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반(反)지성주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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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반(反)지성주의 시대
  • 김왕배 연세대학교·사회학
  • 승인 2020.10.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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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혐오는 단순히 어떤 대상을 싫어하는 것을 넘어 그 대상이 ‘나쁘다’는 도덕적 평가를 담고 있는 감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혐오대상을 멀리하거나 배제해도 좋다는 자기 합리화를 포함하고 있다. 신체의 평안을 위해 이질적인 맛이나 감각에 대한 거부 반응이었던 혐오는 마침내 특정한 인간의 범주로 확장되었다. 혐오의 특징 중 하나는 그 대상을 방치해두면 번식과 증식을 통해 자신의 안녕과 번영을 파괴하는 매우 위험스러운 유기체라고 인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혐오대상에 대한 거리두기로부터 해충 박멸과 같은 폭력적 행위가 자연스럽게 수반되기도 한다. 혐오의 대상인 된 사람들은 인간이면서도 인간 취급을 받을 수 없는, 심지어 죽여도 면책이 되는 인간, 즉 ‘호모사케르’ 같은 존재로 규정된다. 나치즘 하의 유대인이 대표적이고, 오늘날 난민, 이민자, 소수자 등이 이 범주에 속하기도 한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혐오의 감정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흑인들의 목을 졸라 죽이는 사건과 무슬림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 난민과 이주민, 성 소수자 등에 대한 폭력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코로나19’ 시국의 백주대낮에 아시아인들에 대한 혐오와 폭력이 심심치 않게 벌어지고 있다.

우리 사회도 예외는 아니어서 특정 세대나 집단에 대한 이념적 공격, 동성애와 이슬람교도 등에 대한 원색적 비난의 수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지극히 원색적이고 선동적이며, 위협적인 적대적인 언어를 통해 표출되는 혐오 감정은 반(反)지성주의의 진원이 되고 있다. 혐오와 반지성주의는 동반자적인 순환고리를 형성하면서 서로를 증폭시키는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반지성주의는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절대화하는 전체주의적 사고에 젖어 타자를 악마화하고 혐오와 폭력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다. 원래 반지성주의는 엘리트주의에 반대하고 평등이념을 추구하려는 민중지향적 태도였다. 엘리트들이 독점하고 있는 지식과 사유를 좀 더 쉬운 언어, 구체적 삶의 이야기를 통해 문맹의 민중에게 다가서려 했던 종교의 흐름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의 과학적 지식이나 이성적인 관찰보다는 신비주의와 영성, 감각과 직관, 초월적 경험, 다수에 대한 관용과 포용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날 반지성주의는 이들과 거리가 멀다.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반지성주의는 독단과 독선에 젖어 자기의 세계관이 역사의 진보와 사회정의를 대변한다는 착각과 무지, 이를 맹신하는 편집증적 증상에 다름 아니다.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극단적 언사를 서슴지 않는 정치인들, 자신의 도그마에 빠져 침소봉대(針小棒大)와 아전인수(我田引水)를 마다하지 않는 지식인들, 정화되지 않은 오염수처럼 온갖 가짜뉴스와 억측을 쏟아내는 일부 언론인들(특히 유튜브 등의 SNS), 타자의 세계는 안중에도 없는 종교인들 등 반지성주의 동맹이 우리 사회를 옥죄고 있다. 특히 한국의 지성을 대표한다는 일부 교수들의 품격 없는 독설은 한국 사회 반지성의 완성판을 보는 듯하다. 한풀이인지 화풀이인지 모를 혐오 발언을 마구 쏟아내는 그들의 비난은 정작 한국사회의 모순이나 갈등에 대한 명쾌한 진단도 아니고 대안도 아니다. 이들의 비난은 기이한 몸짓 혹은 해학과 풍자, 유머 등의 언어적 유희를 통해 사회의 위선과 가면을 벗기려는 디오게네스적인 ‘견유주의(kynicism, 犬儒)’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진지한 계몽의 목소리는 더욱 아니다.

혐오와 반지성주의가 판을 치는 즉자적 사회에서 자신과 타자의 성찰, 인간과 인간 너머의 존재에 대한 성찰, 신뢰와 연대와 같은 사회적 가치는 찾아보기 힘들다. 분단과 전쟁의 트라우마, 세계 유례없는 시공간 압축 성장, 다양한 사유를 견주어 볼 수 없었던 가부장적 권위주의, 사회정의의 강박증, 속죄를 위한 죽음까지도 용서하지 않는 단죄(斷罪)문화 등 소통의 미학과 철학이 빈곤한 분절 사회가 낳은 파열음이리라. 게다가 너무나 주관적인 자기충만주의, 책임윤리는 사라지고 권리만 남은 자유의 남용 등이 얽히고설킨 탓일 것이다. 혐오와 그 혐오를 혐오하는 혐오, 그래서 오늘날 한국 사회는 혐오로 충만해 있다. 동시에 반(反)지성주의의  증상도 깊어지고 있다.


김왕배 연세대학교·사회학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버클리(Berkeley)대학교 동아시아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있던 중 시카고대학교(The University of Chicago)의 사회학과 조교수로 초빙되어 동아시아 정치경제, 한국학 그리고 도시공간과 사회이론 등을 강의했다.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저서 및 역서로 『도시, 공간, 생활세계』(2000),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2001), 『감정과 사회』(2019), 『향수 속의 한국사회』(2017, 공저), 『세월호 이후의 사회과학』(2016, 공저), 『국가와 계급구조』(1985, 옮김), 『자본주의 도시와 근대성』(1995, 옮김)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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