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 종교지형의 대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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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아메리카 종교지형의 대전환
  • 조영현 부산외국어대학교·중남미지역원
  • 승인 2020.10.04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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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IIAS) HK+사업단]

■ 부산외국어대학교 중남미지역원(IIAS) HK+사업단: 라틴아메리카,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_⑩ 라틴아메리카 종교지형의 대전환

가톨릭의 쇠락과 종교 인구 구성의 변화

문화현상이나 정체성과 연관된 종교는 한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 핵심 요소이다. 종교지형의 변화는 정치, 사회, 문화, 그리고 국제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종교문화와 종교지형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매우 흥미로운 곳이다. 지난 500년간 견고하게 유지되던 가톨릭교의 패권이 새로운 종교운동이나 실천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복음주의 노선 기독교의 급격한 팽창은 라틴아메리카에 새로운 색깔을 입히면서 기존과는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형성시키고 있다.

1492년 아메리카 대륙 “발견”으로 열린 대항해시대는 이 대륙에 식민지 건설과 서구의 종교 전파를 촉진시켰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주도한 식민지 설립은 자연스레 가톨릭교회가 뿌리내릴 수 있는 토대가 되어주었다. 그 이후 19세기 말까지 가톨릭교회의 독점적 패권은 그대로 유지되었다. 이 종교는 19세기 초반에 독립한 멕시코부터 19세기 말엽에 독립한 쿠바까지 이 지역 대다수 국가의 정체성 형성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19세기 말엽부터 미국을 통해 개신교가 서서히 유입되기 시작했지만 그 세력이 미미해 종교적 변화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이후 복음주의 노선의 기독교 신도들이 점진적으로 증가하면서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산업화 시기에서 군부독재 시기까지는 커다란 변화가 없다가 1980년대 민주화 시기와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팽창하기 시작한 것이다. 1910년 개신교 신도는 전체 라틴아메리카 인구의 1%에 머물면서 존재감이 없었고, 1970년까지도 4%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2014년 미국의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의 자료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 가톨릭 인구는 69%이고, 개신교 신도는 19%로 급격히 증가했다. 국가별로 신도 수의 변화를 보면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 라틴아메리카 국가별 신도 비율.(출처: Pew Reserch Center 2014)
▲ 라틴아메리카 국가별 신도 비율.(출처: Pew Reserch Center 2014)

먼저 엘살바도르, 과테말라, 니카라과 온두라스 같은 중미 국가들은 이미 가톨릭 신도가 절반이거나 거기에 약간 미치지 못하는 나라들이다. 반면 개신교 신도가 40% 정도로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가톨릭 인구가 다수인 나라에서도 푸에르토리코, 브라질, 코스타리카 같은 나라는 25% 이상이 개신교 신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네 명중 한 명 이상이 개신교 신도라는 의미이다.

가톨릭 신도가 절대 다수인 볼리비아, 페루, 베네수엘라, 파나마와 같은 나라에서 주목할 것은 개신교 신도 비율보다는 그 확산세이다. 21세기 들어서 신도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종교 인구 구성의 변화는 단지 종교 분야의 변화만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정치, 문화적 변화를 유도한다는 점에서 종교변화가 사회변화를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라틴아메리카에서 사회와 문화 변화를 추동하는 것이 기존처럼 군부, 정당, 노조, 게릴라운동 등 전통적 정치행위자들이 아니라 시민사회운동이나 그와 유사한 조직들이라는 점이다. 이런 움직임 속에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이 점점 그 영향력을 확장시키고 있다. 

새로운 종교 세력의 부상과 정치적 변화

종교와 정치가 상호 영향을 주는 것은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현상이다.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종교와 정치 관계를 이야기할 때 주로 가톨릭교회가 언급되었다. 가톨릭의 패권이 오랫동안 작동했기 때문에 개신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서서 상황은 많이 변했다. 개신교 인구 증가와 동시에 일어나는 현상은 라틴아메리카 개신교, 특히 복음주의 교회 노선의 신도들과 목회자들이 정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 개신교의 확산을 주도하는 세력은 역사적 개신교 계통이 아니라 복음주의 노선, 특히 오순절교 노선의 교회들이다. 선거에서 개신교 후보나, 그와 유사한 보수 이념을 표명하는 후보를 지지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 적극 개입하고 필요한 경우 정부나 정당 등 정치적 행위자들에게 압력을 행사한다. 개신교 신도들의 이런 활동은 최근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에서 보수 우파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는데 기여했다.  

