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피해 이야기는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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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 이야기는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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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 가려진 피해자들의 역사를 말하다 | 우에노 지즈코, 아라라기 신조, 히라이 가즈코 엮음 | 서재길 옮김 | 어문학사 | 456쪽

이 책은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라는 관점에서 점령군 ‘위안부’와 일본군 ‘위안부’의 위치를 살핀다. 또한 전쟁 상황에서의 비대칭적인 권력관계 속에서 연애, 매춘, 강간을 연속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를 여성의 에이전시와 관련지어 논의한다. 책에서는 주의 깊은 공감적 청자가 위치해 증언을 가능하게 하며 피해자의 에이전시에 대해서도 언급하는 등 인간과 인간이 만드는 복잡한 역사를 섬세하고 치밀하게 비교사의 관점에서 전쟁과 성폭력을 다룬다.

전쟁과 성폭력에 관한 연구는 1991년 일본군 ‘위안부’였던 김학순 할머니가 실명을 밝히면서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재판을 제소함으로서 시작되었다. 이로써 1991년부터 전시 성폭력은 역사학에서 다루는 대상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아시아발의 전쟁과 성폭력 연구는 세계 각지로 비화해 각국의 전시 성폭력 실태 연구가 진전됨으로써 우리가 비교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축적했다. 그러나 전쟁과 성폭력 연구는 기억과 증언이라고 하는 문제가 있었다.

▲ 페미니스트이자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
▲ 페미니스트이자 사회학자인 우에노 지즈코

성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경험이 비대칭적이며, 가해자도 피해자도 기록을 사실로서 남기는 경우가 드물다. 가해자에게는 스티그마가 되고, 피해자에게는 트라우마인 동시에 스티그마가 되기 때문이다. 또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인지 갭이 현저하게 크며, 피해자를 스티그마화하는 젠더 규범하에서 피해자의 증언은 억압되기 십상이다. 피해자의 침묵에 의해 가해자는 면책되었고 피해자는 구제받지 못했다. 그렇다면 성폭력 피해의 이야기는 어떻게 가능해지는가. 증언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은 어떠하며, 무엇이 이야기되고 무엇이 이야기되지 못하는가. 여기에 이야기를 듣는 이는 어떻게 관여하며 이야기는 어떻게 다루어져야 하는가. 이같은 과제에 응답할 것이 요청되고 있다. 이 책은 증언이 억압되어 침묵함으로써 가해 사실이 면책되지 않도록 비교사의 관점에서 기억과 증언을 다룬다.

책은 세 가지 분야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한다. 첫 번째는 전쟁에 수반되는 성폭력에 대해서 '통제가 불가능한 전시하에서 일어나는 병사의 일탈 행위'가 아닌 강간이 전쟁에 수반되었음을 말한다. 두 번째로는 기억 속에서 말할 수 있는 경험과 끝내 말할 수 없는 경험으로서의 선택적 망각 속에서 '다음 세대로 국민적 기억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하는 과제에 직면한다. 세 번째로 비대칭적인 성 규범에 대해 묻는다. 가부장적 젠더 규범에서는 피해자가 ‘빈틈을 주었다’고 책망을 당하고 ‘유혹자’로 구축되어 도리어 ‘수치’를 의식하게 되기에 피해자가 침묵함으로써 역사적 사실로 기록되지 못한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됐다. 제1부 「‘위안부’를 이야기하는 방법」에서는 증언과 기억에 관련된 문제를 다룬다. 제2부 「이야기할 수 없는 기억」에서는 무엇이 이야기를 억압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그 이면을 드러낸다. 제3부 「역사학에 대한 도전」에서는 방법론적 과제와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 책은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라는 시도로 전쟁과 성폭력 연구에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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