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의 개혁에 대안 대학은 참조틀이 될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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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학의 개혁에 대안 대학은 참조틀이 될 수 없을까?
  •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국문학
  • 승인 2020.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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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송우 칼럼]

코로나19를 맞으면서, 한국 대학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 이제 대학도 분명 체질 개선을 시작해야 할 기로에 서 있다. 교수강의 위주의 수업, 취업을 위한 직업 양성소, 서열화된 대학, 학벌 중심의 사회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고 있는 대학제도 등 대학이 안고 있는 적폐는 쌓여만 가고 있다. 이대로 계속 간다면, 한국 대학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을까?

어떤 방향으로 한국 대학이 나아가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해 지혜로운 대안을 찾아야 할 시점이다. 우선은 공룡처럼 비대해진 현재의 멀티 유니버시티 자체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기존의 대학은 그동안 정부의 지원 정책에 목을 매달고 시달리면서 자율성을 잃어버렸다. 자율성 없이는 창조적 개혁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므로 기존 대학의 체질 개선을 위한 새로운 대안의 모색이 필요하다. 그 대안의 하나를 대안 대학의 교육에서 찾을 수는 없을까? 기존 대학들이 대안 대학의 형태로 모든 것을 바꾸어 나갈 수는 없지만, 대안 대학의 운영과 정신에서 기존 대학의 개혁을 위한 참조틀을 마련할 수는 있을 것이다. 대안 대학의 출발 자체가 기존 대학이 지닌 문제의식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대안 대학은 세계 여러 곳에 많지는 않지만 산재해 있다. 덴마크의 폴케호이스콜레(Folkehojskole), 국제 시민학교(International People’s College), 프랑스의 에콜42(Ecol42), 미국의 미네르바 스쿨(Minerva School), 그리고 한국의 지식순환조합 등이다.   시민대학 또는 평민대학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고 있는 폴케호이스콜레는 덴마크 민중들이 세운 역사가 오래된 배움터이다. 철학자 그룬트비의 사상을 바탕으로 크리스튼 콜이 1844년에 설립해 현재 65개의 다양한 학교가 운영되고 있다.

대부분의 폴케호이스콜레는 기숙학교로 운영된다. 함께 살고, 함께 공부하고, 함께 일하면서 공동체성을 기른다. 모든 일은 대화로 풀어나간다. 시험이 없는 비경쟁적 환경이라도 학생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적극적으로 다양하게 시도하며, 이런 경험을 통해 자기 길을 찾아간다. 폴케호이스콜레는 이런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사회로, 또는 다른 교육과정으로 나아가도록 돕는다. 이 학교는 당시의 덴마크가 처했던 국가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현재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이 많다. 국가적 현안을 대학이 떠안고 해결책을 선두에서 모색해 나갈 때, 대학은 스스로 개혁의 고삐를 당길 수 있다는 것이다.

국제 시민학교는 이름 그대로 여러 나라에서 온 학생들로 구성된 국제학교로, 실천하는 세계 시민을 배출한다는 목표로 설립되었다. 이 학교는 다양한 워크숍 프로그램은 물론 다양한 세계 문화를 체험하는 행사와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교육과정으로 유명하다. 현재 국내 대학들도 인재 양성의 목표를 소위 글로벌 인재 육성이란 기치를 내걸고 있다. 그래서 국내 학생들의 해외 연수 프로그램의 활성화와 많은 유학생을 유치해서 국제적인 대학으로의 위상을 갖추어 나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대학들의 유학생 유치는 대학의 재정을 보충하기 위한 유학생 유치 이상의 의미가 없다. 실질적으로 다양한 세계인들이 함께 모여 세계 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은 뒷전이다. 이런 국제 시민학교가 지니는 의미를 실질적으로 현실화해 나갈 수 있다면, 대학 개혁의 한 부분을 담당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스의 에콜42는 자비에 니엘과 니콜라스 사디락이 설립한 학교로 프랑스를 비롯해 18개국에 캠퍼스를 가지고 있으며, 무료로 코딩 훈련을 하는 학교다. 24시간 일주일 내내 열려있는 이 캠퍼스에서는 학생들이 다른 학생들과 프로젝트를 같이 수행하며 코딩을 배운다. 이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교수이기도 하며, 공식적으로 채용된 교수가 없고 학위도 없으며, 심지어 학비도 없다. 이런 대학의 시스템을 온전히 바로 도입하긴 힘들겠지만, 이런 시스템이 지니는 학생 중심의 가치를 원용해볼 필요는 있다.

