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강용의 ‘그림자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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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용의 ‘그림자 그림’
  • 박영택·경기대 교수/미술 평론가
  • 승인 2020.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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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택의 그림이야기]
▲ 김강용, 현실+상
▲ 김강용, 현실+상

김강용은 벽돌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실제 벽돌과 너무도 유사한 이미지를 만드는 그의 작업은 극사실주의회화에 유사해보이기도 하다. 그럴까? 회화는 눈속임에 기반 해 눈에 보이는 외부 세계를 사실적으로 모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대미술에 와서는 그러한 모방과 재현에서 벗어나 다른 길을 추구해왔다. 재현에 기반 하지 않는 미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해 보려는 시도가 현대미술이기도 하다. 그러나 재현과 무관한 미술은 가능할까? 재현이란 무엇일까? 일루전과 무방한 미술은 무엇일까? 

김강용은 모래가 밀착된 화면위에 그림자를 그려넣어 실제 벽돌들이 쌓여 있는 것과 같은 착시를 안긴다. 평면의 화폭 위에 균질하게 부착된 모래입자와 가상의 빛, 그림자가 빚어낸 일루전으로 인해 보는 이들은 현실에 존재하는 벽돌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벽돌을 재현한 게 아니라 그림자로 인해 보는 이들이 상상해낸 이미지, 아니 착시에 사로잡혀 보게 되는 이미지다. 김창열의 물방울 그림과 유사한 전략이다. 사실 이 그림은 전적으로 ‘그림자’에 의존하면서 평면성과 환영의 문제를 품고 있다. 서구미술사에서 그림이란 그림자로부터 기원한다. 그 자리에 현존했던 이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의 윤곽을 둘러치면서 이제 그림자/그림은 부재하는 이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분명 허상에 불과하지만 그렇게만 말할 수는 없다. 부재가 실제를 대체하고 이미지가 사람의 존재를 대리한다. 사라져버린 것, 시간에 의해 추방된 것을 소환해내고 호명하며 기억을 견인해내는 그림자의 자리, 아니 그 자리를 포박해놓은 그림은 사라진 것과 도래하는 것 사이에서, 그 경계에서 기이한 삶을 산다. 또한 헛것에 불과한 그림자는 입체감과 환영을 불러일으키는데 불가피한 요소다. 모더니즘은 회화에서 환영적 요소를 거둬내기 위해 그림자를 추방했다. 조각적 요소를 지워내기 위해서 음영(요철)효과는 사라져야 하는 것이다. 귀신이나 유령과도 같은 그림자를 추방시킨 모더니즘은 그것 없는 미술을 도모했다고 말해볼 수 있다. 과연 그것은 가능할까?

1970년대 한국 현대미술의 중요 흐름의 하나는 국전이 보여준 구상화의 전통과 이미지를 지우려는 미니멀리즘/단색주의 회화 사이에서 나름 그 둘을 절충하려는 여러 전략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었다. 그 해결책의 하나가 그림자(환영)와 회화의 평면성을 화면 안에서 통합하는 것으로 주어진 회화의 평면성을 위반하지 않으면서 이미지를 끌어들여 부단히 일루전을 주는 식의 연출이었다. 흡사 재스퍼 존스의 <깃발>처럼 그려진 것이자 사물이고 동시에 평면인 세계! 앞서 언급한 김창열을 비롯해 이승조, 이동엽 또는 박장년, 김창영, 고영훈 등의 작업이 어느 정도 그런 맥락위에서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다.

김강용의 벽돌 그림 역시 그 지점에 겨냥되어 있다. 어떤 것도 그리지 않은 순 백색의 화면, 그 극단적인 미니멀리즘적인 자각위에 작가는 오브제(모래)와 그림자를 동원해 벽돌, 아니 벽돌 이미지를 올려놓았다. ‘그리고자 하는 본능적인 욕구와 화면 자체의 평면성의 힘이 충돌’하고 상반된 모순의 지점에서 이 둘의 타협이 시도된다. 리얼리티를 평면에 담아내야 하는 그림의 시각적 조건인 일루전과 그것의 물리적 조건인 평면에 관한 담론이 함축되어 있다는 지적이다. 동시에 김강용의 벽돌 작업은 환영의 극대화를 연출하기 위해 실제 모래를 표면에 균질하게 도포해놓아 물성의 연출과 촉각성의 자극 또한 전해준다. 물론 이러한 환영적 효과는 목적이 아니라 방법으로 선택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결과인 그림은 다분히 개념적이 되었다.   

김강용은 모래를 화면 위에 균질하게 도포한 후 색, 그림자를 집어넣어 벽돌의 반듯한 형태, 사각형의 구조를 반복한다. 그것은 사각형의 화면 자체가 그림의 내용을 규정해주는 듯이 사각형 안에 무수한 사각형의 변주가 일어나는 꼴이다. 70년대 중반에 처음 시도된 이 벽돌 시리즈인 <현실+장>은 이후 2000년대 들어와 큰 변화를 겪는다. 제목이 <현실+상>으로 바뀌었고 실제 공사장에 쌓여 있는 모습에서 벗어나 반듯하게 정리되고 단순하게 패턴화 되어 가다듬어졌다. 균질한 사각형 구조가 반복되고 요철효과를 더욱 강조하기 위한 그림자의 영향력은 보다 강화되었다. 그 작업들은 고운 모래를 접착제와 함께 섞어 캔버스 위에 도포한 후에 미리 작업한 모래바탕을 긁어내고 그 위에 모래와 색색의 규사를 채워 넣는 방식의 이른바 상감기법을 차용했다. 그렇게 해서 표면을 매끄럽게 마무리되었고 강한 장식성과 함께 그래픽적인 구성과 연출은 두드러졌다. 근작은 화면 자체를 지시하는 그리드의 연출만으로 자족되는 편이다. 동시에 그 그리드의 외관을 여전히 흔들어대는 것은 낙차 큰 요철의 차이를 드라마틱하게 구사해 주는 그림자의 개입으로 인해서다. 그리드의 틈과 틈 사이에 촘촘히 박힌 풀처럼 파고드는 그림자!


박영택·경기대 교수/미술 평론가

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고 뉴욕 퀸스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연수를 마쳤다.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를 거쳐 1999년부터 현재까지 경기대학교 서양화·미술경영학과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며, 전시분석, 미술비평, 큐레이터십, 이미지 읽기, 현대미술의 이해 등을 강의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식민지시대 사회주의미술관의 비판적 고찰」 「한국 현대동양화에서의 그림과 문자의 관계」 등이, 저서로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테마로 보는 한국 현대 미술』을 비롯해 다수가 있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 운영자문위원, 서울시립미술관 운영위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원 이사, 정부미술품 운영위원, 아트페어 평가위원, 2020 전남국제수묵비엔날레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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