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왜 빨강에 열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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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왜 빨강에 열광하는가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0.10.11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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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빨강의 역사: 인류는 왜 빨강에 열광하는가 | 미셸 파스투로 지음 | 고선일 옮김 | 미술문화 | 368쪽

이 책은 고대 벽화부터 레드 카펫까지, 인류와 가장 오랜 시간 함께한 ‘빨강’의 이야기로 빨강의 역사, 그 안에 담긴 수많은 의미와 전설, 상징을 살펴본다. 원시시대부터 오늘날까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빨강의 위상과 의미가 순차적인 서술 방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사다난한 인류의 역사처럼 다채롭고 대담한 컬러, 빨강은 색의 원형이며, 인간이 처음으로 제어하고 만들었으며 재생산했던 색이다. 그런 까닭에 지난 수천 년 동안 빨강은 다른 모든 색에 대해 우위성을 갖고 있었다.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는 주거 공간을 비롯하여 가구류와 집기, 직물과 의복, 그밖에도 장신구와 보석에 이르기까지 빨강은 일찍부터 그 위상이 높았다. 각종 공연이나 제의에서도 빨강은 권력과 신성함과 연관되었고, 매우 풍요로운 상징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즉 빨강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원초의 색이었을 뿐 아니라 가장 우월한 색이었다.

그렇지만 빨강의 역사가 항상 화려하고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다. 중세 말에 최고의 색, 탁월한 색이라는 빨강의 위상은 급속도로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다음 세기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진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색으로 급부상한 파랑과 여러 분야에서 경쟁을 벌여야 했고, 궁정 사회 의복에서 사치와 우아함을 표상하는 검정의 공세와도 맞서야 했다. 그러나 빨강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은 당시의 사치 단속령과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에 의해 전파된 색에 대한 새로운 윤리에 있었다. 새로운 윤리를 기준으로 판단하면, 빨강은 지나치게 눈에 잘 띄는 데다 값이 너무 비싸고 정숙하지 못하며 비도덕적이고 퇴폐적인 색이었다. 그 결과 16세기 말부터 빨강은 퇴조 국면으로 들어서게 되었다. 얼마 후 과학까지 나서서 빨강의 퇴조라는 현상을 돌이킬 수 없는 흐름으로 만들어 버린다. 1666년 뉴턴이 색의 스펙트럼을 발견하면서 고대와 중세 때의 인식과 달리 빨강이 색의 한가운데가 아닌 한쪽 끝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색의 여왕 빨강에게는 별로 영광스럽지 않은 자리였다.

그렇다면 색의 황금기로 불리던 18세기에는 어땠을까? 당시에는 색소 물질에 관한 화학적 연구가 전례 없는 발전을 하면서 염료와 직물의 생산이 크게 늘었고, 사람들은 색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새로운 유행이 빨강에 유리하게 작용한 것은 아니었다. 18세기 계몽주의 시대는 파랑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오래 전부터 빨강과 대립되는 색으로 여겨졌던 파랑이 이 시기에 비로소 유럽인이 선호하는 색이 되었던 것 같다.

이제는 더 이상 선호하는 색이 아니고, 일상적인 환경에서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여러 분야에서 파랑에, 심지어 녹색에까지 추월당하고 있으면서도, 빨강은 여전히 본인만이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들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첫 번째로 빨강은 경고와 규정, 금지의 역할을 한다. 과거에 그러했듯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빨간색 천과 빨강 표시로 위험을 알린다. 두 번째로 빨강은 처벌을 표시하는 역할을 한다. 시험 답안지를 빨간색 펜으로 수정하는 경우부터 범죄자들에게 빨간색 낙인을 찍었던 관습에 이르기까지 그 사례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빨강이 늘 불안하게 하거나 위험한 것만은 아니다. 빨강은 긍정적 의미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당길 목적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빨간색으로 표시된 가격은 세일이나 행사 상품임을 나타내고, ‘레드 라벨’은 품질 보증 표시로서 일반 품목보다 상위 품목임을 알려준다. 빨강이 예우를 받는 축하 혹은 기념행사들도 특기할 만하다. 임명식이나 개막식 행사에서 ‘붉은색 리본’을 자르는 것, 중요한 인물들을 위해 ‘레드 카펫’을 펼치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듯이 옛 시대의 장엄한 빨강은 오늘날에도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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