강의실 없이 7개국의 기숙사에서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미네르바 스쿨은 지식 습득 위주와  교수 중심 교육에서 벗어나 혁신적인 교육을 하기 위해 2012년 벤처 사업가 벤 넬슨이 설립한 혁신 학교다. 미네르바 스쿨은 자체 제작 플랫폼인 포럼으로 실시간 양방향 온라인 수업을 한다. 학생들은 책이나 논문 등을 읽고 공부를 한 후에, 포럼을 통해 교수와 토론 위주의 수업을 진행하는데, 토론은 주로 학생들이 주도한다. 그리고 포럼과 함께 기숙사가 있는 나라들이 학생들의 다양한 문화 체험과 기업과의 프로젝트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교육에 참여한다. 미네르바 스쿨의 철학은 우리 시대의 가장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이는 강소대학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모델이다. 그래서 한국 대학들이 두고두고 고려해야 할 대상이다.

한국에도 대안 대학 운동이 시작되고 있다. 여러 시도들이 있지만,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식순환조합이다. 지순협은 대학이 무너지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오늘날의 대학은 기업화되고, 취업률을 기준으로 순수학문의 통폐합이 강행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의 학문, 진리의 추구 기능이 사라졌고, 우리 사회 전체가 신자유주의화 되었기 때문에 대안교육으로 문제를 풀어보고자 만들었다.

지식순환조합은 공감과 협력을 교육 이념으로 내세운 학위 없는 2년제 대안 대학이다. ‘모두를 위한 교육’, ‘모두에 의한 교육’으로 대학 교육의 대안을 제시한다. 학생들은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에 대한 시험 대신 ‘학예발표회’를 통해 평가를 받는다. 인문학과 자연과학, 사회과학, 문화예술 등을 엮어서 가르친다. 역사와 진화론, 정치경제학을 함께 공부한다. 분과학문 테두리 안에 갇혀 있을 때는 볼 수 없었던 것을 보게 한다. 이론 과정은 철저히 학문 간 융합과 통섭이다.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예술 분야를 넘나들며 경계를 허물고 융합된 학문으로서 배운다. 일상의 경험과 지식이 전문지식과 만나 학문 사이의 경계를 허물어 똑똑하면서 따스한 인간미를 갖춘 인간으로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안 대학들의 공통점 중 하나는, 학생들이 교육과정에서 지식을 능동적으로 습득하며, 그 경험이 결국 졸업 이후에도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훈련으로 체화되어 지속된다는 것이다. 이런 교육과정을 경험하고 졸업한 학생들은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더욱 독립적으로 적응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려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지금 한국 대학은 코로나19 이후의 시대를 주도할, 세상을 변화시켜나갈 인재 양성이 가능하게 대학 체질을 바꾸어 나가야 한다. 대안 대학들이 보여주는 교육방식과 지향점이 오늘날 대학이 안고 있는 모순을 개선하고, 대학의 작은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는 없을까?


남송우 논설고문/부경대 명예교수·국문학

부경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로 부산대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평론부분에 「윤동주 시에 나타난 자기의 문제」로 당선, 평단에 나왔다. 평론집 『전환기의 삶과 비평』, 『다원적 세상보기』, 『생명과 정신의 시학』, 『대화적 비평론의 모색』, 『비평의 자리 만들기』, 『이것저것 그리고 군더더기』 등이 있다. 부산작가회의 회장, 부산문화재단 대표이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인본사회연구소 이사장으로 활동 중이다. 2019 부산시 문화상 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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