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의 시대와 대학의 체질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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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의 시대와 대학의 체질개선
  • 류수연 인하대·국문학
  • 승인 2020.10.1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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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2020년, 대학 강의실은 ‘클릭’을 통해 ‘오픈’된다. 아침에 일어나 실시간 화상 강의를 열고 학생들의 클릭을 기다리는 시간은 진부한 SF의 한 장면 같다. 모바일 게임조차 증강현실로 구현되는 시대에, 사각의 화면 속에 갇힌 학생들을 바라보는 풍경은 꽤나 아날로그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팬데믹에 떠밀려 시작된 대학 원격수업의 현황은 사실 참담하다. 해묵은 동영상을 재탕하거나 유튜브에서 짜깁기 한 질 낮은 강의를 업로드 하는 일부 교수진 때문일까? 그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태만과 무능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최악의 한 학기를 최선으로 통과하고 또 다른 학기를 맞이한 대부분의 교수진이라면, 오히려 절실하게 느낄 것이다. 2000년대 이후 대학의 교육 현장에서 추구해온 협업과 의사소통 중심의 커리큘럼들이 온라인이라는 사각의 방 앞에서 얼마나 무력하게 무너져버렸는지를 말이다.

우리에게 시간이나 콘텐츠가 부족했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 한국 대학에서 비대면 교육의 역사는 그리 짧지 않다. e-learning이나 blended-learning 같은 원격수업 모델이 교과 현장에 적용되기 시작된 것이 이미 20년을 훌쩍 넘었음을 상기해 보자. 더욱이 이러한 원격수업은 대학 내 구성원들이 상상해왔던 미래 교육의 한 모습이기도 했다. 그뿐이랴. 당장에 K-MOOC만 해도 그간 축적된 막대한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우리는 실패했다. 지난 한 학기는 그저 통과했을 뿐이다. 이것이 대단히 부끄러운 일임을 이제 인정해야만 한다. 동시에 이는 그간 우리 대학사회가 추구해왔던 온라인 중심의 미래 교육 패러다임이 근본적인 위기에 처했음을 의미한다. 무엇보다 다시 정직하게 들여다보자. 수많은 미사여구로 수사되었지만, 팬데믹 이전에 대부분의 대학이 추구했던 ‘미래’의 진짜 동력은 교육이 아닌 경제성은 아니었던가?

미래 교육의 현장에 강제 편입되어버린 지금, 우리는 분명히 깨닫고 있다. 대학 강의가 교수학습자 간의 소통과 교류라는 본질을 지켜내고자 한다면, 30여 명의 학생을 강의실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같은 수의 학생을 화상 강의로 가르치는 것이 몇 배는 더 힘들다는 것을 말이다. 반면 학습자 입장에서 느끼는 효용성과 만족도는 확연히 감소된다. 그러므로 현재의 원격수업은 교수자와 학습자 모두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거기엔 부정적인 결과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오늘의 팬데믹은 우리가 그저 상상에만 의존했던 리스크를 실제적으로 목도하게 했다. 적어도 각 대학의 경영진에게 원격수업이 마냥 장밋빛만은 아니라는 현실을 자각하게 만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더 나아가 미래 교육을 위해서도 일종의 백신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만들었다. 효율성이나 경제성 때문이 아닌 진짜 체질 개선을 위한 교육적 변화들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것은 스튜디오 몇 개를 더 확충하는 수준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제대로 된 원격수업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첨단의 인프라가 필요하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그에 따른 엄청난 초기비용이 요구된다. 이미 조금도 경제적이지 않다. 학령인구는 날로 줄어들고 있지만, 비대해져 버린 대학의 몸집을 줄이는 것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형 강의는, 그것이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대학의 생존에도 학생의 학습권에도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경제성의 원칙으로는 도저히 이 난국을 극복할 수 없다는 점이다.

아직 성급하게 절망할 필요는 없다. 이 사각의 화면은 생각보다 유용하다. 수많은 자료와 영상을 재생할 수 있고, 원격으로 소통할 수 있으며, 실시간으로 조별 활동의 결과를 축적할 수 있다. 갇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사고는 닫혀버린다. 오히려 우리는 좁은 강의실을 벗어나 넓은 인터페이스를 만난 것이다. 이 강점을 외면하지도 말자. 다만 지금까지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교육 현장 바깥의 요구들이었다면, 이제 교육 현장의 요구를 거기에 부여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자.

모두가 잘 알고 있듯이 그 어떤 아이디어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 성실한 연구와 수많은 실패, 날카로운 비판과 반성 위에서만 진정한 아이디어가 탄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이 새로운 교육 현장에서 부딪쳤던 경험과 한계, 그리고 필요를 정직하게 축적하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 모든 교수자가 ‘교육’을 제대로 고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오늘의 대학이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류수연 인하대·국문학

인하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인하대 프런티어학부대학 교수로 있으며, 인천문화재단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계간 <창작과비평>의 신인평론상을 수상하며 등단했으며, 현재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와 <인천투데이>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 『뷰파인더 위의 경성』, 『동아시아 한국문학을 찾아서』(공저), 『민주적 공공성』(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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