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망다랭』 해제…“어떤 의미에서 문학은 삶보다 더 진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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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망다랭』 해제…“어떤 의미에서 문학은 삶보다 더 진실해”
  • 이송이 부산대·불문학
  • 승인 2020.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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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 책을 말하다_ 『레 망다랭 1&2』 (시몬 드 보부아르 지음, 이송이 옮김, 현암사, 각 636, 600쪽, 2020.08)

▲ 시몬 드 보부아르
▲ 시몬 드 보부아르

전 세계적으로 크게 반향을 일으킨 미투 운동으로 인해, 학계에서도 대중에게도 점점 더 소외되어가던 페미니즘이 최근 새롭게 조망되고 있는 추세이다. 학계의 연구대상이나 마초들의 비웃음의 대상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가 21세기 초엽에 파리의 길거리 벽화에 등장하는 대중적인 인물로 다시 떠오르고 있는 사실 역시 그 증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제2의 성』이 페미니즘의 성경이라 할 수 있는 만큼, 국내에서 보부아르는 주로 페미니즘 사상가, 철학가로 인지되고 있다. 하지만 보부아르는 5권의 장편소설(여기에 더해, 작가 생존 시 출판이 보류되었던 자전적 소설이 올해 출판을 기다리고 있다.), 2편의 단편집, 다수의 자전적 에세이를 쓴 문학가로 서구 문학계에서 단단한 입지를 갖고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실제, 보부아르의 소설들은 실존주의와 페미니즘 사상을 극화시켜 전개하고 있고 대부분이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실존주의와 페미니즘을 여성의 관점에서 쉽게 이해하는데 유익한 길잡이가 되고 있다.

1954년 출판된 보부아르의 장편 소설인 『레 망다랭』은 같은 해에 프랑스 문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다고 할 수 있는 공쿠르 상을 받기도 했다. 이 수상으로 인해, 보부아르는 문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소설가가 된 셈이다. 『레 망다랭』은 2차 세계 대전이 막 끝나고 냉전시대가 막을 연 시기의 프랑스를 배경으로, 앙리, 되브뢰유, 안, 폴 등과 같은 여러 등장인물들을 통해, 당시 지식인들의 사랑과 갈등, 좌절을 대하드라마처럼 펼쳐 보여주는 소설이다. 2차 대전 중 레지스탕스로 활동했던 프랑스의 많은 지식인들은 전후에 공산주의 체제를 이상적으로 여겼으나, 점차 독재로 변해가는 소련의 현실을 외면할 수 없었으며, 본격적으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거대 세력으로 성장하는 미국에도 동조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레 망다랭』은 당시의 프랑스 지식인 사회가 느끼는 고민과 갈등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실화적인 소재로 인해, 프랑스 독자들은 연예인만큼이나 대중적인 인기를 누렸던 철학가, 문학가들의 모습을 『레 망다랭』에서 발견하고 더욱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그래서 보부아르가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일부분을 담고 있는 “안”을 제외하고는 등장인물들은 실제 인물들과 관련이 없다고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프랑스 독자들은 스타 철학가와 문학가들의 흔적을 등장인물들에게서 발견하곤 했다. 따라서 앙리는 『이방인』으로 국내 독자들에게도 낯설지 않은 작가이자 철학가인 알베르 카뮈를, 뒤브뢰유는 위대한 실존주의 철학가이자 문학가이며 보부아르의 평생의 동반자였던 장 폴 사르트르를, 루이스 브로건은 보부아르의 연인이었던 미국 작가 넬슨 올그런 - 사후 연애편지가 출판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 을, 스크리아신은 헝가리 출신의 영국 작가 아서 쾨슬러를 모델로 했다고 공공연히 간주되었다. 같은 관점에서, 앙리의 신문 “레스푸아”는 당시 카뮈가 주간이었던 신문 “콩바”로, 앙리와 뒤브뢰유의 불화는 실제 있었던 카뮈와 사르트르의 논쟁으로 해석되기까지 했다.

