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지속적인 변모 속에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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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은 지속적인 변모 속에 존재한다
  • 임병태 기자
  • 승인 2020.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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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현자에게는 고정 관념이 없다: 철학의 타자 | 프랑수아 줄리앙 지음 | 박치완·김용석 옮김 | 한울아카데미 | 368쪽

문화적 격차와 편견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타자와의 비교다. 저자는 그동안 동양의 지혜를 서양의 철학과 대면시켜 제3의 길 위에서 새로운 철학, 즉 비교 철학의 개척을 시도해 왔다. 이 책에서 저자는 선과 악, 은폐와 비은폐, 내재성과 명증성, 합리성과 비합리성 등을 논의의 기본 틀로 구성해 동양의 지혜를 새로운 가지성(intelligibilit)으로 끌어올려 철학의 미래상으로 제시함과 동시에 비교 철학의 지평을 더욱 확대한다.

저자는 서양 철학이 “유럽적 이성”을 버리고 동양 철학과의 대면을 통해 그동안 동양 철학에 대해 가져온 선입견들을 재고하지 않는다면 서양 철학은 좌초하고 말 것임을 강조한다. 서양의 철학이 관점을 세워 그 나름의 관념을 만들고, 그 관념이 때론 유지되고 때론 도전 받으면서 늘 편파성에 치우쳐 있었다면, 동양의 지혜는 역으로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을 모토로 일상에 천착했다. 이는 특정한 관념에 의해 역사를 고정시키려 하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변화하는 역사는, 더더욱 사유의 역사는 ‘역사’를 가질 수 없다. 공자를 비롯해 동양의 현자들이 “세상에 대해 그 어떤 편견적인 시각을 투사하지 않으면서도 세상 자체에 접근”하는 것을 지상과제로 삼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저자는 이 같은 시각에서 “현자에게는 고정된 ‘입장’이 없다”고 주장한다. 현실은 지속적인 변모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현자의 행위 또한 그러한 것이다.

▲ 프랑수아 줄리앙
▲ 프랑수아 줄리앙

총8장으로 구성된 제1부에서는 동양의 ‘지혜’를 서양의 ‘철학’과 비교하여 이데아, 실체, 신과 같은 ‘최초의 관념’이 존재하지 않음을 강조한다. 동양의 지혜 속에 이렇게 최초의 관념이 없다는 말은 곧 서양의 철학에서처럼 어떤 특정 관념을 내세워 사유가 어느 입장의 편을 들고, 그렇게 특정한 방향과 개별적 관점에 빠져 끝없이 논쟁을 야기하는 일이 없었다는 뜻이다. 최초의 관념과 고정된 진리에 집착하여 ‘버리고’, ‘배제하는’ 것이 서양 철학의 역사였다면, 동양의 지혜는 모든 현실과 가능성을 두루 취하면서도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말하면, 동양의 지혜는 주장하고 설명하며 증명하는 것에 치중하기보다 스스로 깨달아 세계(天)와 하나가 되는 것을 사유의 제일 모토로 삼은 것이다. 저자가 중용, 변화, 과정, 빔(虛), 침묵, 포괄, 조절, 다양성, 총체성 등을 동양의 지혜를 새롭게 해명할 수 있는 개념으로 제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에게 비친 동양의 지혜는 특정 관념을 통한 사유의 체계화만을 지향해온 서양 철학과 비교해볼 때, “특수화, 분류, 정돈 이전의 말(충고)”로 사유의 ‘또 다른 길’, ‘또 다른 가능성’을 개척해온 셈이다.

▲ 원서

제2부에서는 동양의 지혜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도(道), 즉 ‘그러함(天然)’의 특징에 대해 분석한다. 제1~2장에서는 ‘그러함’을 참/거짓, 선/악, 삶/죽음, 자기/타자 등과 같은 분리·구분을 타파하고 ‘존재자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 규명하면서 장자의 나비의 꿈을 예로 우리가 사물을 대할 때 ‘관점의 세분화’보다는 ‘총체적 시각’이 중요함을 역설한다. 이어 제3장에서는 바로 그러한 ‘그러함’을 따르는 자가 곧 현자(賢者)인데, 그의 시각은 전혀 편파적이지 않고 늘 “조화”로우며, 현자는 사물을 비롯하여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하늘의 그러함을 따르는 자라고 명명한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이와 같은 ‘그러함’에 도달하기를 희망한다면 “그러함을 스스로 그러함 속에서 자각하는 일”밖에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동양에서 말하는 사유의 길, 즉 도는 이렇듯 집착과 편파성에서 벗어나 철저히 개방성, 동등성, 통일성을 기반으로 ‘자발적’으로 추구되는 것이다(제4장).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동양의 지혜는 서양인의 시각으로 평가한 상대주의와도 거리가 멀며(제5장), 더더욱 회의주의와도 구분되어야 한다(제6장). 제7장에서 저자가 “본시부터 한계가 없는 도”를 일그러진 언어와 상투적인 표현을 통해 포착해보려는 시도를 헛된 일이라고 경계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마지막 제8장은 제2부의 결론이면서 동시에 이 책 전체의 결론이기도 하다. 어떻게 기존의 철학 대(對) 지혜 간의 대척을 완화시킬 것인가? 그 답은 그동안 상호 간 대화 부재로 벌어진 틈을 좁히기 위해 대화(dia-logue)하는 것, 분리(dia)에 대해 서로 화답(和答)하며 이제는 타자(자체적으로 논의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귀 기울이며 사유의 새로운 길을 쇄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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