▲ 지미 모랄레스(Jimmy Morales)
▲ 지미 모랄레스(Jimmy Morales)

과테말라에서는 중도 성향의 국민통합전선(FCN)을 대표하는 지미 모랄레스(Jimmy Morales)가 2015년 67.44%의 압도적인 표를 얻으면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복음주의 신학자이지만 코미디언으로 더 유명했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극우 성향의 복음주의 목사인 하비에르 베르투치(Javier Bertucci)가 2018년 대선에서 10.79%의 유권자들의 지지를 받았고, 코스타리카에서도 2019년 가수이자 복음주의 교회 목사인 파브리시오 알바라도 무뇨스(Fabricio Albarado Muños) 국가재건당(PRN) 후보가 2차 결선투표까지 가서 39.41%의 표를 획득하는 성과를 냈다. 이 당은 창당 때부터 복음주의 노선의 기독교인들이 주축이 된 당으로 이념적으로는 극우를 표방했다. 그는 비록 대선에서 좌절을 맛보아야 했지만, 그의 실패는 코스타리카의 정치 지형의 변화를 보여주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남미 최대의 인구수와 면적을 가진 브라질에서의 변화는 더욱 충격적이다. 이 나라의 보수 개신교는 극우 정당의 후보인 보우소나루(Bolsonaro)를 지지하여 그가 2018년 대선에서 46.03%의 득표율로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콜롬비아에서는 복음주의자들이 단순히 자신들의 정당을 창당하는데 머물지 않고 후안 마누엘 산토스(Juan Manuel Santos) 정부와 콜롬비아무장혁명군(FARC) 사이의 평화협정에 대한 반대운동을 주도하기까지 하면서 정치무대에서 영향력을 확산시키고 있다. 그들은 “예수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2018년 보수 우파 정치인인 이반 두케(Ivan Duque)가 대통령이 되는데 적극 협력했다. 아르헨티나와 칠레에서도 복음주의자들의 정당이 창당되었고, 의회 진출도 증가일로에 있다. 이 나라들에서는 정치활동이 자신들의 신념을 확산시키는데 유용하며, 복음화의 효과적인 한 방법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 로페스 오브라도르(Lopez Obrador)
▲ 로페스 오브라도르(Lopez Obrador)

멕시코의 경우는 위의 경우들과 정치참여의 형태에 있어 약간 결이 다른 면이 없지 않지만, 복음주의 개신교의 정치적 영향력 확산이라는 큰 틀에서는 맥을 같이 한다. 복음주의자들 중심으로 만들어진 시민단체에서 발전해서 사회만남당(Partido Ecuentro Social)으로 발전했다. 2018년 좌파 정치지도자 로페스 오브라도르(Lopez Obrador)를 대통령에 당선시키기 위한 국가재건운동(MORENA)과 노동당(PT) 선거 연합에 사회만남당이 연대를 표명하며 합류했다. 좌파와 우파 이념을 표방하는 각기 다른 정당의 선거연합은 멕시코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던졌다. 전통적으로 좌파 이념은 복음주의 노선의 우파 노선과 불합치한다는 것이 상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페스 오브라도르나 사회만남당 모두 이념보다는 현실적 이익, 즉 대통령 당선과 정치적 영향력 증대라는 실용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이 선거 연합은 멕시코 정치에서 개신교의 존재감을 급격히 상승시키는 역할을 했다.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런 복음주의 노선의 기독교가 성장하는 배경과 극우 이념 노선이 정치무대에서 확산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지역 전문가들은 먼저 이 대륙에 만연한 불평등과 빈곤, 부패, 폭력에 따른 희망의 상실 등이 개신교 확산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라틴아메리카 종교 시장에서 다수를 점하는 가톨릭은 그동안 불평등한 사회, 불의한 체제를 바꾸는데 기여하지 못했다. 1970년대 사회변혁의 필요성을 역설한 해방신학이 교회 내 보수주의 에 의해 탄압을 받은 이후, 가톨릭교회는 이 대륙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무관심했다. 1970년대 이후 이 대륙에서 복음주의 노선의 교회가 급격히 교세를 확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복음주의 교회들은 빈민층을 중심으로 선교했고 급속하게 신도수를 늘리기 시작했다. 이 대륙의 가난한 사람들의 요구나 불만에 대해 관심을 가진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의 물질적, 정신적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빈민층은 질병, 이혼과 가족의 해체, 실업, 경제적 어려움, 자녀 교육 문제 등의 현실적 문제로 고통받고 있었다. 정부나 다른 기관들도 이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했다. 이즈음 미국의 개신교는 라틴 아메리카 대륙의 개신교화를 지원하는데 적극적이었다. 선교사 파견이나 자금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복음주의 교회들은 기도와 위로 등 심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활기찬 음악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교회로 끌어 모았다. 개신교와 예수를 믿으면 복이 들어오고, 성공과 물질적 풍요로움을 보장받는다는 ‘번영 신학(Prosperity theology)’의 논리를 앞세워 전교했다. 이런 기복적 측면은 그들에게 달콤한 복음이었고 교세를 성장시키는데 매우 효과적이었다.

