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운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의 멋스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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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운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의 멋스러움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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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24)_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
▲ 권응수 장군 초상(權應銖將軍肖像). 보물 제668-1호
▲ 권응수 장군 초상(權應銖將軍肖像). 보물 제668-1호

권응수(權應銖, 1546~1608년) 장군은 본관이 안동인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임진왜란 당시 여러 전투에 참여해 큰 공을 세운 분이다. 경북 영천 출신으로 자는 중평(仲平), 호는 백운재(白雲齋), 시호는 충의(忠毅)다.
 
그가 남긴 유품 중에 가전보첩(家傳寶帖)이 있다. 상ㆍ하 2첩(帖)으로 이루어진 이 시첩(試帖)의 매수는 모두 26매. 상권에 이 번 글의 주인공인 채팽윤(蔡彭胤)을 비롯해 유승무(柳昇茂)ㆍ신구중(愼龜重) 등의 빛나는 시 60여 수가 실려 있다. 하권에는 신후담(愼後聃)ㆍ권목(權睦)ㆍ권기언(權基彦) 등이 지은 시 43수가 실려 있다. 이 가전보첩은 이름처럼 보물 같은 시첩으로 안동 권씨 권응수 장군 집안에 대대로 전해져 내려왔다.
 
그렇다면 채팽윤(蔡彭胤, 1669~1731년)은 누구인가? 다름 아닌 안동 권씨 권흥익(權興益, 1608~1655년)의 외손자다. 저서 『희암집(希菴集)』 외에 해남(海南) 두륜산(頭輪山) 대화사 중창비(大花寺重創碑) 및 대흥사 사적비(大興寺事蹟碑)의 비문을 찬(撰)하고 쓴 그의 시가 가전보첩(家傳寶帖)에 실려 있다. 1737년에 간행된 『소대풍요(昭代風謠)』라는 위항시인들의 시선집 속에도 채팽윤의 시가 담겨 있다.
 
의역 중인(醫譯 中人)을 비롯해 서얼, 서리, 상인 외에 천예 출신까지 망라된 위항(委巷)시인 162인의 시편 685수가 시체에 따라 선집된 『소대풍요』는 조선후기 시인이자 역관인 고시언(高時彦)이 편집한 것으로 알려져 왔으나 실제로는 채팽윤이 선집 작업을 하고 오광운의 협조로 마무리를 했다고 한다.
 
위항이란 꼬불꼬불한 좁은 골목길을 일컫는 말인데 당시 중인 이하의 하급계층을 위항인이라 지칭하였다. 따라서 조선후기 서울을 중심으로 양반사대부가 아닌 중인ㆍ서얼ㆍ서리 출신의 하급관리와 평민들이 주축이 된 위항시인들의 한문학활동을 위항문학 또는 여항(閭巷)문학이라고 했다. 여항은 서민이 모여 사는 마을을 가리킨다.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조선 숙종의 총애를 한 몸에 받은 행신(幸臣) 희암(希菴) 채팽윤(蔡彭胤) 선생 때문에 나는 조선조에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역사상 더 없이 멋진 휴가제도가 있었던 것을 알았다. 사가독서란 선비의 문흥(文興)을 고취하기 위하여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케 하던 제도였다. 숙종임금은 장희빈의 치맛자락만 붙들고 매달린 한심한 군주가 아니라 학자나 관리들의 사고능력과 창의력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는 영민한 통치자였다.

▲ 채팽윤 선생 영정
▲ 채팽윤 선생 영정

채팽윤은 하늘이 낸 神童이었다. 만 18세가 되던 해 과거에 합격하여 진사가 된다. 이년 후에는 증광문과(增廣文科)에 갑과로 급제하여 검열을 지낸 뒤 바로 그 해, 앞에서 말한 사가독서의 기회를 얻었다. 숙종의 명에 따라 오언시, 칠언시, 십운율시(十韻律詩)를 지어 후일 나라를 빛낼 인재라는 찬사와 함께 사온(賜醞: 임금이 하사한 술)의 영예를 입기도 하고, 호당(湖堂)에 선임된 동료들과 은대(銀臺, 승정원의 다른 이름)에 나아가 시(詩)나 부(賦)를 지어 상을 받기도 했다. 
 
