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동반자 색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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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동반자 색채의 이야기
  • 김관수 연세대학교 명예교수·화학
  • 승인 2020.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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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말하다]

■ 저자가 말하다_ 『역사 속의 색채: 과학과 예술의 만남』 (김관수 지음, 한국학술정보, 199쪽, 2020.08)

색채란 존재하는가? 붉은 사과는 암흑 속에서 보이지 않지만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암흑 속에서 붉은색은 사라져서 무색의 사과가 존재한다. 어두워서 색깔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빛이 없으므로 색깔은 없어지고 존재하지 않는다. 빛이 있어야 존재하는 사과의 붉은색을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인지하지 않는다. 인간의 망막에 있는 색채 인지 세포가 유전적 요소에 의해 미세하게 달라질 수 있으며, 이 작은 차이가 사람들이 색깔을 다르게 인지하도록 한다. 이는 색채 인지에 주관적 요소가 개입한다는 근거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색채는 또한 객관적 요소인 색상, 채도, 명도의 크기에 의해 정량적으로 기술될 수 있다. 따라서 색채는 한동안 예술과 과학이 함께하는 연구와 실험의 대상이 되어왔다. 그러나 뉴턴과 괴테 시대 이후로 색채의 과학과 색채의 예술은 점점 더 별개의 것으로 취급되어졌고 이 같은 결별은 색채에 관한 의미 있고 흥미로운 측면들을 일부 잃어버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예술과 과학의 융합을 굳이 강조하지 않았다. 색채의 역사나 색채의 과학을 기본 주제로 다루지도 않았다. 색채에 관련된 옛이야기를 소개하며 그 속에서 과학과 예술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흔히 미개했으리라고 오해할 수도 있는 수만 년 전의 인류의 조상은 예술의 시작을 알리는 채색 동굴벽화를 그렸다. 그것은 현재의 기준으로 볼 때도 최고 수준의 예술품이다. 그들은 안료의 원료 물질을 찾아내고, 적절한 방법으로 안료를 제작하였으며, 안료에 접착제를 섞어 벽화를 그리는 방법을 고안하였다. 동굴벽화가 시작된 시기인 약 4만 년 전은 호모 사피엔스가 행동 현대성을 획득한 때와 거의 일치한다. 동굴벽화에 사용된 안료인 석간주, 황토, 목탄은 수만 년 동안 후세에도 계속 사용되었다. 그 안료의 색깔인 적색, 황색, 흑색에 백색이 더해져 오랫동안 인류가 사용한 네 가지 기본색이 되었다. 다른 고대 문명과는 달리 고대 이집트문명에서는 위의 네 가지 기본색 대신에 청색을 더 높이 평가하였다. 그들이 보유한 알케미의 지식과 기술을 이용하여 놀랍게도 인류 최초의 합성 안료인 이집트청색을 모래와 구리 광물과 석회석을 함께 가열하여 만들어 냈다. 이집트청색은 지중해 연안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으로 전파되었으며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도 그 합성 방법이 전수되어 벽화와 조각과 건축물의 채색에 광범하게 사용되었다. 적색 안료 진사는 강렬한 적색과 특별한 광택 등의 가시적 성질에 덧붙여 안정한 화학적 성질로 말미암아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인기 있는 천연 안료이었다.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적색 안료로 구하기 쉬운 석간주와 값비싼 진사가 함께 사용되었다. 고대 로마에서도 최고 권력자들과 귀족들의 집 내부 벽화에는 석간주 대신 진사가 사용되었다. 일부 벽화의 진사는 회색과 흑색으로 변했으며, 변색의 정확한 원인은 21세기에 와서야 밝혀졌다. 

