 문학의 “소개자, 비평가, 번역자”의 폭넓은 문학적 영위로 복안複眼의 시야로 확장한 김우진의 삶과 문학을, ‘모방’과 ‘복사’, ‘표절’의 혐의를 벗어난 비교문학자로서 재평가한다. 여기에 비평의 탄생과 근대학술의 연원을 탐사하는 이 책의 의의가 있다.

포스트 콜로니얼, 멜로드라마, 독서의 사회 문화사, 번역론 등 다양한 연구 방법으로 그의 삶과 문학의 불연속적인 지층을, 식민지의 주체이자 영어와 일본어가 매개하는 번역 주체이자 정사를 단행한 연애 주체로서의 다층적인 주체 내면의 분열과 동요를 소묘하면서, 제국을 횡단하는 김우진이 처한 ‘역사적 위치’의 복합성에 주목한다. 서양을 직접 체험한 ‘양행’ 지식인과는 다른 김우진의 이문화 체험을, 서양과의 양자 관계에서 간과된 일본이라는 타자를 매개의 시각에서 가시화한다. 도쿄의 쓰키지築地 소극장의 공연 카렐 차펙Karel Čapek의 <인조인간R. U. R, Rossum’s Universal Robots>의 관극평이 시사하듯이, 세계 지식을 향한 동시성과 원본에의 욕망의 아우라가 발하는 김우진의 문학 수용의 특질을, ‘서구에의 탐닉’에 가려진 일본의 표상에 초점을 두어 고찰한다.

이를 위하여 김우진의 생애와 다양한 글쓰기를 관통하는 “life force생명력인가, reason이성인가!”라는 질의로, 열정·감각의 세계와 이지·이성의 대립적 세계의 표상이 함축하는 매개적 사유의 가능성을 탐색하면서, '생명력'의 예술 표현과 방법론의 탐구라는 예술가로서의 자기 과제와 실천 양상에서 그의 문학의 기조를 이루는 '생명력'의 사유의 특질에 접근한다. 서구 철학과의 관련성에서만 논의되어 왔던 ‘생명력’의 사유를, 생명 사상의 원류라 할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을 수용한 일본의 ‘생’의 철학의 매개성에서 조망함으로써 선행 연구에서 제기된 ‘생명력의 사유와 역사의식의 충돌’이라는 모순이 일본 다이쇼(1912~1926)기의 생명 담론의 영향과 관련된 특질임을 해명한다.

이와 같이 일본어의 매개라는 문제성은, 헤겔의 매개 개념이 내포하는 바와 같이, 일본 체험의 또 다른 지식과 다양성의 맥락을 창출한다. 언어를 핵심으로 한 유학 경험은, 다양한 층위의 일본어의 매개성의 문제를 부상시킨다. 종래, 주로 영어 텍스트와 비교해온 선행 연구의 성과 위에서 일본어 소설 등의 다양한 일본어 글쓰기를 필두로, 일본어 번역과 서적이라는 미디어, 일본어로 공연된 극예술 미디어가 매개된 문화 수용과 강연, 토론 등의 일상에서 획득한 다이쇼기의 문화 관습 및 교양과 지식 형성과 신체성의 문제, 일본의 ‘정사’라는 ‘신주心中’의 문화적 배경에서 예술과 ‘생명력’의 사유를 관련지은 연애론 등 일본어의 매개라는 문제성에서 분석 대상을 선별하였다. 이 책은 서장과 종장을 포함하여 총 9장으로 구성된다.

1장 「식민지 조선의 근대 소설의 상상 – 소설 「공상문학(空想文學)」에서는 미발표의 습작소설 「공상문학」의 문화사적 의의를 규명한다. 1910년대 초 식민지 조선에서 번역되지 않은 서양 소설을 애독하는 문학 지망의 여주인공과 소설가가 등장하는 서사적 의미와 ‘가정의 비극’으로 ‘연출’한다는 연극성의 특질이 매개된 소설 성립 과정을 조명함으로써, 식민지 조선의 근대 소설의 상상에서 참조된 문학과 허구적 상상력이 ‘공상’의 기제를 작동시키는 표제의 함의를 분석한다.

2장 「일본 유학생의 자기 표상과 연극 수용 - 일기 『마음의 자취(心の跡)』 」에서는 유학과 귀국 직후의 시기(1919~1925)에 쓰인 일기를 고찰한다. 폭넓은 독서와 강의, 여명회 등의 강연회와 법정 방청 및 ‘생명’을 주제로 한 연극·공연 관람 기술 등을 단서로 유학생의 일상을 재구성한다. 이러한 기록의 편린에서, 식민지 조선의 ‘인텔리겐치아’로서의 아이덴티티의 구축 과정에서의 가부장제 억압에 “속박을 벗어난 생물처럼” 개성적인 ‘개인주의자’의 행방과 ‘정사’에 이르는 논리와 심정을 읽어낸다.