호당이란 조선조 세종과 숙종 간에 실시되던 인재양성제도의 하나였다. 문재가 뛰어나고 덕이 있어 장래가 촉망되는 젊은 관리 중에서 대제학이 엄격한 기준으로 인재를 선발하여 장기 휴가를 주고 한적한 산사를 택해 그곳에서 독서에 전념토록 한데서 호당은 비롯되었다. 독서당(讀書堂) 또는 선호당(選湖堂)이라고도 불렀다. 세종 20년(1428) 집현전 대제학 변계량을 시켜 권채 등 3인을 뽑아 장의사(藏義寺)에서 함께 공부하도록 한 일이 호당의 시초다. 그 후 중종 10년(1515) 오늘날의 옥수동에 해당하는 두모포(豆毛浦)에 건물을 짓고 <湖堂>이라는 현판을 달았기에 그리 불렸다.
 
존고대방(典故大方) 호당록(湖堂錄)에 이름을 올린 인물들이 누구일까 궁금하여 살펴보니 우리가 잘 아는 박팽년, 신숙주, 이개, 성삼문, 하위지 등이 모두 호당 출신들이다. 강릉인으로는 호참 최세절(崔世節)과 판윤 최연(崔演), 한림 최운부(崔雲溥), 한림 김선여(金善餘), 삼척인 가운데는 이판 심언광(沈彦光)이 들어있다.   
 
채팽윤이 궁궐에 있을 때면 왕의 명령을 받은 내시가 뒤를 따라다니며 그가 읊조리는 시구를 몰래 적어 즉시 왕에게 올릴 만큼 인기가 높았다니 얼마나 아름다운 정경인가. 그 어떤 명화도 이보다 감동적이지 못할 듯싶다. 종조부인 채팽윤의 문집인 『희암집(希菴集)』 서문을 쓴 채제공(蔡濟恭)에 의하면, 선생은 上(임금)의 장려 하에 두루 명성이 높았으나 세도에 용납되지 못해 30여 년간 지방 수령 벼슬을 하면서 산림에 묻혀 지냈다고 한다.

▲ 채팽윤의 시문집인 희암집
▲ 채팽윤의 시문집인 희암집

그런 채팽윤이 외가가 있는 강릉을 찾았다. 그리고 그가 보고 느낀 강릉 일대 자연의 아름다움, 누정의 멋스러움을 기록으로 남겼다. 환선정(喚仙亭)이라는 정자 주변의 승경을 묘사한 부(賦) 한 편 소개한다. 번역의 미흡함은 필자 탓이다. 

蓬萊仙侶下方壺。笑拍洪厓看碧湖。羽駕東來瀛海闊。萬松如語甑山孤。
봉래산 신선들 동해바다 삼신산에 내려올 적에
기뻐 박수치니 드넓은 바닷가 푸른 호수 보이다
깃털 수레 타고 동쪽으로 오니 큰 바다 활달한데
수만 그루 소나무 증산의 외로움을 말하는 듯하다.

▲ 2016년에 복원된 강릉 환선정
▲ 2016년에 복원된 강릉 환선정

선인의 글을 자전을 찾아가며 읽다보니 외삼촌을 구(舅), 외할아버지는 준외왕(대)부(尊外王父)로 적고 있다. 당시 친인척 호칭이 내가 대상자를 부를 때, 남에게 대상자를 말할 때, 남이 나에게 대상자를 말할 때, 남에게 나를 대상자로서 말할 때 등 복잡하게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세월 따라 사회는 변하고 말도 달라진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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