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에게 ‘서투름’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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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에게 ‘서투름’을 허하라
  • 배미란 울산대·법학
  • 승인 2020.10.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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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요즘 ‘랜선 잔소리’라는 걸 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학생들에게 늘 잔소리가 많았다. 제자이자, 후배이고, 어떨 때는 내 아이 같기도 한 학생들과 함께 하다 보니, 늘 이런저런 걱정이 많고, 무엇이든 더 잘했으면 하는 마음도 컸다. 원래도 그러한데, 오랫동안 학생 없는 학교에 덩그러니 앉아 비대면 수업을 하고 있으니, 학생들은 새로운 수업 방식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어떤지 쓸데없는 걱정이 늘어만 가고, 혹여 허송세월 하고 있는 건 아닌지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랜선 잔소리다. 수업도, 회의도 화상으로 진행하고, 심지어 집들이도 랜선으로 한다는 세상인데, 잔소리인들 못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의 학습계획부터 졸업 후 진로까지,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동영상 파일로 만들어 온라인 강의실의 게시판에 올려 두었다. 이에 대한 학생들의 반응이나 의견은 물어보지 않았다. 누구라도 필요하다면 귀 기울일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별 문제될 것 없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랜선 잔소리를 통해서 생각이 바뀌고 있는 쪽은 나다. 그동안 오며 가며 만나는 학생들에게 그저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를 전했었는데, 막상 파일을 만들어 보려고 하니 어떤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까부터 시작해서, 지금은 내가 하는 말들이 과연 옳은 것인지 또는 학생들에게 꼭 필요한 이야기인지 라는 의심도 하게 되었다.

대학생활을 어떻게 해라, 어떠한 사회인이 되어라 등 자신은 엄청 대단한 사람인 것 마냥 떠들어대고 있지만, 사실 학생들 나이 즈음의 나는 그저 어벙한 사람이었다.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는 늘 있었지만 뭘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고, 선택의 기로에선 주저하고 허둥대기 일쑤였다. 그래도 시간이 흐르고, 한두 살 나이를 더 먹어가니 이제야 나도 어딘가 쓸모가 있을 때가 있구나 하는 생각도 가끔 한다.

나 역시 그들과 같은 시절을 지나왔고, 여전히 온전하지 않음에도 왜 그렇게 그들의 삶에 관여하려 하고, 조바심을 내고 있을까. 어쩌면 나 자신도 여느 어른들과 다름없이 대학생이라고 불리는 이들에 대한 편견어린 시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른바 어른들은 십 대와 이십 대를 다르게 보는 경우가 많고, 그들에 대한 기대 역시 확연히 다르다. 대학생이라고 하면 어쩐지 스스로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야 할 것 같고, 어엿한 사회인의 모습도 보여주기를 바라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그들은 고등학생 시절보다 단지 한두 살을 더 먹었을 뿐이다. 심지어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늘 어른들 말씀을 잘 듣고, 어른들이 정한 일과에 맞춰서 열심히 공부해 주기만을 요구받아 왔는데 고작 한두 살 더 먹었다고 해서, 대학생이 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어른이 될 수는 없는 게 아닌가.

언젠가 몇몇 대학에서 진행한 신입생 대상 설문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다. 대학생활의 어려움을 묻는 설문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온 응답은 전공 공부의 어려움 등이 아니라 고등학교와는 다른 수업이나 과제 작성 방식 등과 같은 소소하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에 관한 것이었다. 그래서 대학 신입생이 잘 적응하기 위해서는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전환되는 과도기적 시기를 인정하고, 이에 맞춘 대응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건대, 대학 신입생이 고등학생이 대학생이 되어가는 과정이라면, 대학생활의 전반은 학생이 사회인이 되어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들은 미성숙하거나 부족한 것이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차근차근 영글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것임에도, 이제 막 선생으로서 한 발을 내디딘 초보가 그걸 알아차리지 못해 랜선까지 동원해서 잔소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반성이 밀려온다.

어른의 눈에는 그들의 모습이 서투르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어찌 보면 그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에 그저 온전히 그 자체를 인정하면 될 일이다. 다만, 오히려 걱정해야 할 것은 이미 어른들의 잣대로 대학시절을 바라보게 된 학생들이 매사 부족하고 서투르게만 느껴지는 스스로에게 좌절하거나 불안감을 느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그들에게 어른들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쏟아내는 잔소리가 아니라, 본인들이 지금 누구나 당연히 경험하는 사회인으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지나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고, 그 과정에서 힘이 들 때는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배미란 울산대·법학

울산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큐슈대학(九州大學)에서 형법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울산대 법학과 교수로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 등 형사법 관련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 저서로는 「リーディングス刑法」(공저), 「韓国刑法総論」(공역) 등을 출판했다. 아직은 선생으로도, 연구자로도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고, 그때마다 많이 수줍고 부끄럽지만, 적어도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매일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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