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흥부전, 읽기 쉬운 현대어로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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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흥부전, 읽기 쉬운 현대어로 만나다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0.10.11 18: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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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흥보만보록: 최초의 흥부전 | 김동욱 옮김 | 문학동네 | 128쪽

우리가 알던 그 흥부전이 아니다. 2017년 새로 발견된 최초의 흥부전, 『흥보만보록』이 친근한 현대어로 독자를 찾는다. 발견 당시 학계와 세간의 화제를 불러모았던 작품이다. 최고본(最古本)으로서의 학술적 가치뿐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던 흥부전과 전혀 다른 면모, 나아가 엄격한 가부장사회인 줄 알았던 조선시대의 이면을 보여주는 지점도 많아 흥미롭다. 오늘날 독자들이 순전히 재미있는 이야기로, 살아 있는 문학작품으로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의 의미란 이같은 현재성에 있지 않을까. 더군다나 체면치레 앞세우던 유교가 지배하던 시기에 『흥보만보록』은 ‘먹고사니즘’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돈 많이 벌어 잘 먹고 잘살기를 바라는 인간의 욕망이 담겨 있다.

『흥보만보록』은 최고본이다. 우암 송시열 후손인 송준호 연세대 명예교수가 소장하고 있었다. 필사 연도를 1833년쯤으로 추정한다. 『흥보만보록』이 발견되기 전까지 『흥부전』 이본은 그 연대가 아무리 일러도 19세기 중엽이다. 그동안 가장 이른 시기 『흥부전』의 모습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온 하버드대 옌칭도서관 소장 『흥보젼』(‘연경본’이라 부른다)보다 필사 시기가 앞선다. 연경본은 1853년 모본을 대상으로 1897년에 필사됐다. 그러므로 1833년즘 필사된 『흥보만보록』은 『흥부전』 및 판소리 연구에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또 『흥보만보록』은 기록으로 전승되어온 『흥부전』을 대표하는 이본이라는 의미가 있다.

▲ 『흥보만보록』
▲ 『흥보만보록』

흥보 놀보는 평양 사람이었다. 장천 부부는 가난해지자 아들 둘을 부잣집에 장가보냈다. 그렇게 편히 사는 길을 택했다면 형제의 운명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놀보는 친부모가 어찌 지내건 상관치 않았는데 흥보는 부모님께 되돌아가 장천 부부를 공양한다.

장천은 점점 더 가난해져 아침저녁으로 끼니를 잇지 못했다. 처는 방아품을 팔고 놀보 형제는 나무를 팔아 연명했으나 그래도 끼니를 이을 수 없었다. 부부가 두 아들을 부잣집에 데릴사위로 주고 자기들은 해진 옷을 입은 채로 죽을 지경에 이르니, 흥보는 차마 처가에 있지 못하고 부인을 데려와 어버이를 봉양했다. 놀보는 처가에 있은 지 일 년이 넘도록 어버이를 찾지 않고 흥보를 가소롭게 여겼다. (11, 12쪽)

재미있는 점은 흥보가 윤리적으로 더 선한 선택을 한 건 맞다고 볼 수 있지만, 놀보의 행동과 말도 꽤 합리적이란 점이다. 놀보는 도와달라고 찾아온 흥보에게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생계를 유지하며 아침저녁 밥이 끊어지지 않는 것은 부모님이 준 것도 동생 네가 주어서 생긴 것도 아니다. 처부모님 덕분에 두터운 은혜를 입어 재산과 논밭을 풍족하게 두고 먹는데, 부모님은 무슨 낯으로 내 것을 달라 하며 너는 무슨 염치로 나를 보채느냐?” (14쪽)

놀보가 나쁜 짓을 해 치부(致富)한 것도 아니니 딱히 뭐라 반박할 여지가 없다. 놀보가 처부모님 덕에 잘 먹고 잘산다고 직설적으로 고백한 점도 놀라운데 흥보는 처가의 돈을 끌어다 친부모를 봉양했다고까지 나와 있다.

흥보는 처가의 재물을 얻어 어버이를 봉양했다. 그렇지만 장천 부부는 먹는 양이 워낙 많아 하루 한 말의 밥으로도 부족하니, 가산을 저절로 탕진했다. 흥보 아내는 방아품을 팔고 흥보는 나무를 베어다 강가 마을에 팔아 생계를 꾸렸으나, 그래도 끼니를 잇지 못했다. (13쪽)

조선 사람의 생활 방식을 엿보는 즐거움도 묘미다. 장천 부부는 하루 29공기 밥을 먹어 가세가 기울었다 했다. 또 놀보가 박에서 나온 옛 상전에게 공물을 바칠 때 유난히 해산물이 많이, 소상히 언급되는 점도 놀랍다. 비단, 종이, 고급 식기처럼 당시 귀하게 여기던 걸 바치는데 거기서 해산물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방어, 광어, 전복, 꽃게 같은 건 알겠는데 양태, 거당이, 누치에 이르면 어떤 물고기인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게도 뭍게, 꽃게, 청게, 방게로 세분했고 알도 새우알, 조기알, 물고기알, 게알까지 낱낱이 언급했다. 한편, 흥보가 평양 사람이었다는 대목도 흥미롭다. 흥보는 박을 탄 이후 무과에 급제한 무반이 되고, 나중에는 덕수 장씨 시조가 된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은 모르고 보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데 이 책에는 독자를 위한 해설인 ‘깊이 읽기’가 따로 있어 새로운 역사를 알아가며 읽을 수 있다. 역주자 김동욱은 고전과 오늘날 독자 사이를 친절하게 이어준다. 『흥보만보록』의 가장 논쟁적인 지점, 새롭고 흥미로운 지점을 찾아 ‘깊이 읽기’로 구성했다. 모두 여덟 꼭지로, ‘평양 서촌 사람 흥보’ ‘처가살이하는 데릴사위 형제’ ‘가산이 기울 만큼 많이 먹다’ ‘박에서 나온 선물’ ‘아직 그리 악하지 않은 놀보’ ‘조선 사람은 유달리 수산물을 좋아해’ ‘망신스러운 당동 소리’ ‘명문가 덕수 장씨’다. 책 말미에는 원본이 수록돼 있어 흥부전의 원형이 궁금한 독자나 교사, 연구자가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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