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사료를 근거로 동북공정 논리를 해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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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료를 근거로 동북공정 논리를 해체하다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신한대 대학원·역사학
  • 승인 2020.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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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책, 나의 테제]

■ 나의 책, 나의 테제_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Ⅰ- 한사군은 요동에 있었다』 (이덕일 지음,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298쪽, 2020.08)

▲ 식민사관 앞장선 조선사편수회 임원들이 일제 강점기 어느 봄날 차양 밖에 자리 깔고 모여 앉아 기생·게이샤 끼고 술잔을 나누는 야유회 모습
▲ 식민사관 앞장선 조선사편수회 임원들이 일제 강점기 어느 봄날 차양 밖에 자리 깔고 모여 앉아 기생·게이샤 끼고 술잔을 나누는 야유회 모습

* 이 나라는 역사전쟁 중

현재 한국 사회는 역사전쟁이 한창이다. 박근혜 정권 때 국사교과서 논쟁이 짝퉁 역사전쟁이었다면 지금은 진짜 역사전쟁 중이다. 박근혜 정권 때 역사전쟁이 진짜였다면 현 정권 들어서 만든 검인정 국사교과서는 박근혜 정권 때 만든 국정교과서와 내용이 달라야 한다. 그러나 최근 ‘역사의병대’라는 역사운동 단체에서 《왜? 일제 식민사학 추종하는 국사교과서, 아직도 배워야 합니까?(2020년 8월)》라는 소책자를 낸 것에서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지난 정권 때의 국정교과서나 현 정권 때의 검인정교과서는 내용이 달라지지 않았다. 모두 일제 식민사관을 추종하는 교과서들일 뿐이다. 다만 권력 연장의 도구 또는 권력 장악의 도구로 역사가 ‘이용’되었을 뿐이다.

진짜 역사전쟁은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해체하고 독립운동가들이 수립한 역사관으로 대체하기 위한 전쟁이다. 일제가 한국을 강점한 직후 가장 신경 쓴 분야가 역사학이었다. 일제는 한국 강점 직후 조선총독부 중추원 내에 ‘조선반도사편찬위원회’를 만들고 《조선반도사》를 편찬했다. 한국사의 강역에서 대륙과 해양을 잘라 ‘반도사’로 축소하고 그 반도의 북쪽에는 한사군이라는 중국의 식민지가 있었고, 그 남쪽에는 임나일본부라는 야마토왜의 식민지가 있었다는 논리다. 이것이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110년 이상 이어지는 역사전쟁의 핵심이다.

해방과 동시에 분단이 되면서 남북한 체제경쟁이 시작되었다. 이 체제경쟁에서 역사학을 중요한 도구의 하나로 본 것은 북한이었다. 북한은 이른바 ‘파견원’을 내려보내 남한의 주요 역사학자들에게 월북을 종용했다. 미 군정 때 다시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상황에 실망한 많은 역사학자들이 월북했는데, 여기에는 대구 출신의 김석형도 포함되어 있었다. 월북학자들을 중심으로 1947년 ‘조선력사편찬위원회’가 결성되었고, 학술지 《력사제문제》가 발간되었다. 1949년 벽초 홍명희 선생의 아들인 국어학자 홍기문은 《력사제문제》에 〈조선의 고고학에 대한 일제 어용학설의 검토〉라는 논문을 실었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을 완전한 식민지로 만들기에 성공하자 그들의 소위 역사학자들은 조선역사에 대해서 이상한 관심을 보였다…과연 어떠한 것들인가? 첫째 서기전 1세기부터 4세기까지 약 5백 년 동안 오늘의 평양을 중심으로 한(漢)나라 식민지인 낙랑군이 설치되었다는 것이요(한사군 한반도설), 둘째 신라·백제와 함께 남조선을 분거하고 있던 가라가 본래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것이요(임나일본부설)”

홍기문의 이 글은 북한 역사학계는 1949년에 이미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한사군 한반도설과 임나일본부설 극복을 과제로 삼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 북한 학계의 역사논쟁

