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과학기술의 크나큰 오류: 새로운 세계관이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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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과학기술의 크나큰 오류: 새로운 세계관이 요구된다
  • 김규원 서울대 약대 명예교수·분자생물학
  • 승인 2020.10.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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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현대 과학은 과학의 영문명 “Science”의 어원이 ‘잘라낸다, 찢다(split)’는 뜻의 그리스어(schizein)와 라틴어(scindere)에서 유래되어 알 수 있듯이 자연대상을 나누고 세분하여 탐구한 것으로 대상을 독립적인 실체로 보고 극히 미세한 부분까지 규명해 왔다.

따라서 지난 수백 년 동안 과학계를 이끌어 왔던 서구 과학자들의 사고체계는 극단적인 세분화와 그 연구대상의 독자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 근저에는 인간중심의 이분법적 사고가 굳건히 자리하여 인간과 나머지로 분리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인간도 다른 생명체들과 상호연결 되어있고, 상호의존적이라는 사실이 무시되면서 과학기술이 발전되어 온 것이 큰 오류라 생각된다.

이러한 과학기술의 발전에 의해 인간의 욕망이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하게 되고 거의 무한대로 극대화된 것이 지금의 세상이다. 이의 대표적인 물질이 플라스틱이다. 대략 1930년대부터 폴리에틸렌, 나일론, PVC 등으로 개발된 플라스틱은 지금은 모든 곳에 침투해 있어 완전히 플라스틱 세상이다. 특히 현재의 대량소비 사회에서 일회용 상품의 핵심에 플라스틱이 있다.

이러한 플라스틱 제품들은 견고함이 극히 탁월하여 완제품 그대로 생태계에 남아있거나, 자외선에 분해되어 미세플라스틱으로 전 세계를 오염시키고 있다. 따라서 인간도 당연히 이 미세플라스틱에 점점 오염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미세플라스틱들은 그 자체가 해가 되기도 하지만 주변의 독성 물질들을 다량 흡착한 후 체내에 확산시키는 유독 작용이 강하다. 이 플라스틱 오염에 의해 태평양 한복판에는 한반도 7배 크기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떠다니고 있으며, 2050년이 되면 바다의 플라스틱 양이 어류 전체의 총량을 초과할 전망이다.

그 외에도 수많은 인공화학 물질들이 개발되어 심각한 환경오염을 일으키고 있다. 그래서 현대 과학기술이 인간에게 많은 혜택을 주어왔지만, 동시에 지구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여러 문제점들을 야기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의 생존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을 살펴보면 우리는 모든 생명체의 상호연결과 상호의존성을 깨우치게 된다. 미생물들은 인간 세포에 비해 보통 100배 이상 작아서 우리 몸의 조그마한 틈새에도 서식할 수 있다. 모근과 같이 피부 깊숙이 산소가 부족한 곳에도 서식하고 있으며 겨드랑이, 발가락 사이 등 습한 곳에는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미생물들이 살고 있다. 비교적 건조한 손에도 150종 이상이 있고, 입의 점액에는 800여 종, 장내에는 5,000여 종이 있으며 대변량의 60퍼센트(1g당 1,000억 개의 박테리아) 정도를 차지할 정도이다. 이들 인체 미생물들은 병을 일으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 몸의 세포들과 긴밀한 우호적인 상리공생의 관계를 이루어 공존하고 있다. 우리 몸이 미생물들이 서식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대신, 미생물들은 우리에게 필수 아미노산, 비타민류, 소화효소와 항생제 등을 대가로 지불하고 있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이다.

이런 작은 크기로 인해 미생물의 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많다. 전 세계 인구는 약 80억 명(8×10⁹)이고, 동·식물의 수는 약 1×10²¹개체 정도로 추정이 된다. 이에 비해 세균은 1×10³⁰개체, 그리고 바이러스가 약 1×10³¹개체로 계산이 된다. 따라서 인간을 포함한 동·식물 전체 수보다 미생물의 수가 100억 배 이상 더 많다. 따라서 이 지구상에서 생물체의 거의 대부분은 세균이나 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들이 차지하여 인간을 비롯한 동·식물들은 보이지 않은 미생물의 바다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상 이 지구의 주인은 미생물이다.

그뿐 아니라 약 45억 년 전 지구가 탄생된 이래 35억 년 전에 최초로 출현한 생명체로서 미생물이 이 지구상에서 가장 긴 시간 살아오고 있다. 이후 이 미생물들은 지구환경에 적합하게 진화하면서 엄청난 다양성을 확보해 왔다. 수동적으로 지구환경에 적응만 한 게 아니라 미생물 스스로도 이 지구 생태계를 변화시켜 현재의 대기 상태, 즉 이산화탄소가 적고 산소가 풍부한 대기 상태를 구축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미생물들은 작은 크기, 엄청난 수, 다양성에 의해 이 지구상의 어떠한 생태계의 변화에도 쉽게 적응하여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나중에 출현한 동·식물들이 이 지구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는 데 필요한 능력을 보완해 주거나, 아예 필요한 물질을 제공하는 공생의 관계를 이루게 되었다. 이런 관점에서 인간도 미생물을 매개로 하여 다른 생물체들과 상호 연결되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라는 것이 명백해진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인간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나 미생물의 바다에 살고 있다는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한다. 이에 대해 미생물의 상리공생 학자인 마르크 앙드레 슬로스가 “혼자가 아니야”(2019)라는 책에서 이제는 인간중심의 세계관을 폐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여 인간중심 세계관에 기반한 과학기술에 의해 야기된 크나큰 오류를 조금이라도 더 늦기 전에 바로 잡아야 할 때라고 강조한다.

중세시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에 의해 이 우주의 중심이 지구가 아니라는 사실이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힘든 충격이었지만 이제는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제는 이 지구의 장기거주 주인은 미생물이고, 우리 인간들은 이 미생물의 대양에 잠시 방문하여 기거하고 있는 생명체의 하나로서 미생물의 도움으로 살아가고 있는 실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이 지구상에서 다른 생명체들과의 공존과 모든 생명체 간의 상호연결과 상호의존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세계관으로의 전환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김규원 서울대 약대 명예교수·분자생물학

서울대 약대를 졸업하고 미네소타 대학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하버드 의대 다나-파버 암연구소 연구원, 부산대, 서울대 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학교 약대 명예교수 겸 석좌연구교수로 있다.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정회원으로 한국혈관생물학연구회 회장, 대한암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목암생명과학상, 청산상, 오당상을 비롯해 대한민국 최고과학기술인상과 한국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호암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 기술인”에 선정되어 과학자를 꿈꾸는 청소년들의 롤모델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탁월한 연구업적과 학술 활동에 의해 《세계를 이끄는 한국의 최고 과학자들》(2009년, 서울대 출판부)의 1인으로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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