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트로폴리스의 불온한 신여성〉〉에 부쳐
상태바
〈〈메트로폴리스의 불온한 신여성〉〉에 부쳐
  • 임옥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여성학
  • 승인 2020.09.27 18: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저자가 말하다]

저자가 말하다_ 『메트로폴리스의 불온한 신여성들: 1920년대 런던, 파리, 베를린,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임옥희 지음, 여성문화이론연구소, 341쪽, 2020.08)

▲ 파리의 레프트뱅크에 레스보스의 사피즘을 이식하려 한 내털리 바니의 정원에서 연 이교적 의식. 여이연 제공
▲ 파리의 레프트뱅크에 레스보스의 사피즘을 이식하려 한 내털리 바니의 정원에서 연 이교적 의식. 여이연 제공

어느 해 겨울, 밤늦게 지하철을 탔다. 그때만 하더라도 승객들은 지하철에서 종이신문을 읽었다. 신문지를 수거하는 사람이 한 차례 훑고 지나갔다. 그런데도 텅 빈 좌석에 신문지 한 장이 후줄근하게 남아 있었다. 무심코 펼쳐보았다. 최승자 시인의 소식이 눈에 뜨였다. 시인은 아팠고 기초생활 수급자였다. 문학동네에서 시인에게 매달 부쳐주었던 20만 원을 그 와중에도 거절했다고 한다. 버려진 신문지 조각에서 최승자 시인과 접하면서 잠시 쓸쓸해졌다.     

여성 작가들은 이처럼 쉽게 잊혀진다. 여자들의 목소리는 너무 쉽게 제도에서 사라지고 너무 쉽게 작품 재/생산에서 멀어진다. 시대의 전위에 섰던 ‘새로운’ 여자들은 ‘마녀’가 되거나 길 위를 떠돌다가 미치거나 죽거나, 잊혀지거나의 선택지밖에 없는가? 자기 시대와 불화했던 ‘불온한’ 여자들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버지니아 울프는 <<자기만의 방>>에서 ‘여자들은 왜 가난한가? 여자들은 왜 열등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만약 여성의 가난과 열등이 ‘집안의 천사’가 되어 열 명의 아이들을 낳고 키우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여성들의 탓‘만’은 아니라고 한다면? 남자들의 역사 His/story에서 가부장제와 갈등했던 수많은 여성들이 ‘의도적으로’ 망각되었다고 한다면? 역사기록 자체가 젠더전쟁과 정치적인 해석투쟁과 무관하지 않다면? 그렇다면 여성의 관점에서 역사를 다시 쓸 수도 있다. 역사상 가장 주요한 사건은 왕과 교황과 귀족들이 일으킨 수많은 전쟁이 아니라 여자들이 작가로서 생계가 가능해진 것이라고 울프는 주장한 바 있다. 이제 여자가 글을 쓰는 것이 ‘대수롭잖은’ 시대다. 그럼에도 글로서 생계유지는 여전히 ‘대단한’ 일이다. 

울프처럼 여성의 관점에서 근대 문학사 다시쓰기를 해보자는 야심찬 기획 아래 다섯 명의 여자들이 뭉쳤다. 필자는 외국문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서구 근대 시기에 집중하기로 했다. 지금은 반딧불처럼 희미해졌지만, 그 시절 여자들끼리 사랑할 자유를 요구하고 남성의 뮤즈가 아니라 창작의 주체가 되고자 했던 주도적인 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주목하자는 기획의 결과물이 이 책이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빅토리아조 치마를 걸치고 페미니스트 게릴라 투사’로 활약했던 1920년대 서구의 메트로폴리스는 전쟁과 전쟁 사이의 예외적인 공간이었다. 그 시절로 돌아가면 ‘주인 없는 땅’(noman’s land)에서 ‘새롭게’ 출현한 여성들이 대도시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들은 남성의 팔에 기대지 않고 홀로 씩씩하게 걸었을 뿐만 아니라 남성의 영토까지 침범했다. 여기서 신여성/구여성, 진정한 원본 신여성/모사품 짝퉁 신여성과 같은 이분법은 의미가 없다. ‘신’여성은 남성지배체제에 벗어나고자 했던 자들로서 그들 안에 다양하고 다채로운 타자‘들’을 이미 언제나 품고 있는 여자들이었다. 이들은 남성 지배체제에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공모하면서도 일탈했고, 충성하면서도 배신했으며, 부역하면서도 저항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선각자 ‘신’여성은 가부장제에 저항했던 반면, 짝퉁들은 가부장제에 부역한 여성들이라는 이분법적인 윤리적 판단은 문제적이다.

