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1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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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
  •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 승인 2020.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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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칼럼]_ 대학직설

‘공정과 정의가 이 시대의 화두’라고 국회에서 어느 의원은 일갈했다. 그가 그런 말을 할만한 처지인가를 따지는 것은 논점을 흐리는 짓이다. 진료 거부를 변호하며 어느 젊은 의사 단체는 ‘전교1등을 위해 공부에 매진한 의사’를 ‘성적은 한참 모자라지만 의사가 되고 싶어 한 의사’와 비교하여 소환하며 ‘과정의 공정성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정부’를 규탄했다. 학교 성적에 따라 직업과 사회적 신분을 배정하는 것을 ‘공정성’으로 생각한다고 추정할만하다.

물론 학교에 다니며 좋은 성적을 얻는 것은 선망하고 상찬할 일이다. 그렇지만 ‘전교 1등’이 학교에서 배우고 익혀야 할 모든 활동에서 탁월함을 증거하는 표지는 아니다. 학교의 시험 또는 ‘검사(test)’는 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일종의 기술적 또는 기계적 도구를 통해 측정하여 1등, 2등, 3등의 숫자로 표시함으로써 간편하게 비교하고 서열화할 수 있게 하는 유용성 때문에 널리 사용된다. 사실, 기존의 표준적인 지식에 도전하고 새로운 주장을 제안할 수 있는, 아마도 학생에게 그리고 사회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지적 능력은, 많은 사람들이 ‘객관적’이라고 믿는 ‘수능시험’에서조차 평가할 수 없다. 전교1등, 2등...의 숫자는 학생들의 다양한 역량과 성과를 시험 점수라는 하나의 척도로 재단하여 단순화하고 표준화하는, 간단히 말하면 우열을 비교할 수 없는 학생들의 다양한 특질들과 활동들을 의미를 소거한 수량의 차이로 환원하는 상당한 부정확성과 불투명성과 폭력성을 내포한 편의적인 척도일 뿐이다.

그런데 일단 생산된 전교 1등, 2등, 3등...은, 해석을 필요로 하지 않는 ‘숫자’의 투명하고 자명한 ‘사실성’의 효과에 의해, 그것이 무엇을 위해 그리고 어떻게 생산되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거하고, 마치 자동적으로 생성된 것이며 본래부터 ‘객관적인 것’으로 ‘자연화’(또는 black-boxed)된다. 게다가 1등, 2등...에 돈이나 상 같은 물질적 보상이 결부되면, 전교 1등은 그 자체가 활동의 목표로서 숭배의 대상이 된다. 학생들의 다양한 특질과 활동들 가운데 ‘검사 기술’로 측정 가능하고 시험 점수로 표시 가능한 것 이외의 모든 특질들은 의미 없는 것, 나아가 존재할 필요가 없는 것이 된다. 마침내 수단이 목표로 전치된다. 시험 점수가 만물의 척도로 자립하고, 각각의 학생을 ‘너는 1등 인간, 너는 2등 인간....’으로 대체한다. 몇몇 젊은 의사가 ‘전교 1등’을 자랑했지만, 그들보다 앞서 우리 사회가 1등을 숭배하고 1등을 강요하고 1등만 기억해온 것을 상기하면, (‘전교 1등’의 뛰어난 인재들이 숫자 물신숭배를 의심 없이 답습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들을 손가락질할 일도 아니다.

게다가 ‘전교 1등’ 물신숭배의 파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점수에 따라 학생들을 1등, 2등...으로 치환하는 장치에 의해 학생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경쟁 관계 속에 서열적으로 통합된다. 누군가의 등위가 상승하면 내 등위는 하락한다. 더욱이 내 점수가 아무리 높아도 누군가의 점수가 내 점수보다 더 높으면 전교 1등은 그의 몫이다. 내 점수에 안심할 수 없고 남의 점수를 의심할 수밖에 없다. 패배하지 않으려면 ‘점수의 노예’가 되어 나의 기획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뿐 아니라 경쟁자들의 기획의 성공을 봉쇄해야 한다. 결과의 불확실성과 가변성은 ‘전교 1등’을 향한 경쟁을 더 불안하고 치열한 것으로 만든다. ‘경쟁은 아름답다’고 찬양하는 인사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전교 1등을 차지한 승리자에게나 (그것도 사후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경쟁에서 만인은 만인의 늑대일 뿐이며, 믿을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자신뿐이다. 궁극적으로 경쟁은 서로를 불신하고 적대하고 훼방하게 만듦으로써 경쟁 이외의 사회적 관계들을 해체하거나 억압한다. 사회관계들에서 고립된 파편화되고 원자화된 개인들이 사회의 여러 영역들로 확산한다.

이런 현실에서, 공부에 매진한 ‘전교 1등’에게 경쟁의 성과에 따른 차등 보상의 공정성이 아니라 연대와 협력에 기반하는 공공성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씨앗은 뿌리지 않고 열매만 거두려는 헛된 욕심일 뿐이다. 공정성조차 무시했던 인사들이 느닷없이 공정에 엮어서 정의를 교묘하게 희석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기홍 논설위원/강원대·사회학

강원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강원대 교수회 회장, 한국사회학회 편집위원장을 역임했다. 주 연구 주제는 사회과학철학, 사회과학방법론, 그리고 사회이론이다. 저서로 『사회과학의 철학적 기초: 비판적 실재론의 접근』, 역서로 『맑스의 방법론』, 『경제,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과학으로서의 사회이론』, 『새로운 사회과학철학』, 『지구환경과 사회이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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