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현상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슈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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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현상학의 창시자, 알프레드 슈츠
  • 강수택 경상대·사회학
  • 승인 2020.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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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알프레드 슈츠』 (강수택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148쪽, 2020.08)

이 책은 출판사에서 기획한 이론총서의 한 권으로 나왔다. 이론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핵심 개념 중심으로 짤막하지만 폭넓게 소개하는 얇은 책이다. 현상학적 사회학과 사회현상학을 개척한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인 알프레드 슈츠의 책은 안타깝게도 단 한 권도 우리말로 번역되어 있지 않다. 또한 그의 이론에 관한 단행본도 그동안 국내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필자는 알프레드 슈츠의 이론 전반을 쉽게 접할 기회를 제공하려는 취지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일상생활세계, 상호주관성, 상식의 지식사회학, 의미·기호·상징과 사회, 삶의 형식, 인간·이방인·시민 등 열 개 주제 영역을 중심으로 그의 이론을 소개한다. 그리고 슈츠의 사상이 베버, 후설, 미드뿐만 아니라 베르그송, 라이프니츠, 셀러의 사상과도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그리고 특히 1920~1930년대 초에 빈대학교 중심의 빈 학파 인물들과 어떻게 교류했는지도 소개한다.

1899년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가문에서 탄생한 알프레드 슈츠는 빈대학교에서 켈젠, 미제스, 비저 등으로부터 법학과 사회과학을 공부한 뒤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은행과 은행 관련 단체에서 주로 법률 관련 업무를 하다가 나치즘을 피해 프랑스를 거쳐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는 뉴욕에서도 은행 관련 업무에 종사하다가 사망하기 3년 전인 1956년 뉴스쿨(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의 전임 교수가 되었는데 이때까지는 대학 바깥에서 근무시간에는 직업 활동을 하면서 여가시간에 학문 활동을 하는 이중생활을 지속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사회세계의 의미구조: 이해사회학 입문』, 『논문집』 제1권~제6권, 『삶의 형식 이론』, 『적합성 문제에 대한 고찰』, 『생활세계의 구조』 등이 있으며 파슨즈, 귀르비치, 푀겔린 등과의 서신 교환 내용을 담은 단행본들도 있다.

슈츠는 유럽과 미국의 다양한 학문 전통으로부터 지적인 영향을 받아서 자신의 독창적인 이론을 발전시켰지만, 현상학의 영향이 가장 뚜렷하다. 그래서 그는 흔히 현상학적 사회학을 개척한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사회학 영역에서 슈츠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현상학에서는 그를 사회현상학자(social phenomenologist)로 부르는 경향이 생겼는데 그것은 그가 현상학의 연구 영역을 개인 중심으로부터 사회적 관계 중심으로 확장시켰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는 후설 중심의 현상학과 사회과학을 설득력 있게 이어줌으로써 사회과학 연구의 접근 방법을 발전시키는데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현상학의 연구 영역을 확장하는 데에도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에드문트 후설
에드문트 후설

가장 널리 알려진 슈츠의 이론은 복합현실론과 일상생활세계론이다. 그는 윌리엄 제임스의 영향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세계가 일상생활세계, 놀이의 세계, 과학의 세계, 꿈의 세계, 환상의 세계 등으로 구성된 복합현실의 세계라고 보았다. 이들 세계는 각각 고유한 의식긴장, 판단중지, 자발성 형태, 자아경험 형태, 사회성 형태, 시간구조 등의 특징을 지니고 있어서 다른 세계로 환원되지 않는다. 슈츠는 이들 복합현실 중에서 일상생활세계에 특별히 주목했는데 그것은 이 세계가 모든 세계의 고향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일상생활세계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하면서 그 의미구조를 해명함으로써 일상생활세계에 대한 이해를 증진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일상생활의 사회학이 출현하는 데 기여했다.

일상생활세계의 전형적인 지식은 상식이다. 슈츠는 일상생활세계를 중시하는 관점에서 상식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키는 역할을 했다. 종래에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상식을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간주하는 과학주의 혹은 지성주의 경향이 뚜렷했으나, 슈츠는 상식과 그 근거가 되는 일상생활세계의 직접적인 경험이 오히려 과학의 토대일 뿐 아니라 사회세계를 구성하는 전형적인 지식 형태임을 밝힌 것이다. 이를 통해 그는 지식사회학이 종래에 이데올로기, 사상 체계 등 거대하고 체계적인 지식을 주된 연구 대상으로 삼아온 것을 넓혀 상식을 주요 연구 대상으로 포함시키도록 했다. 또한 그는 지식사회학이 상식 중심의 지식을 통한 사회현실의 구성에 대한 일반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에도 이바지했다.

▲ Alfred Schutz (1899~1959)
▲ Alfred Schutz (1899~1959)

이처럼 슈츠는 일상생활세계론, 상식론 등의 발전에 기여했을 뿐만 아니라 사회과학에서 질적 연구방법론이 계량적 연구방법론과 마찬가지로 타당한 연구방법론으로 인정받고 발전하는 데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사회과학 연구에서 철학적 인간학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슈츠의 매우 창의적인 이론들은 사회학계와 현상학계를 중심으로 많은 학자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널리 알려진 『현실의 사회적 구성』의 공동 집필자, 버거와 루크만은 말할 것 없고 미국에서는 여러 현상학적 사회학자 외에도 고프만 같은 상징적 상호작용론자, 가핑클 같은 민속방법론자 등이 슈츠로부터 매우 큰 영향을 받았다. 유럽의 지성계에 끼친 슈츠의 영향은 훨씬 더 폭이 넓다. 사회현상학자나 현상학적 사회학자 외에 현상학 전통 바깥의 수많은 다양한 현대 사상가들, 예컨대 근대성에 대해 상이한 입장을 지닌 여러 인물들, 하버마스, 기든스, 바우만, 마페졸리 등이 모두 슈츠로부터 적지 않은 빚을 진 사상가들이다.

그의 이론적 사상은 과학과 거대 사상 중심의 세계상이 지배하던 시대 분위기에 맞서 일상생활세계의 가치와 의미를 부각시키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오늘날에도 첨단 과학기술의 발달과 시장경제의 영향력 확대로 인해 인간의 삶의 양상이 급속히 변하고 있다. 슈츠의 사상은 인격적 존재인 개인들의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펼쳐져 있다. 그래서 시장, 기술, 권력 등 다양한 형태의 물화된 세계 논리가 위력을 발휘하는 21세기의 독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질, 그리고 상호연관된 생활세계를 중심으로 자신의 삶과 사회를 이해하는데 소중한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국가의 관점, 과학적 방역 전문가의 관점, 일상생활세계의 관점 등이 서로 충돌하는 것을 빈번히 경험하는 코로나 19시대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삶과 사회를 들여다보는 데에도 마찬가지로 적지 않은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강수택 경상대학교·사회학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했으며 독일 빌레펠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예일대학교와 영국 워릭대학교에서 연구했다. 주요 연구 분야는 사회이론, 사회사상, 지식사회학 등이다. 한국사회학회 부회장, 한국이론사회학회 부회장, 학술지 『사회와 이론』 편집위원장을 역임했으며, 『연대주의』, 『연대하는 인간, 호모 솔리다리우스』, 『시민연대사회』, 『다시 지식인을 묻는다』, 『일상생활의 패러다임』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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