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이란 무엇일까?: BTS 병역특례 논란을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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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란 무엇일까?: BTS 병역특례 논란을 보며
  •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 승인 2020.10.1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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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용의 ‘우문현답’]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

지난 5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인 노웅래 의원은 “손흥민은 되는데 BTS는 왜 안 되느냐”란 멘트를 날리며 방탄소년단(BTS)의 병역특례 문제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시작했다.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하면서 막대한 경제적 파급효과를 내면서 국위 선양을 하고 있고, 국방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를 위해 모두가 총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이 노 의원 주장의 주요 논거이다. 과거 2002년 월드컵 4강,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 진출 시에도 유사한 주장이 제기되었었고, 그에 따라 출전 선수들 중 군 미필 선수들은 들뜬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일반인으로 봐서는 엄청난 포상금과 함께 병역면제 혜택을 받은 적이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2018년에는 금메달 획득이 거의 확실시되어 ‘대표팀 선발이 곧 병역면제’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수 선발의 타당성을 두고 대표팀 감독이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나서게 되는 웃지 못 할 해프닝까지 초래된 바 있다.

필자가 볼 때 우리나라처럼 병역문제에 민감한 나라도 없지만, 한편으로 또 둔감한 나라도 없는 것 같다. 최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추미애 장관 아들 문제에서 보듯이 가진 자들의 병역 비리가 터질 때마다 세상을 결딴낼 듯이 달려들다가도, 최소한 소득 면에서는 또 하나의 귀족 계층인 연예인과 프로 운동선수들의 병역혜택 부여에 대해서는 가끔씩 촉발되는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지나칠 정도로 관대한 결정이 즉흥적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코로나로 지친 우리 국민들의 엔돌핀을 엄청나게 솟게 해 주고 있는 BTS에 대한 이번 병역혜택 부여 논란도 마찬가지다. 여당 최고의원인 노웅래 의원은 경제적 파급효과와 국위 선양을 이유로 BTS에게 병역면제 혜택을 주자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이 결정이 달아오른 국민들의 정서에 편승한 즉흥적이고, 인기영합적인 결정은 아닌지 차분하게 되볼아볼 일이다.

국위를 선양한 연예인 등 문화예술인, 국가대표 등 체육 특기자에게 병역특혜를 부여하는 것은 국민적 합의로 얼마든지 가능하다. 다만 이러한 결정은 병역이 일반 국민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각각의 직업 특성상 병역이 개인의 커리어 설계에 어떤 문제를 초래하고 있는지 등을 충분히 감안할 필요가 있다. 즉, 국가 전체적으로 병역혜택이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부여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 향상이나 형평성 차원에서 보다 바람직한지 등 문제의 본질에 대한 충분한 사회적 공론화를 거친 후 결정이 이루어져야 한다.

원칙적으로 모든 대한민국 남자들은 나이가 되면 군대에 간다. 대개 거의 2년에 가까운 기간을 최저임금의 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월급(이병 408,000~병장 540,800원)을 받고 국가에 봉사한다. 국가의 재정이 충분하여 모병제 등을 통해 합당한 금전적 보상을 해 줄 수 있다면 별 문제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다. 따라서 군대에 가는 사람은 (1) 짧게는 18개월(육군, 해병대)에서 길게는 22개월(공군)이라는 시간, (2) 복무기간 동안 벌 수 있었던 소득(반대로 말하자면 포기된 기회 소득) 두 가지 측면에서 개인적으로 손실을 보는 셈이다.