왼쪽: 『마음의 자취(心の跡)』에 김우진이 소묘한 〈인형의 집〉 연극 무대 스케치오른쪽: ‘조선문제호’ 특집에 실린 ‘여명회강연집’(1919.3)의 표지
왼쪽: 『마음의 자취(心の跡)』에 김우진이 소묘한 〈인형의 집〉 연극 무대 스케치 / 오른쪽: ‘조선문제호’ 특집이 편성된 『여명강연집(黎明講演集)』(1919.3)의 표지

3장 「번역과 강의로 읽는 문화의 수용 - 일본어가 매개된 ‘서구 탐닉’과 교양의 형성」에서는 일기와 연극·문학 평론 등의 글쓰기에 나타난 독서 형태와 수업의 단상을 통해 문학 취향과 풍부한 교양과 전문 지식을 형성해가는 다이쇼 교양주의의 시대적 배경과 일본어 번역이 매개된 ‘서구 탐닉’의 일 양상을 제시한다. 특히 일기의 메모를 단서로 다카야마 초규高山樗牛의 ‘미적 생활론’과의 비교를 통해 김우진의 예술과 미의식 형성의 단면을 추론한다.

4장 「일본어 글쓰기로 읽는 이중 언어의 시학 - 근대문학의 공백과 일본어 소설」에서는 두 편의 일본어 소설을 이중 언어의 시각에서 분석한다. 「동굴 위에 선 사람洞窟の上に立てる人」(1921)에서는, 식민지 조선 유학생의 사상적 고뇌와 열애의 열정에 휩싸인 남성과 윤심덕을 의식한 여주인공의 인물 조형의 분석을 통해 자전적 소설로서의 독해를 시도한다. 또한, 옛이야기의 다시 쓰기 방식으로 부제에 ‘이야기(모노가타리物語)’라는 장르를 표기한 「방련은 어찌하여 나병의 남편을 완쾌시켰는가蒡蓮はいかにして癩病の夫を全快させたか」(연대 미상)에서는 ‘의리’로 맺어진 부부애 표상의 분석을 통해 소설과 이야기 장르의 서사의 특질과 자기 언급의 표현의 욕망과 은폐의 착종된 일본어 글쓰기의 의미가 다르게 구현되는 방식을 검토한다.

5장 「일본어 번역과 아일랜드의 발견 – 문예잡지 『마사고(眞砂)』 수록 「애란의 시사愛蘭の詩史」의 성립」에서는 김우진의 일본어 번역인 「애란의 시사」의 원본이 패드라익 콜럼Padraic Colum의 평론 『아일랜드 시의 앤솔로지Anthology of Irish verse』 의 「서문Introduction」임을 발굴, 특정하여 일본어 번역의 성립을 해명하고 그 의의를 고찰한다. 아울러 선행연구에서 ‘미확인’이라는 『마사고』라는 일본 문예 잡지의 해당 호와 창간호의 잡지를 개관함으로써 김우진의 아일랜드 발견의 경위와 학문적 배경을 탐사한다. 이로써 ‘새로운 조선문학’ 구상의 계기로서의 일본어 번역의 의의 및 영국과 아일랜드라는 서구 제국과 식민지의 국민국가와 국민문학 인식에 촉발된 아일랜드의 문화적 함의와 일본어가 매개하는 서구 문학 수용의 케이스 스터디의 성과를 제시한다.

6장 「‘생명력’의 사유와 일본의 ‘생명’ 담론 - 다이쇼기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의 수용을 중심으로」에서는 다이쇼기 ‘생명’담론의 진폭에서 김우진의 ‘생명력’의 사유와의 접점을 모색한다. 7장 「“생명력의 리듬”의 형식 - 희곡 「산돼지」의 자화상」에서는 작가가 구상한 “생명력의 리듬”의 스케치에 주목하여 베르그송의 생의 철학을 바탕으로, ‘내부 생명의 리듬’을 극으로 구상하는 희곡 구성과 ‘생명력’의 사유의 관련성을 탐색한다.


권정희 성균관대·일본근대문학/한국현대문학/비교문학·문화

현재 성균관대학교 비교문화연구소 선임 연구원이다. 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일본 시라유리白百合여자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전공 연구생 수료 뒤 도쿄東京 대학 총합문화연구과 초역문화과학전공 비교문학비교문화 코스에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일본 센슈專修대학과 경원대학교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학교에서 BK 박사 후 연구원과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박사 학위논문으로 2006년 제18회 김소운상金素雲賞을 수상했으며 이를 수정 가필한 저서에 『호토토기스』의 변용-일본과 한국에서의 텍스트의 ‘번역’』, 공저에 『한국근대문학과 일본』, 『비교문학과 텍스트의 이해-일본문학·문화의 경계』 등이 있고, 역서에 『일본 대중지의 원류-메이지기 소신문 연구』 등이 있다. 주요 논문으로서 「번안소설로서의<귀거래>-1910년대 양건식 단편소설의 원작 연구」 「근대 연극장의 재편과 ‘흥행’개념-‘연행’에서 ‘흥행’으로」등과 자료 해제 「민유샤(民友社),『국민소설(国民小説)』」 등 다수의 논고가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