그러나 북한에서도 조선총독부 식민사관 청산작업은 그리 순탄하지 못했다. 북한 학계에도 한사군이 북한에 있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주로 도유호를 비롯한 고고학자들이었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일제가 고고학 유적, 유물까지 조작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반면 문헌 사학자들은 일관되게 한사군(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고 주장했다. 《후한서(後漢書)》 광무제(光武帝) 본기 주석에, ‘낙랑군은 옛 (고)조선국이다. 요동에 있다〔樂浪郡, 故朝鮮國也, 在遼東)〕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중국 고대사료는 낙랑군이 요동에 있었다고 거듭 말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6·25전쟁 이후에도 이 문제가 정리되지 않자 북한은 1958년 학자 리지린을 북경대 대학원에 보내 이 문제를 연구하게 했다. 리지린은 중국의 유명한 고사변(古史辨) 학파의 주역이었던 고힐강(顧詰剛)을 지도교수로 고조선에 대해 연구했다. 1961년 정식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리지린은 1961년 8월~9월에 평양에서 열린 ‘고조선에 관한 과학토론회’에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리지린이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 내용을 발표하면서 한사군의 위치, 곧 낙랑군의 위치를 둘러싼 오랜 논쟁은 끝이 났다. 리지린이 수많은 문헌사료는 물론 요녕성·내몽골·하북성 일대의 고고학 사료까지 제시하면서 고조선은 서기전 5세기~서기전 4세기까지는 하북성 난하까지 차지했었고,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침략을 당한 서기전 3세기~서기전 2세기 이후에는 요녕성 대릉하까지 차지했던 대국이었다고 논증했다. 그리고 한사군과 낙랑군은 요동에 있었다고 논증했다. 방대한 문헌사료와 고고학 사료까지 제시한 리지린의 박사논문을 반박할 수 있는 학자는 없었고 북한 학계는 1961년에 한사군=요동설(낙랑군=요동설)로 정리했다.

* 남한 학계는 여전히 일제 식민사학

반면 남한학계의 실정은 어떠한가? 남한의 역사학계를 장악한 강단사학계는 여전히 조선총독부의 반도사관을 교리처럼 신봉하고 있다. 필자는 남한 강단사학계의 태두라는 이병도 박사의 제자에게 배웠으므로 굳이 분류하자면 3세대 역사학자라고 볼 수 있다. 필자 연배의 학자들에게 배운 4세대 역사학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이들의 인식을 《한국일보》 2017년 6월 5일자가 잘 말해주고 있다.
 
「조태성(한국일보 기자): (동북아역사)지도 사업에서 논란이 됐던 낙랑군 위치 문제는 어떻게 보나.
안정준: 낙랑군이 평양에 있다는 건 우리뿐 아니라 제대로 된 학자는 모두 동의한다. 100년 전에 이미 논증이 다 끝났다. 바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김재원: 100년 전이라 하니까 자꾸 ‘친일 사학’ 소리 듣는다. 하하.
기경량: 그러면 200년 전 조선 실학자들이 논증을 끝냈다라고 하자(《한국일보》 2017년 6월 5일)」

북한학계의 리지린이 당대 중국 제일의 학자였던 고힐강을 상대로 ‘낙랑군은 요동에 있었다’는 내용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이 60여 년 전인 1961년이었다. 그런데 남한의 강단사학자들은 아직도 ‘낙랑군은 평양’이라는 조선총독부 교리를 앵무새처럼 되뇌고 있는 것이다. 이 4세대 역사학자들이 세상 바뀐 줄 모르고 아직도 욱일승천기를 흔드는 것은 믿는 뒷배가 든든하기 때문이다. 이들이 알려지게 된 것은 2016년 고대사에 관한 한 조선총독부 기관지를 자처하는 《역사비평》에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영원히 우리를 지도하신다”는 내용의 〈한국고대사와 사이비역사학 비판〉이라는 특집 논문들을 게재하면서부터였다. 그러자 《조선일보》에서 이들에게 ‘국사학계의 무서운 아이들’이라는 닉네임을 선사했다. 위의 《한국일보》를 비롯해서 《한겨레신문》·《경향신문》까지 대거 이들에 대한 칭찬에 가세해 역사학계의 판도라도 바꾼 젊은 역사학자들이 등장한 것처럼 보도했다. 젊은 학자들이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은 영원히 우리의 역사관을 지배하신다”라는 내용의 논문을 게재하자 좌우가 따로 없는 한국 사회의 숨겨진 진짜 친일카르텔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곧이어 위의 안정준은 서울시립대 교수로, 기경량은 가톨릭대 교수로 채용되었다. 법조계를 비롯한 다른 분야는 우리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친일색채가 옅어지거나 최소한 내부에 친일세력을 비판하는 축이 형성되었지만 남한 강단사학계는 ‘독야탁탁(獨夜濁濁)’ 일제 식민사관 추종 외에는 풀 한 포기 심기 힘든 상황이다.

