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를 돌아보는 시선’…가장 미래적인 시의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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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는 시선’…가장 미래적인 시의 방향
  • 하상일 동의대·국문학/문학평론가
  • 승인 2020.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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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뒤를 돌아보는 시선: 하상일 평론집』 (하상일 지음, 소명출판, 444쪽, 2020.09)

지금 한국 문학은 ‘뒤를 돌아보는 시선’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모두가 ‘앞’을 강조하고 ‘앞’에 열광하며 오로지 ‘앞’을 향해 질주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 문학의 ‘시선’만큼은 오히려 ‘뒤’를 돌아보고 ‘뒤’를 사유하며 ‘뒤’의 감각을 다시 성찰하는 역설적 세계 인식과 미학적 시선을 갖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굳이 ‘서정성의 회복’이라 부르든, 아니면 ‘서정성의 귀환’이라 부르든, 명명 자체에서 비롯된 권력적 언술이 초래할 위험성과 오해는 잠시 미루어 두고, ‘오래된 미래’라고 불리는, 즉 뒤를 돌아보는 것이 오히려 미래를 선취하는 문학적 긴장(tension)의 세계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특히 앞으로 우리 시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미래는, ‘뒤’를 돌아보는 시선에서 발견되고 생성되고 창조되는 ‘미래’여야 한다. 즉 ‘앞’을 향해 달리는 상상력의 확장이 ‘뒤’를 돌아보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역설적 세계의 긴장이야말로 가장 미래적인 시의 방향이 된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제1부는 최근까지 우리 시단의 뜨거운 논쟁과 화두였던 ‘시와 정치’의 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담은 글과, ‘뒤’를 돌아보는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만나는 ‘서정’과 ‘생명’의 문제를 주제로 한 글이다. 정치를 말하고 생명을 말하는 일까지 지독한 관념이 되고 수사가 되었던 것은 아니었는지에 대한 겸허한 비판을 통해, ‘시와 정치’ 사이에서 비평이 갖추어야 할 ‘윤리’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 본 것이다.

제2부는 지금 우리 시대를 ‘죽은 시인의 사회’라고 상징적으로 명명하는 토대 위에서,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는 시인의 운명이 어떠한 시 세계를 펼쳐가고 있는지를 시집을 중심으로 논의한 것이다. 시와 시인을 일치시켜 바라보는 개성론의 시관은 시를 시답게 하는 허구적 세계의 시적 진실에 위배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를 시인과 무조건 별개의 차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지금 우리가 당면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래서 지금 시인들은 더욱 삶에 밀착해서 자신의 목소리를 직접적으로 투영하는 리얼리티의 세계를 보여주기에 분주하다. 이런 점에서 시와 삶의 일치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시적 성취는 더더욱 아름답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러한 시선이 ‘뒤’를 돌아보는 시선과 겹쳐지는 근본적 상상력에 맞닿아 있다면 가장 진실한 시 세계의 정수를 형상화한 것이 아닐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제3부는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시인들의 시 세계를 특별히 주목해 보았다. 자연과 사물과 인간이 온전히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세상 속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가는 시 속의 화자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모두가 새로운 언어, 새로운 구조에 열광하는 언어 과잉의 시대에, 진짜 별말 없이도 웃을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일상의 한가운데에서 따뜻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발견하는 시적 힘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를 새삼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거기에는 자연과 인간의 교감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랑도 있다. 모든 시가 관계와 소통의 문제에 대한 진정성 있는 성찰의 시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시인들의 시 세계에는 지금 시가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그리고 앞으로 시가 어디로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를 아주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우리에게 다시 일깨워주고 있다.

제4부는 문학과 역사의 관계 속에서 비평이 실천해야 할 올바른 방향과 주제에 대해서 논의한 것이다. 이 또한 결국은 ‘뒤’를 돌아보는 시선의 문제와 무관할 수 없다. 문학이 역사를 말한다는 것은 ‘뒤’를 올바르게 정리하고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앞’을 열어가는 진정한 동력을 찾자는 데 있기 때문이다. 식민과 분단 그리고 민주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문학은 온통 아프고 상처 입은 흔적들로 가득하다. 이제 문학은 이러한 상처와 고통의 자리를 감싸고 위무해주는 차원을 넘어서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비평적 실천에도 매진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모순은 지역의 문제와도 직결되는 일이 많음을 주목할 필요도 있다.

코로나19의 공포와 불안이 수년 안에는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우려와 걱정이 점점 현실화되어 가는 듯하다. 이러한 시대적 혼란 속에서 그동안 개인성의 확대를 지향하는 데 골몰했던 우리 문학은 앞으로 사회적 공공성과 실천성에 기반한 공동체성의 실현이라는 새로운 방향과 과제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코로나19로 적나라하게 노출된 사회적 불평등과 계급적 모순에 여전히 눈 감은 채 자가격리의 일상을 당연시하는 데 매몰되어 버린다면, 우리 사회의 심층에 뿌리내린 이데올로기 바이러스의 근본적 치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의 확산이 경고했던 광범위한 이데올로기적 바이러스가 환기한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성찰함으로써, 또 하나의 훨씬 더 이로운 이데올로기적 바이러스가 퍼져서 우리 사회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변화시키는 희망을 갖게 해야 한다.

이러한 팬데믹의 혼란과 공포는 지금까지 우리의 삶이 오로지 ‘앞’을 향해서 질주하는 데만 열을 올렸다는 데 가장 큰 원인이 있다. 이제는 모두가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리고 ‘앞’이 아닌 ‘뒤’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 문학도 더 이상 ‘앞’으로만 향하는, 그래서 세상과의 진정한 소통과 교류를 도외시하는 공동체의 상실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 <뒤를 돌아보는 시선>은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한국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앞’이 아닌 ‘뒤’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걸어왔던 길을 돌아볼 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진정 우리가 살아가야 할 미래의 방향을 찾아야 할 것이다. <뒤를 돌아보는 시선>은 바로 이러한 성찰과 윤리의 지점에서부터 우리 문학이 다시 시작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던지고자 했다.


하상일 동의대·국문학/문학평론가

현재 동의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부산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1960년대 현실주의 문학비평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1997년 <오늘의 문예비평>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했으며, <오늘의 문예비평>, <작가와사회> 편집주간, <비평과전망> 편집위원을 역임했고, 현재 <내일을여는작가> <신생>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타락한 중심을 향한 반역>, <서정의 미래와 비평의 윤리>, <재일 디아스포라 시문학의 역사적 이해>, <한국문학과 역사의 그늘>, <한국근대문학과 동아시아적 시각>, <문학으로 세상을 읽다>, <뒤를 돌아보는 시선> 등이 있다. 고석규비평문학상, 애지문학상, 설송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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