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연경의 러시아 대표 문학 깊이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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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경의 러시아 대표 문학 깊이 읽기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9.20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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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19세기 러시아 문학 산책: 근대, 인간, 소설, 속악[양장] | 김연경 지음 | 민음사 | 228쪽

푸시킨, 고골, 레르몬토프, 투르게네프,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체호프 등 19세기 러시아의 대표 문학 작품을 다룬 연구서다. 이 책에서 다루는 작품은 러시아 문학의 정수라 할 러시아 근대 소설의 주요 작품들로, 「스페이드 여왕」, 『페테르부르크 이야기』, 『우리 시대의 영웅』, 『아버지와 아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 체호프의 단편 등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소설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 작품들에 나타나는 근대와 함께 탄생한 인간-개인의 속물성에 주목하며 특유의 독창적이고 깊이 있는 해석을 펼친다. 이 책의 토대는 지난 15여년 동안 서울대에서 러시아 문학을 강의하며 학술지에 발표한 여러 편의 논문이다. 그러나 연구서이면서도 학부생을 위한 교과서적 성격을 갖도록, 또 러시아 문학을 사랑하는 독자도 흥미를 갖도록 작가의 전기를 소개하고 전체 형식과 문체를 대폭 수정했다. 학술 정보와 전문 자료가 필요한 독자를 위해 책 끝에 참고 문헌을 붙였다.

러시아의 국민 시인 푸시킨의 삶과 문학 전반은 근대의 초입으로 들어선 러시아의 운명과 맞닿아 있다. 그러나 운문 장르에서 산문 장르로 넘어갈 때 그의 혁신성은 더 부각된다. 푸시킨의 문학 활동이 절정을 이룬 1820~1830년대에 서유럽 문학을 모방한 다양한 소설이 쏟아지는데 이들은 서유럽의 감상주의와 낭만주의의 아류작에 가까웠다. 고도로 압축된 형식과 엄격한 운율의 준수를 요구하는 귀족 장르인 시에 비해 당시 소설은 주저리주저리 말이 많은 ‘평민-민중 장르’였다. 이 무렵 이미 ‘위대한 시인’의 직함을 갖고 있던 푸시킨이 산문에 손을 댄 것은 그 자체로 ‘내려섬’이라 할 대사건이었다. ‘동화’의 시대가 이미 저물고 있음을 명민한 푸시킨은 천재적인 직관력으로 간파했다.

▲ 푸시킨
▲ 푸시킨

고골은 러시아 문학에서 ‘정신’에 맞서 ‘육체’를 어떤 미화도 없이 소설화한 최초의 작가다. 대도시-페테르부르크의 ‘생리학’과 더불어 가난한 하급 관리, 즉 ‘작은 인간’의 삶을 다루며 확립된 고골적 생리학-유물론은 문학사적 관점에서 혁명적인 성취였다. 세계 문학사가 아끼는 고골의 문학은 근대 세계의 풍경이 엿보이는 『아라베스키』(1835)에서 시작한다. 이 문집에 수록된 「넵스키 거리」, 「초상화」, 「광인 일기」, 뒤이어 발표되는 「코」(1836), 「외투」(1842) 등 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다섯 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 ‘페테르부르크 이야기’라고 부른다. 고골은 「넵스키 거리」에서 세계의 형상을 포착하고, 「코」, 「외투」, 「광인 일기」에서 자신의 인간학을 표현하며 「초상화」에서 자신의 작가적 고뇌와 이상을 드러낸다.

▲ 고골
▲ 고골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제목 그대로 한 ‘여자의 일생’을 다룬 소설이고, 우리는 안나의 최후에 관한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안나는 왜 자살해야 했는가. 안나는 어떤 인간인가. 그녀는 ‘인간’이기에 앞서 ‘여자’로 창조된 인물이다. 삶을 사유하지 않고 삶을 그 자체로 있는 그대로 살 뿐이고, 그 사회적 표현은 기본적으로 누군가의 딸이거나 어머니이거나 약혼녀이거나 아내이거나 정부, 하여간 ‘여자’일 뿐인 존재다. 톨스토이의 많은 여성 주인공 중 가장 입체적인 인물임에도 안나가 자신의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영역은 역시나 여성적인 것(불륜)에 국한된다. 그녀가 자신의 기존의 삶(각종 기만과 허위의 거미줄)을 파괴하면서까지 얻고자 했던 사랑은 새로운 삶의 동의어이고 그 쟁취의 과정이 곧 소설이 쓰이는 과정이다. '다 엇비슷하게 행복한 가정'은 가정 소설과 사회 소설의 종합인 『안나 카레니나』 속에서 '제각기 불행한 가정'에 비해 소설적 차원의 흥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작품의 제목을 대위법적 구성에 걸맞게 ‘두 결혼’에서 ‘안나 카레니나’로 바꾼 것은 소설가 톨스토이의 직관력을 보여 준다.

냉혹한 유물론자 체호프는 저 세계와 영혼이 아니라 이 세계와 몸에 주목했다. 훗날 문학사는 그를 클래식과 모더니즘 사이를 가르는 작가로 평가하고 도스토예프스키, 톨스토이와 나란히 대가의 반열에 올렸다. 그런데 세기말 작가로서 체호프의 문학은 이전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시작된다. 체호프의 소설은 대체로 ‘작은’ 사람의 ‘작은’ 공포, 즉 진부함의 공포에 지배된다. 그는 우리가 모두 ‘작은 인간’이며 이 ‘작음’은 인간 본연의 속성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생각 없이 살면서도 뭔가 깊은 생각을 한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뭔가 대단히 큰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생존을 위한 필요악과 같은 환상이 아닐까. 누구나 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죽는다는 사실에 저 진부함의 공포와 비극이 환기될 뿐이다. 이렇게 체호프는 인간과 세계의 ‘작음’을 ‘위’가 아니라 ‘밖’에서 그려내는 문학적 겸손함으로 19세기를 마감하고 20세기를 여는 작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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