1990년대 말엽부터 라틴아메리카에 불었던 좌파 도미노 열풍으로 인해 이 지역 대다수 국가에는 좌파 정부들이 들어섰고, 진보 이념에 기초한 개혁 정책들이 빠르게 도입되었다. 동성결혼 인정, 낙태 합법화, 공교육에서 종교교육 배제 등의 조치가 취해졌다. 원주민운동이 사회운동들을 선도하던 안데스에서는 원주민의 필요나 요구에 부응한 정책들이 만들어졌다. 원주민 영성이 종교로 인정받고, 그들의 윤리에 토대를 둔 법들도 만들어졌다. 진보정책에 반대하는 보수 세력이나 우파 세력은 이런 개혁과 사회변화 앞에서 위협을 느꼈다. 개혁과 변화를 저지해야 할 필요가 증가했다. 자신들의 세계관이나 윤리에 역행하는 조치들이 취해지자 복음주의 기독교 세력은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보수우파와 복음주의 노선의 교회들이 연대하는 현상들이 나타났다. 볼리비아에서 복음주의자들이 주장한 “라틴아메리카를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라는 표어는 그들이 어떤 목표를 이루기 위해 투쟁하고 있는지 잘 보여주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개신교의 세상으로 바뀔 것인가?

지난 40년간 라틴아메리카는 민주화시기를 거치며 다원주의적 사고가 확산되었다. 이런 다원주의 사상은 종교적 차원에서 가톨릭의 패권을 약화시키는데 기여했다. 이 시기 사회적으로 서서히 종교적 혁명이 진행되었다. 카리스마적 특성을 보이는 복음주의 교회, 오순절교 계통의 개신교가 서민층에 확산되었다. 이것은 단지 라틴아메리카뿐 아니라 전 세계적 현상이었다.

500년 동안 종교적 패권을 장악했던 가톨릭교회가 이런 변화 앞에서 팔짱을 끼고 그냥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가장 많은 가톨릭 신도를 보유한 이 대륙이 개신교화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보려 할 것이다. 이미 이런 움직임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14년 아르헨티나 출신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골리오(Jorge Mario Bergogolio) 추기경이 세계 가톨릭교회를 대표하는 교황으로 선출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가톨릭교회 자체 개혁의 필요성뿐 아니라 위기의식이 작동한 결과로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황이 즉위하게 된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새 교황은 라틴아메리카에서 개신교의 확산을 어느 정도 저지시키는데 성공을 거두고 있는 듯 하지만 개신교의 확산이란 대세를 장기적으로 저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 데이비드 스톨(David Stoll)의 책 〈라틴아메리카는 개신교로 전환하고 있는가?〉
▲ 데이비드 스톨(David Stoll)의 책 〈라틴아메리카는 개신교로 전환하고 있는가?〉

1990년 과테말라를 중심으로 중미 지역을 연구한 미국의 인류학자 데이비드 스톨(David Stoll)은 『라틴아메리카는 개신교로 전환하고 있는가?』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을 붙인 책을 저술했다. 이 질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더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하지만 적어도 그의 전망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님은 분명해지고 있다. 언어와 함께 정체성 형성과 문화의 토대를 이루는 한 축인 종교의 변화는 사회 변화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라틴아메리카 종교지형의 변화는 단순히 종교 영역과 정신세계의 변화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문화, 그리고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강력한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는 지금 종교 혁명이 진행 중이며, 그로 인한 변화는 이미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조영현 부산외국어대학교·중남미지역원

멕시코국립자치대학교(UNAM) 중남미지역학(정치사회학) 박사. 현재 부산외대 중남미지역원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주요 저서로는 <라틴아메리카 명저산책>(공저), <디코딩 라틴아메리카-20개 코드>(공저)등이 있으며, 논문으로는 <2012년 멕시코 대선과 트위터, 그리고 #Yosoy132운동과의 상관성 연구>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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