당시 신여성들은 근대적인 현상이자 증상이었다. 서구 근대 유럽은 자신이 이성의 완벽한 구현체라는 터무니없는 나르시시즘에 바탕했다. 근대 기획으로서 자유, 평등, 박애를 주장하면서도 그들은 무수한 타자들을 발명하고 지배해왔다. 이때 타자화되는 존재들은 편리하게도 ‘여성적인 것’으로 등치되었다. 식민지 원주민들은 동물적이고 여자와 아이들처럼 미숙하므로, 계몽의 대상이 된다. 그들은 합리적 판단이 미흡하다는 점에서 비이성적인 존재다. 서구 남성의 결핍은 이처럼 여성적인 속성으로 재/배치되었다. 그렇게 파악해본다면 신여성들은 이미 언제나 남성적 근대의 산물이자 동시에 증상이 된다.

그처럼 이성적이고, 자기절제에 최적화된 서구 근대 남성 주체들은 어떻게 하여 거듭된 전쟁의 광기 속으로 끌려들어 갔는가? 이런 자기모순을 그들은 어떻게 해결했는가? 여성들에게 무한히 양도하고도 남는 잉여의 광기를 그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었던가? 뿐만 아니라 남성의 성적 보호와 도움 없이도 여자들끼리 쾌락을 공유하면서 레즈비언 코뮌을 만들고 레즈비언 르네상스를 선언한 독립적이고 ‘도착적인’ 여성들의 출현은 전쟁으로 입은 남성들의 치명적 상처에 좌절의 소금을 뿌렸다.

1920년대 메트로폴리스에서 활보했던 신여성들은 쾌락과 욕망의 젠더기호였다. 물신주의자, 레즈비언 뱀파이어, 젠더퀴어 멜랑콜리아, 히스테리증자, 붉은 혁명투자 등. 게걸스럽게 남성을 탐하고 자원을 탕진하는 물신주의자 여성들은 대부분 낭비벽으로 인해 창녀화, 마녀화되었다. 그들의 물신적 욕망은 소비를 통해 가정영역을 외주화하고, 시장을 집안으로 끌어들여 자본주의와 공모함으로써 여성에게 부여된 제자리에서 일탈했다. 자본주의의 해방적 기능과 공모하면서도 그들의 수동적 공격성은 자본주의의 숙주를 변형시키려는 충동과 맞닿아 있었다.

레즈비언 젠더퀴어 멜랑콜리아들은 1920년대 파리의 레프트뱅크에서 레즈비언 코뮌을 형성했다. 이성애에 포위된 상황에서 해방구를 만들고 진지전을 수행했다. 그들은 레즈비언으로서 자부심과 사회적 비체로서 수치심 사이를 오가는 젠더퀴어 멜랑콜리아들이었다. 거짓말쟁이 히스테리증자들은 ‘나는 아프다. 고로 존재한다’를 통해 근대적인 코기코를 조롱했다. 그들은 아픈 몸이라는 가장무도회를 통해 여자에게 주어진 제자리에서 벗어나 자신의 예술적, 지적 능력을 무대화할 수 있었다. 남자 형제들과 더불어 경쟁하면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 싶어 했던 붉은 혁명 투사들은 어떤가? 그들은 겉보기만큼 윤리적이지는 않았다. 정신분석적으로 본다면 그들은 더 많이 챙겨간 형제들을 시샘하고 아버지에게 매를 들도록 부추기는 배반의 정치를 통해 정의와 평등을 실현하려는 충동에 사로잡혔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페미니즘의 계보는 길거리를 굴러다니는 신문지 조각으로 다가오더라도 기록하고 기억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비록 이 책이 허공에 매달린 거미줄처럼 허망한 이야기의 그물망일지라도, 다양한 여성모델을 제공함으로써 매번 처음처럼 ‘새롭게’ 출발하는 여성들에게 도움닫기의 디딤돌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


임옥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여성학

경희대학교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여성문화이론 연구소 회원으로서 공부하는 공동체 덕분에 책을 기획하고 쓰고 있다. 그런 결과물로서 <메트로폴리스의 불온한 신여성들>, <젠더.감정.정치>, <채식주의자 뱀파이어>, <주디스 버틀러 읽기>, <페미니스트 정신분석이론가들>(공저), <몸페미니즘>(공역)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