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철학으로서의 유물론 관점에서 본 일본주의와 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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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철학으로서의 유물론 관점에서 본 일본주의와 자유주의
  • 이명아 기자
  • 승인 2020.09.2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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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일본 이데올로기론: 현대 일본의 일본주의·파시즘·자유주의 사상 비판 | 도사카 준 지음 | 윤인로 옮김 | 산지니 | 552쪽

이 책은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적 침략주의가 강화되던 1930년대,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일조했던 일본 학계의 사상적 모순을 벗겨내고 그 문제를 날것으로 드러낸 마크르스주의 사상가 도사카 준의 일본 사상 비평집이다.

도사카 준은 다양한 저술활동을 통해서 일본인의 사회의식을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근대 일본의 국가와 사회의 성숙과 미성숙 사이의 합리성과 비합리성을 분석했다. 도사카 준은 제국주의 공세가 강화되던 시기 치안유지법에 의해 체포되어 패전 직전인 1945년 8월 9일 나가노 형무소에서 옥사했다.

도사카 준의 대표적인 저작인 이 책은 마르크스의 『독일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아 기획했으며, 파시즘화되어가는 일본의 국가와 사회에 대한 합리성과 비합리성(혹은 반합리성)을 유동하는 형태에 대하여 논했다. 그는 당시 문학과 문학비평에 팽배한 자유주의, 일본주의의 이론 구성에서 모순을 지적하고, 일본 마르크스주의 비판자의 논리에 반박하며 행동철학으로서 유물론의 유용함을 주장했다.

그의 논의 이후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은 새로운 행동 철학을 정립하지 못했고, 오히려 구성상 모순으로 파시즘을 강화했던 1930년대 자유주의와 일본주의로 회귀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도사카 준의 이 책은 현재 일본을 이해할 수 있는 필독서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자유주의, 농본주의, 교토학파, 니체, 하이데거 등 문헌학적 철학이 파시즘 강화에 기여했던 1930년대 일본 학계의 문제를 유물론적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그 가운데 윤리학자 와츠지 테츠로에 대한 비판적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 도사카 준은 와츠지 테츠로가 『인간의 학문으로서의 윤리학』에서 윤리, 인간, 존재라는 언어적 해석만을 집중한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와츠지 테츠로의 논의는 개인보다 공동체가 우선하는 일본인의 생활을 정당화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다른 학자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당시 일본 학계는 현실의 모순에 주목하기보다는 문헌 해석에 충실했으며, 자신의 주장에 정당성을 얻기 위해 고전을 인용하는 데 몰두했다. 학문과 사상이 고전 해석에 치우친 나머지 사물, 실제를 설명하지 못하고 관념화ㆍ신성화됐다. 이 같은 일본 학계 조류는 일본 제국주의적 논리를 강화했다. 도사카 준은 문헌학주의의 관념론 대부분은 언어의 해석으로 민족, 시대의 정신과 체험을 분석하는 문학주의와 해석철학에 몰두하여 진성 일본파시즘 사상으로 귀착된다고 주장했다. 또한 당시 일본의 사상 구성의 모순을 지적하고 당시 학계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했다는 지배적인 주장에 반박했다.

▲ 도사카 준(戸坂潤, 1900~1945)
▲ 도사카 준(戸坂潤, 1900~1945)

쇼와대공황으로 사회ㆍ경제적 모순이 심화되면서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반 일본에서 활발하게 전개됐던 사회주의 운동은 1930년대 중엽에 들어서면서 힘을 잃어갔다. 일본 학계는 이런 상황을 놓고 마르크스주의가 쇠퇴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는 마르크스주의적 정당 및 세력이 분쇄되고 그들의 문화적, 정치적 활동조직이 파괴된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도사카 준의 표현을 빌리자면 “좌익사상범은 부르주아 신문지면에서 더 이상 아무런 영웅도 아니게 됐으며 도둑이나 폭력단과 같은 부류로 대우받기 시작한다. 오늘날의 영웅은 우익단체적 혹은 일본주의적 〈패거리〉이다.” 이러한 당시 상황에 논리적 근거를 마련한 것이 일본정신주의, 일본농본주의, 일본아시아주의였다. 1930년대 중엽, 일본 아시아주의에 기반한 폭력적 팽창정책은 상식이 되는 시대가 됐다. 도사카 준은 자신의 생애에 걸쳐서 일본의 지배적인 이론의 구성 문제를 논리적이고, 전면적으로 비판하고, 마르크스주의가 퇴조했다는 당시 학계의 주장을 반박했다.

도사카 준은 일본 자유주의, 일본주의, 파시즘의 이론 구성 문제를 철저하게 분석하여, 일본 문학과 문학비평에 팽배한 자유주의와 철학에서 일본의 고유성과 전통을 신성시하는 일본주의가 아시아주의로 귀결되고 이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파시즘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천황제적 일본주의라는 형태로 파시즘화한 일본의 국가의 반합리주의적 퇴행과 동시에 파시즘 아래서 상식을 상실하고 있는 유약한 근대 일본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했다. 그 대안이 바로 행동철학인 유물론이었다. 1930년대 팽창적 침략주의에 경도된 일본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도도하게 비주류의 길을 걸었던 도사카 준의 주장은, 패전에도 불구하고 파시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대 일본 사회를 독해하는 저작으로 유의미한 가치를 가진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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