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관리원이 된 청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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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관리원이 된 청소부
  • 이경재 전주대학교·금융보험학
  • 승인 2020.10.11 18:00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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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어떤 사람이 쓰레기봉투와 집게를 들고 마을 청소를 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그 모습을 보며 손잡고 가던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너도 공부 안 하면 저렇게 된다.”

그런데 청소하던 사람은 청소부 아저씨가 아니라 마을을 깨끗하게 하고 싶어 자발적으로 청소를 하던 아주 훌륭한 분이었다고 한다.
이 아이도 ‘공부 안 하면’이 아니라 공부를 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그렇게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청소부는 마을을 아름답게 하는 멋진 직업이라는 인식을 해야 한다. 청소하는 것은 지구의 한구석을 깨끗하게 하는 아름다운 일이다. 그 일을 직업으로서 한다면 아름다운 일을 하며 돈도 벌 수 있으니 보람찬 직업이다. 그런데 잘못된 사회적 인식이 문제이다.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언젠가부터 청소부 대신 ‘환경미화원’이라는 명칭이 생겨났다. 그러다가 그것도 청소부로 동화되어 버리자 다시 ‘환경관리원’으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다. 언어 인플레이션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의사, 변호사, 판사, 검사처럼 사람들이 ‘사’자를 좋아하다 보니 부동산 분야의 중개인도 공인중개사로 바뀌었고 보험모집인, 손해사정인, 보험계리인, 보험중개인도 보험설계사, 손해사정사, 보험계리사, 보험중개사로 각각 바뀌었다. 명칭을 바꿔서 직업에 대한 인식이나 선호도를 바꾸어 보려는 의도로 보인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 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다. 귀천이 없다면 지금처럼 구태여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무리한 경쟁을 하며 불행해지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덴마크에서는 의사나 청소부나 큰 차이가 없으며 서로 어울려 등산과 스포츠를 함께 즐기고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고 한다(오연호 저, ‘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96쪽 참조). 10여 년 전 모 대학의 교수직을 사임하고 기업의 초빙강의가 많아지면서 최고세율을 적용받은 적이 있다. 세율이 높아지자 무척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덴마크 사람들은 소득의 50%를 세금으로 내면서도 행복지수 1위이다. 자신들의 세금으로 다른 사람을 가치 있게 돕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한다. 대학까지 무상교육, 무상의료에 실업자까지도 정부가 수당을 지급하며 취업을 돕는다.

이렇게 직업에 귀천이 없고 많은 세금을 내더라도 그 세금혜택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평등사회를 만들면 구태여 청소부가 환경미화원이 되고 또다시 환경관리원이 될 필요도 없다. ‘성자가 된 청소부’(바바하리다스의 책 제목)처럼 그냥 포근한 이미지를 갖는 청소부 아저씨나 청소부 아줌마로 남아 있어도 된다.

모두가 평등하면 ‘사’자 들어간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부럽지도 않을 것이며 그래서 남보다 더 잘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아도 된다. 당연히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다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일도 없게 된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혹은 대학 간판을 따기 위해 구태여 청소년 시절을 불행하게 보내지 않아도 된다. 직업에 귀천이 없는 평등세상을 만드는 것이 우리 청소년들도, 국민들도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길 중 하나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서는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다. 한 학생이 상담을 하러 왔는데 자신은 청소부가 되는 것이 꿈이라 한다.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놀란 것 자체가 나 자신도 청소부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셈이어서 한 번 더 놀랐다. 그 학생은 새벽에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것이 좋으며 오전 중에 일이 끝나기 때문에 오후에 또 다른 무언가를 하는데 시간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요즘은 보수도 많이 올라 거의 중소기업 이상이라 한다. 아쉽게도 그 학생은 청소부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다른 자격증을 취득하여 관련 기업에 취업하였지만 앞으로 이 학생처럼 직업의 귀천이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그 일을 하는 행복한 세상을 기대해 본다.
                                                                                  
이경재 전주대학교·금융보험학

전주대학교 금융보험학과장으로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이기도 하다. ‘보험’ 전공 분야 외에 ‘시(詩)경영학’, ‘시(詩)와 함께하는 치유와 행복의 인문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절대 손해 보지 않는 보험 재테크 70가지’(더난출판사), ‘시인의 감성으로 경영하다’(도서출판 소리), ‘보험계약법’(보험연수원), 고등학교 금융실무 교과서(삼양미디어, 3인 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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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승민 2020-10-16 14:19:00
직업의 귀천이 없는 세상이 행복한 세상이라는 교수님 말씀에 백퍼센트 공감합니다. 어서 행복한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권흥구 2020-10-14 19:09:03
우리가 선진나라 가기위해선 바로 이런 생각의 전환과 인식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짧은기간 급성장한 우리는 그 멋있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양반문화를 있지 못하고 일제시대 단절된것이 안타깝습니다.
글쓴이가 말씀한 아름다운 우리나라를 가꾸기위한 좋은 제언의 말씀 적극 동의합니다.

안종일 2020-10-13 14:39:40
참 좋은 교수님이 역시 참 좋은 저술을 하셨습니다. 아침 일찍 출근할 때 마다 반갑게 인사드리는 저희 사무실의 환경미화사 누님께 오늘도 어김없이 커피한잔 제 솜씨로 타드렸습니다. 뵈올때마다 항상 감사함 뿐이며 그져 서로에게 좋은 추억이 되었으면 합니다. 중학시절 교복과 운동화를 깨끗히 세탁해주시던 제 누나랑 같은 연배라 더 그렇습니다.

썬체리 2020-10-12 23:34:21
교수님 글을 읽고 가마타히로시의 디즈니랜드의 야간청소부의 감동실화 "내가하는일 가슴설레는일"책을 모두에게 추천해주고싶네요
어찌보면 그림자노동일수있는 저의 모든일들도 늘 가슴설레임으로 하려고 하는데 ㅎㅎ

이보라 2020-10-12 22:06:21
소위 말하는 잘 나가는 직업에 목표를 두지 않고, 하는 일을 통해 꿈을 꿀 수 있게 하는 교육의 변화를 바래봅니다.
또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으로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를 기대하며 좋은 글에 한 표 던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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