연예인, 국가대표 등에 대해 국가가 부여하는 병역 혜택의 논리적 타당성은 군 복무에서 면제시켜 줌으로써 인생의 특정 기간에만 최대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운동선수나 연예인의 특성을 최대한 배려해 줄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물론 이것은, 프로게이머, 프로 바둑기사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현재의 논의는 특정 기간 동안 국위 선양을 했다는 극히 모호한 잣대를 가지고, 군 복무를 면제하여 선수 혹은 연예 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함과 동시에 군 복무기간 동안 받게 될 금전적 손실도 면제해 주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결함이 있다. 이들 대부분이 경제적인 고소득자이며, 대개 엄청난 금전적 포상(혹은 수입)까지 추가적으로 부여되는 만큼 이러한 혜택이 일반 군 복무자들에 비추어 얼마나 불합리하게 큰 것인지는 재론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현재 병역특례의 대상인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의 메달리스트나 순수예술 분야의 입상자 등뿐만 아니라, BTS로 대변되는 대중문화의 분야의 한류 스타, 프로게이머 등에게도 병역면제를 해 주는 것에 정서적으로 큰 거부감이 없다. 제정된 지 70년이 넘은 병역법의 취지가 변화된 우리 사회의 환경에 맞지 않으므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병역 면제는 매우 한정된 범위 내에서만 제한적으로 허용되어야 한다. 또한 병역 혜택은 어디까지나 군 복무의 육체적인 면제에 한정되어야 하고 군 복무에 따른 금전적 손실까지 보전해 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금전적 손실은 납세의 의무와 동일 선상에서 병역의무를 가진 모든 국민이 공평하게 부담하도록 하여야 하고, 이것은 기술적으로 직업의 특성이나 병역면제 사유가 되는 일부 신체의 결함 (예: 고도근시, 평발 등) 여부와 관계없이 공평하게 부과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원칙하에 몇 가지 제언을 하면,

1. 병역 면제는 2002년 월드컵이나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처럼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려 즉흥적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BTS와 같은 예외적 케이스에 대해 융통성을 가지고 대응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하되, 사회적으로 합의된 엄격한 절차에 의해서 한정적으로만 허가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현행 법령에서 문화 분야의 병역 면제가 소위 ‘순수예술 분야’에 한정되어 있는 것은 변화된 시대 흐름을 반영하는 것이라 보기 어렵다.

2. 엄격한 절차를 통해 예외적으로 병역면제를 할 수 있도록 하되, 한류 스타인 연예인들은 대부분이 고소득자이므로 군 복무기간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 벌어들이는 소득의 일정 부분(예컨대 병역 면제 기간에 해당하는 20개월간 평균소득의 50%, 물론 사회적 통념하에 납득 가능한 수준에서 일정한 상한액 설정은 필요하다고 본다)을 국가에 특별세금 형식으로 납부하게 하고, 이를 군 복무자들을 위한 처우개선 자금으로 쓰도록 해야 한다.

3. 이러한 원칙은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BTS로 대변되는 연예인뿐만 아니라, 프로 운동선수, 프로게이머, 프로바둑기사 등 인생의 특정 기간에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여타 직역에도 확대할 필요가 있다.

4. 신체적 장애(고도 근시, 평발 등)나 기타 사유에 의한 병역면제(혹은 기간 단축)를 적용받는 자들에게도 일정한 병역 혜택은 부여하되, 동일한 방식으로 면제된 군 복무기간에 해당하는 기간 동안의 금전적 기여는 반드시 공평하게 부담하도록 하게 한다.

이러한 보다 정교화된 병역 혜택 부여 장치를 통해 보다 실질적인 병역의무의 공평 부담이 이루어질 수 있다. 아울러 연예인, 운동선수 등 특정 직역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병역비리를 양성화하여 불필요한 범법자를 양산하는 일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고, 나아가 한류 스타, 프로게이머, 프로 바둑기사 등 고급 전문 인력의 생산성을 극대화해서 국가 경쟁력 강화에도 이바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변기용 논설위원/고려대·교육학

고려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및 고등교육정책연구소장. 서울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했으며 University of Oregon(Eugene)에서 고등교육행정전공으로 석·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교육부 대학원개선팀장, 기획담당관, OECD 사무국 상근 컨설턴트(Institutional Management in Higher Education),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현재 한국교육정치학회 회장과 안암교육학회 <한국교육학연구> 편집위원장을 맡고 있으며, 저서로는 『잘 가르치는 대학의 특징과 성공요인: 학부교육 우수대학 성공사례 보고서1, 2』(공저), 『한국 교육책무성 탐구』(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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