▲ 지난 9월 9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소장 이덕일)에서는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 출판금지 및 연구비 환수조치를 내린 책 4권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름으로 출간을 강행하면서 정부의 조치에 “식민사학 비판한다고 출판 금지시키는 이 정부는 조선총독부 기관이냐?”고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지난 9월 9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소장 이덕일)에서는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한중연)이 출판금지 및 연구비 환수조치를 내린 책 4권을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름으로 출간을 강행하면서 정부의 조치에 “식민사학 비판한다고 출판 금지시키는 이 정부는 조선총독부 기관이냐?”고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교육부까지 가세해서 일제 식민사학 옹호

필자는 최근에 《조선사편수회 식민사관 비판Ⅰ- 한사군은 요동에 있었다》는 책을 출간했다. 그런데 교육부와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에서는 이 책을 내지 말라고 출간금지를 시켰다. 이 책은 중국의 여러 사료를 토대로 한사군과 낙랑군은 북한 강역이 아니라 요동에 있었다고 논증한 책이다. 필자는 2018년 북한학자 리지린의 《고조선연구》를 번역 및 해역 출간했는데, 굳이 이 책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중국 고대사료를 보면 한사군(낙랑군)이 고대 요동에 있었다는 사료가 차고 넘친다. 그런데 이 책은 2013년 한국학중앙연구원(이하 한중연) 한국학진흥사업단에서 ‘일제강점기 민족지도자들의 역사관과 국가건설론 연구’란 주제의 공모에 응모해 저술한 책이다. 그 연구과제 중에 ‘조선사편수회 분석 및 비판’이라는 항목이 있었는데, 그러자 놀라운 일이 발생했다. ‘조선사편수회 비판’하라고 하자 국내의 그 많은 대학 사학과에서 단 한 팀도 응모하지 않았다. 필자가 속한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가 단독 응찰해 수행했던 과제다. 연구소는 모두 15권의 저서를 제출했는데, 그중에 일제 식민사관과 중국 동북공정을 비판한 4권의 저서에 대해 한중연 측이 심사라는 명목으로 불합격 판정을 내렸다. 필자가 쓴 이 책과 김병기 박사의 《이병도·신석호는 해방 후 어떻게 한국사학계를 장악했는가》, 임종권 박사의 《한국 실증주의 사학과 식민사관》, 임찬경 박사의 《독립운동가가 바라본 한국고대사》가 그 책들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한국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근거가 ‘한사군=한반도설’인데, 필자의 책은 다름 아닌 중국 사료를 가지고 중국 동북공정의 논리를 해체한 책이다. 그러나 필자가 2014년 이 연구 결과물을 제출하자 한중연의 심사자들이 단번에 F를 주고, 출간금지 조치를 내렸다. 이들 심사자들의 논리는 단 하나 ‘기존학설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이들이 말하는 기존학설이란 물론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 학설을 뜻하는 것이다. 위 무서운 아이들이 말한 것처럼 ‘낙랑군은 평양에 있었다’고 서술하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현재 중국 동북공정에서 북한 강역을 자국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핵심 논리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적폐 청산을 내건 문재인 정권 수립 후 교육부에 이의신청을 했더니 단번에 기각하고 연구비 일부 환수조치까지 압박했다. ‘무서운 아이들’이 “조선총독부 조선사편수회는 영원히 우리의 역사관을 지배하신다”고 선언하자 좌우 언론이 대서특필하고 나선 반면 조선총독부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저서를 쓰자 한중연과 교육부까지 나서 출간금지와 연구비 환수를 압박하는 현실은 세상 변한 줄 모르는 것이 친일세력들이 아니라 일제 식민사관과 중국 동북공정을 ‘진짜’ 비판하는 필자와 동료 학자들이 아닌가 착각하게 한다. 친일 식민사학·좌우 언론·역사관련 국가기관·교육부가 하나가 되어 일제 식민사학을 비판하는 저서에 대해 재갈을 물리는 이 상황이 정확하게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다. 그래서 이런 현실에 대한 독자들의 직접적인 판단을 구하기 위해 필자의 책을 비롯한 4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한중연과 교육부의 출간금지 조치에 대응하기 위해 대한민국이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헌법전문과 모든 국민은 출판의 자유를 가진다는 헌법 21조, 모든 국민은 학문의 자유를 가진다는 22조를 방패로 삼아야 하는 현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신한대 대학원·역사학

숭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으로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식민사학 극복을 위한 저술 작업 등을 해오고 있다. 현재 신한대 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대표 저서로는 『조선 왕 독살 사건』, 『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 『조선 왕을 말하다』, 『근대를 말하다』, 『동아시아 고대사의 쟁점』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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