고대문명에서는 수천 년 전부터 천연염료를 식물이나 동물로부터 채취하여 사용해왔다. 잘 알려진 고대 천연염료로 청색의 인디고와 적자색의 티레자주색을 예로 들 수 있다. 매우 비싸서 왕족이나 귀족들의 전유물이던 이들 천연염료는 수천 년 전부터 2백여 년 전까지도 거의 그대로 계속 사용되어 왔다. 인디고는 인류가 사용한 가장 오래된 염료 중의 하나로서 지금도 주로 청바지 염색에 쓰이고 있다. 인디고 염료를 얻을 수 있는 식물은 세계적으로 지역에 따라 매우 많은 종류가 있다. 따라서 어느 한 지역에서만 인디고 염색이 시작된 것 아니라 여러 지역에서 독립적으로 발전되어 가까운 주위 지역으로 퍼져나갔다고 추정된다. 지중해 연안의 뿔고둥에서 추출한 티레자주색은 염색 후에도 색깔이 변하지 않으며 햇볕을 쬐거나 시간이 지나면 색깔이 오히려 더 진해졌다. 기원전 1,600년경 페니키아인들은 티레자주색의 채취와 염색 기술을 정립하여 그것을 지중해 연안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수출하기 시작했다. 고대 로마에서는 티레자주색의 값이 너무 비싸서 한때 왕족 외에는 사용이 금지되었다. 바다 뿔고둥에서 얻은 티레자주색과 식물성인 인디고의 화학 구조식이 매우 유사하다는 놀라운 사실도 밝혀졌다.

▲ 국보 제60호 청자 사자형뚜껑 향로; 클로드 모네 ‘생-라자르역’ 1877년, 오르세 미술관

고려청자의 비색은 청자의 색깔이 다다를 수 있는 궁극의 색깔이라 하겠다. 비색 발현에 영향을 끼치는 요인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유약과 굽는 조건이다. 고려의 도공들은 최상의 청자 색깔이 어떤 것인지 상상하고 예견했던 대단한 예술가들이었다. 또한 그들은, 수많은 시도와 실패를 맛보았겠지만, 때로는 논리와 때로는 직관을 앞세워 한없이 많은 경우의 수 가운데서 최상의 색깔을 주는 유약 성분의 조합을 찾아낸 과학자들이었다. 비색 발현 메커니즘의 완벽한 규명은, 너무 많은 관여 요소들로 말미암아 쉽지 않다. 그러나 완성된 청자의 표면에 남아 있는 소량의 산화철과 산화티타늄의 양이 비색 발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분명하다.

▲ 모브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51483&cid=55589&categoryId=55589영국의 화학자 윌리엄 헨리 퍼킨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윌리엄_퍼킨
▲ 모브 출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51483&cid=55589&categoryId=55589영국의 화학자 윌리엄 헨리 퍼킨 출처: https://ko.wikipedia.org/wiki/윌리엄_퍼킨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유럽에서 일어난 화학혁명은 물질과 물질의 변환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었다. 화학혁명에서 발견되고 확인된 수많은 원소들과 화학반응들에 근거하여 1800년에서 1870년 사이에 강렬한 색채의 새로운 수십 가지 합성 안료들이 등장하였다. 크롬이나 카드뮴이나 코발트 성분의 새로운 노란색과 적색과 청색 안료는 인상주의 회화에서 보는 강렬한 색채의 근원이 되었다. 합성염료 산업의 시작은 윌리엄 헨리 퍼킨이 1856년에 우연히 발견한 자주색 염료인 모베인에서 시작되었다. 1860년대와 1880년대에 등장한 위대한 유기화학자들에 의한 이론의 정립과 정교한 실험 결과는 유기화학의 도약을 이끌었다. 퍼킨의 모베인 합성과 같은 반복된 시행착오에 의한 우연한 발견이 아니라, 드디어 이론적 지식에 근거한 합리적 계획과 추론에 의해 알리자린과 인디고가 합성되었고 이어서 산업화되었다. 그 당시 합성염료 산업은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필요로 하는 최첨단 산업으로 이득도 가장 큰 사업이었다.


김관수 연세대학교 명예교수·화학

연세대학교 화학과를 졸업했으며 캐나다 퀸즈대학교 화학과에서 박사학위 취득 후 2년간 미국 하바드대학교 화학과에서 Postdoc.을 지냈다. 1982년부터 2013년까지 연세대학교 화학과 교수로 유기화학 강의 및 유기합성과 글리코실화반응에 관한 연구를 수행했다. 미국 스크립스연구소 방문과학자, 연세대학교 명예특임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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