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을- ‘독서 위기 시대’의 독서와 교양독서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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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을- ‘독서 위기 시대’의 독서와 교양독서교육
  • 이하준 편집기획위원/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독일현대철학
  • 승인 2020.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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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인사색]

9월이라는 이름의 가을이 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자가 있을까? 코로나도 시간을 이길 수 없는 법. 9월은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표제어를 들고 나타난다. 이 표제어는 1925년 식민지 시대 일제의 독서주간 행사 기원설부터 한여름보다 책이 팔리지 않는 놀러 다니는 계절, 가을을 버티기 위한 출판계의 미소 속에 숨어 있는 울음소리 설까지 다양하다. 2020년 가을의 출판·문화계는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라는 슬로건 마케팅을 꺼내기보단 엄숙한 가을의 시간 앞에 서 있다.

11월 예정된 도서정가제 개정을 앞두고 출판·문화계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생존 논리를 벗겨내면 독서(문화) 위기론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것은 진실이다. 그런가 하면 도서관이나 지자체는 코로나 시대의 독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전자책 온라인 대여 서비스나 동네서점서 구매한 책을 독서 후 반납하면 90%로 페이백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고 공공 도서관은 동네서점과 협조해 대여 및 반납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러한 시도는 언컨택트-코로나 시대의 ‘독서 위기’를 돌파하는 문화교양적 저항 활동이다. 독서 시장이 보여주는 것은 ‘독서 위기’가 지나가는 가랑비가 아니라 폭풍우임을 알려준다. 논자가 볼 때 우리의 독서문화는 과거나 지금이나 편향적 독서, 실용적 독서, 간헐적 독서의 경향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독서 위기’에 항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다. 축적되고 일상화된 위기의 항상성이 위기 인식을 제거해 버린 형국이다.

대학에서 독서 위기는 어떤 모습인가? 교수들의 독서?, 위기이다. 왜 위기인가? 전공주의에 빠진 교수들은 논문생산을 위한 전문독서 이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업적압박과 전공주의의 산물이다. 그중에 소수의 집단이 전문독서가 아닌 ‘삶을 위한 자유독서’를 꿈꾼다. 보직교수들은 어떤가? 회의에 파묻혀 연구를 위한 전문독서를 할 시간이 없다고 소리를 높인다. 그런가 하면 소비적 여가를 즐기는 교수집단들은 자신만의 인생의 낙을 실천하는 데 몰두한다. 이것이 대학교수들에게 제2의 자연이 된 독서 위기의 단면이다. 제2의 자연이 된 교수들의 독서 위기 치료제는 없다. 그저 아름다운 휴머니티 구현을 위한 ‘최소독서에 대한 요청’이라는 노래 부르기 이외엔 방법이 없다. 문제의 심각성은 위에서 언급한 교수 그룹에서 전문독서 이외에 인문예술에 대한 최소독서가 생각보다 빈곤한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굳이 변명거리를 찾는다면, ‘XXX 교수라고 호명할 수 있는 개별자’의 특수 문제가 아니라 자유 탐구자 시대에서 기능화된 노동분업 사회로 이행의 운명적 부수 현상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교수집단의 독서 위기를 부정하는 논거가 될 수는 없다.    

대학의 독서교육에서 독서 위기는 방치되고 있다. 어느 대학에든 <독서와 토론>이 있고 교양대든 도서관이든 다양한 방식의 독서클럽을 운영한다. 평가할 만한 일이다. 무엇인가 한다는 점에서. 무엇인가 한다는 것은 ‘취업 예비학교가 되어버린 대학’에서 규칙적 독서가를 만들기 위한 고군분투(孤軍奮鬪)를 말한다. ‘목적형 독서’에 매달리는 학생들을 다독이며 분투하는 몸짓에 박수를 보내지만, 아쉽게도 평가주의를 버리는 용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묻고 싶다. 왜 <독서와 토론>이나 <독서와 글쓰기>와 같은 교과목에 상대평가를 고수하는지. 그것이 진정 교양독서교육의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하는데 불가피한 수단인가? 독서에 관한 한 어떤 종류의 ‘평가주의’도 버려야 한다. 자유독서를 전문독서 방식으로 보는 그 눈을 제발…. 평가주의라는 교육적 신념, 아니 종교화에 그토록 미련이 남는다면 P/F로.

교양독서교육은 자유독서의 이념으로, 자기이해와 자기형성을 위한 교양독서, 자유독서를 허해야 한다. 주체가 없는 자유독서교육이 주체를 만드는, 자유인을 만드는 교양독서교육이다. 독서교육에 열을 올리는 대학, 심지어 책 읽는 사람을 키우는 대학임을 표방하는 곳에서도 평가주의에 빠져 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평가주의가 <글쓰기 클리닉센터>을 만들어 냈지만, <독서 클리닉센터>와 같은 교육행정 행위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평가주의의 불안전한 작동인지, 자유독서교육 이념에 대한 최소인식의 표현인지... 

논자가 볼 때 분명한 것은 최소독서를 하는 교수라면, 기능인과 자유인의 균형을 추구하는 교육자라면, 자유인의 이념을 여전히 존중하는 지성의 소유자라면, 오늘날 대학의 교양독서교육이 ‘위기’라는 것을 안다. 그리고 무엇이 길이고 어떻게 그 길에 들어서야 하는지를 알고 있다. 그들은 대학의 교양독서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이 대담한 상상력, 정책적 구상력, 깃발을 드는 실천력에 있다는 것도 그들은 명료하게 인식하고 있다. 허튼소리, 값싼 ‘위기의 수사학’으로 치부하는 쉬운 선택도 있다. 하지만 교양독서교육이 ‘모든 계절을 독서의 계절’로 만들길 원한다면, 무엇이 진실인지 검토해야 한다. 진지하게.            


이하준 편집기획위원/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독일현대철학

한남대 탈메이지교양대학 철학교수로 베를린 자유대에서 아도르노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동서철학회 부회장, 현대유럽철학 편집위원, 한국연구재단 전문위원, 대전인문예술포럼 부대표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관심 분야는 사회철학, 사회이론, 문화예술철학, 고전교육 등이다. 저서로는 『부정과 유토피아』, 『아도르노: 고통의 해석학』, 『아도르노의 문화철학』, 『호르크하이머의 비판이론』, 『호르크하이머: 도구적 이성비판』, 『역사철학, 21세기와 대화하다』(공저) 등이 있으며, 그 외 고전교육 및 예술 관련 책도 다수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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