한편, 소설의 제목인 “레 망다랭”은 원래 중국의 관료들을 가리키는 프랑스 명사인데, 특권층 지식인들을 폄하하여 지칭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바로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레 망다랭』은 인류의 평화를 위하며 계급 없는 세상을 꿈꾸면서도 대의에 반하는 행동을 하는 지식인들,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레 망다랭』은 정치적 소재를 다루는 참여 문학 계열의 소설이 흔히 보여주는 단순한 선악 구도에서 벗어나 냉소적이지만 비판적 태도로 현실을 더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는 소설인 셈이다. 따라서 21세기의 독자들은 『레 망다랭』을 통해 참여를 더욱 현대적인 관점에서 고찰하는 보부아르의 태도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레 망다랭』의 세계는 세상을 구하겠다고 날뛰는 남자들과 이 남자들 때문에 울고 미쳐가는 여자들로 나누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소설 속에서 평등한 유토피아를 꿈꾸는 남자들, 나치의 만행과 소련의 강제수용소에 분노하는 남자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여자들을 또 다른 하위 계급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정해 놓은 틀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한정하고 고통을 받는다. 따라서 내내 남자들에게 모욕을 당하면서 그저 울고불고 참고 견디는 『레 망다랭』의 여자 주인공들은 페미니스트 작가들의 당당한 여주인공들의 모습에 익숙해진 21세기의 독자들을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라 생각된다. 『레 망다랭』이 출판되었던 50년대 중반에도 이미 여주인공들의 묘사에 대해 불만이 제기되었는데, 보부아르는 자신의 주위에 있는 여성들을 그대로 묘사했을 뿐이라고 이 불만에 답했다. 어쩌면 보부아르는 프랑스의 가부장적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들을 소설에서 제시함으로써, 1944년에야 처음으로 여성이 투표권을 갖게 된 프랑스 사회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등장인물들의 위계적인 태도는 국가나 인종의 분류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남아메리카의 원주민을 경멸하는 관점, 프랑스의 국제적인 위치에 대한 무의식적인 자부심 등은 등장인물들이 무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평등의식의 한계, 즉 당시 프랑스 지식인들의 평등의식의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레 망다랭』이 출판될 시기의 프랑스 문학계는 기존의 전통적인 소설을 탈피한 새로운 소설, 후에 “누보로망”이라 불릴 소설들이 등장하기 시작할 때였다. 고전적인 방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는『레 망다랭』을 혁신적인 소설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이 소설의 전개 방식이 매우 고전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레 망다랭』은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주인공 앙리의 관점과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되는 주인공 안의 관점을 번갈아 보여주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3인칭 시점이 그렇듯이, 앙리의 이야기가 객관적이며 공적인 느낌을 준다면, 1인칭 시점의 안의 이야기는 훨씬 주관적이며 은밀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소설 속의 다양한 사건들은 안의 관점을 통해 더 완전한 진실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인다. 결국 보부아르는 1인칭으로 서술하는 여주인공을 통해, 여성에게 목소리를 돌려주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주관적이며 사적이라고 흔히 폄하되는 관점, 그래서 여성적이라고 평가되는 관점이 어떤 사실이나 사건의 진실에 접근할 수 있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함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레 망다랭』은 출판되자마자, 호평과 악평을 동시에 받은 소설로 유명하다. 경멸의 의미로 “전형적인 여성 소설”이라는 악평을 받기도 했으며, “미래 세대가 이 소설을 통해 인류가 과거에 했던 일과 할 수도 있었던 일을 배우게 될 것”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평가들이 알려주는 것처럼, 『레 망다랭』은 21세기의 독자들에게 아주 특별한 시간 여행을 약속하는 소설이다. 『레 망다랭』은 역사적 사건들을 통해 인류의 과오를 알려주며, 여성의 관점과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진실을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소련”이 역사책의 단어로만 남게 된 현재에도, 『레 망다랭』의 지나간 이야기들은 이차대전 후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철 지난 고민으로만 느껴지지 않는다. 문학의 유효성, 지식인의 정치 참여, 성차별, 평등의 주장 뒤에 교묘히 감춰진 우월주의 등은 특별한 울림으로 오늘날의 문제들과 공명하며,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송이 부산대·불문학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파리 8대학에서 마르그리트 뒤라스와 한국 현대 여성작가 비교 연구로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부산대학교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타자의 글쓰기 - 레즈비어니즘과 여성적 글쓰기 : 상호텍스트성과 메타페미니즘 - 니콜 브로사르의 『여명의 바로크』, 『연한 보랏빛 사막』을 중심으로」, 「징후와 잉여, 시체와 유령 사이의 여성성-동서양의 흡혈귀 서사를 통해 나타난 여성의 이미지 연구: 〈죽은 연인〉 〈박쥐〉를 중심으로」 등 다수의 논문과 저서 『이중언어 작가 : 근현대문학의 트랜스내셔널한 기원을 찾아서』(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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