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자치와 사적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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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자치와 사적구제
  • 이성엽 고려대·법정책
  • 승인 2020.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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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쿠스]

사적자치(私的自治)의 원칙은 보통 사법(私法)상의 법률관계는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자기책임 하에서 규율하고, 국가는 이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근대 사법의 원칙이다. 사적자치 원칙의 이론적 근거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율성이다. 인간이 존엄하고 자율적이라는 것은 인간은 다른 생물체와 달리 자율적으로 정한 삶의 목표를 실현해 나감으로써 행복을 추구하며, 자기 행위의 결과에 대해서는 자신이 책임을 진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사적자치 실현을 위해서는 일반적인 활동의 자유와 계약의 자유, 생명·신체의 온전성, 소유권의 보장, 목적으로서 인간이라는 조건이 보장되어야 한다. 사적자치의 보장은 헌법상 행복추구권, 신체의 자유, 거주ㆍ이전의 자유, 소유권 보장, 근로의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 보장을 통하여 국가에게 의무로 부여되어 있다. 즉, 국가는 사적자치를 최대한 보장하여야 한다.
 
경제,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사적자치는 국가에 의한 시장경제, 시민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개입을 요청한다.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공공복리 등의 공익상 필요가 있는 경우에 국가의 개입이 정당화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사적자치의 본질에 해당하는 사항에 대한 침해는 금지된다. 코로나19와 같은 펜데믹 사회에서 국가의 시민에 대한 통제와 감시가 뉴노멀로 자리잡으면서 사적자치 원칙에 중대한 위협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더욱이 5G 통신, 클라우드, 빅데이터, 사물 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개인 데이터에 대한 광범위한 수집, 분석을 가능하게 하면서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험도 증가하고 있다. 감염병 위기, 사회 갈등의 해결 등을 위해 국가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지만 동시에 사적자치 보장을 위해 신중한 권력행사 역시 요청된다. 본질적으로 양자가 조화되기 어렵지만, 최근 부동산 가격 안정 등의 시책 관련 국가의 과욕이 사적자치의 한계를 넘는 현상도 목격된다.

다른 한편 국가의 역할에 대한 중요한 제한원리가 법치주의이다. 다른 사적행위와 달리 국가행위는 반드시 법률에 근거를 두고 법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리이다. 이는 자의적인 국가 권력의 행사를 방지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러한 법치주의 원칙의 파생원리 중 하나가 사적구제 내지 자력구제 금지의 원칙이다. 사적구제는 법원이나 경찰 등 국가권력의 힘을 빌리지 않고 사력으로 자기의 이익이나 권리를 방어 또는 회복하는 행위를 말한다. 오늘날 법치국가에 있어서는 국가권력에 의한 구제절차를 기다려서는 도저히 회복할 수 없는 손해가 발생할 것이 명백하고 절박한 상태 하에서 자기의 생명·신체·명예 그리고 재산 등을 수호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사적구제가 허용되면 이는 복수를 합법화시켜 사실관계에 대한 판단, 적정한 처벌의 수위의 결정 없이 과잉처벌이 이루어져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같은 자연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근대사회의 원칙은 법률관계 형성은 사적자치 원칙에 따라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의 합의에 따르지만, 권리의 불이행이나 침해 등 분쟁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종국적으로 국가의 사법체계를 이용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최근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사이트인 디지털 교도소는 자력구제 금지를 위반하고 있을 뿐 아니라 명예훼손, 프라이버시 침해 등 위법적 요소가 다분하다는 점에서 법치주의와 인권보호에 중요한 도전이 되고 있다. 국가는 사적자치를 존중하고 이를 최대한 보장하는 역할 뿐 아니라 동시에 사적구제와 같은 법치주의 위반 요소에 대해서도 엄정한 대응을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성엽 고려대·법정책

고려대학교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 고려대 법학과 학사, 서울대 행정대학원 행정학 석사,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로스쿨 법학석사, 서울대 법학박사를 졸업했으며 하버드 로스쿨 방문학자를 거쳤다. 정보통신부, 국무조정실, 김·장 법률사무소를 거쳐 2017년부터는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기술법정책센터 센터장도 맡고 있다. 한국데이터법정책학회 회장,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규제심사위원장 등 다수의 정부위원회에 참여하고 있는 ICT 법정책전문가로 저서에 『글로벌경쟁시대 적극행정실현을 위한 행정부 법해석권의 재조명』(2012), 『개인정보보호의 법과 정책』(공저, 2014) 『미디어와 법』(공저, 2016)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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