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의 가치와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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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가치와 진로
  • 박지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서양사
  • 승인 2020.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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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 칼럼]

18세기 말에 영국의 정치인이며 정치사상가인 에드먼드 버크에 의해 기본 원칙이 마련된 보수주의는 자유주의 및 사회주의와 함께 지난 이백여 년간 인류의 정치적 삶을 주도해 왔다. 보수주의와 사회주의가 대척점에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공유하는 가치들 때문에 때로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보수주의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우선 심리적인 틀로 설명된다. 즉 사람들은 친숙한 것을 좋아하고 잘 알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변화를 싫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을 영국 보수당에 적용해보면 맞지 않는다. 보수당은 기존의 것을 보존하는 데에만 주력하지 않았고 급진적인 경제적, 정치적 정책의 실천자이기도 했다. 영국 최초의 유대인 수상인 벤저민 디즈레일리와 최초의 여성 수상인 마거릿 대처를 배출한 것은 바로 보수당이었다.

보수주의 원칙을 정리해보면 첫째, 보수주의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도 않고 이성적이지도 않다는 사실에서 시작한다. 자유주의자나 사회주의자들이 전제하는 이성적이거나 이타적인 인간은 추상 개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인간 본성은 정치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정치는 인간 본성에 반하는 방향이 아니라 그것에 따르는 쪽으로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이 보수주의의 입장이다. 이를테면 아이들에게 이타주의 교육을 시킴으로써 사회를 이타주의로 이끌 수 있다는 식의 시각을 부인하는 것이다.

둘째, 보수주의는 과거와의 단절보다는 과거로부터 배우는 것을 선호한다. 각 사회는 오랜 시간을 거쳐 발전한 복잡한 구성물이므로 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추상적 원칙들을 적용하여 고치려드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와 전통을 존중하다보니 보수주의자들은 그 나라의 역사를 소중히 여기는 애국적 정서를 강조하게 된다. 보수주의자들은 모든 사회 구성원을 통합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국가를 개인들의 계약 이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자유주의들과 확연히 다른 입장이다. 

셋째, 보수주의자들은 사회를 살아있는 유기체로 파악하며 그 때문에 사회 변화는 점진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가 유기체인 이상 살아남기 위해서는 변화가 필요하지만 급격한 변화는 생명체의 목숨을 앗아가며 모든 사람을 고통으로 내몰게 마련이다. 디즈레일리는 변화를 거부할 것인지가 아니라 그 변화가 “관습과 법과 전통과 양식에 걸맞게 진행될 것인지, 아니면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원칙에 따라 수행될 것인지”를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넷째, 유기체의 특성은 각 부분이 각기 다른 기능을 행한다는 것이다. 즉 머리, 심장, 다리 등이 인체 내에서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것처럼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계층과 집단들도 그들 자신의 특수한 역할이 있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사회 내에 존재하는 차이와 불평등은 자연스런 것이 되며, 보수주의는 실력주의로 나아간다.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건 간에 반드시 소수의 창조적인 사람과 대중의 구분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20세기 초에 활동한 보수주의 사상가 맬럭은 “셰익스피어의 펜이 햄릿을 쓴 원천이 아니었듯이 노동은 부의 원천이 아니다”라며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을 반박했다. 중요한 것은 유기체의 모든 부분이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불가결하다는 점이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고장 나면 그 유기체는 살아남을 수 없다.  

요즘 우리사회에서 보수주의는 일정 부분 자유주의와 혼동되고 있다. 실제로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많은 가치를 공유하는데 특히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옹호하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러나 뚜렷한 차이점도 존재한다. 가장 큰 차이점은 자유주의가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와 개인주의를 옹호하는 반면 보수주의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보수주의자는 자유를 질서와 의무라는 가치와 밀접히 연관시키고, 인간의 저열한 본능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권위, 강력한 법률, 안정된 정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21세기 초라는 현시점에서 판단할 때 사양길을 걷고 있는 사회주의와 달리 보수주의와 자유주의는 나름 선전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가 표방하는 원칙들이 현 시대와 어울리지 않는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21세기의 보수주의가 지난 200년간의 영광을 계속 유지할지는 장담하기 어려운 문제다. 하이에크는 〈나는 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라는 에세이에서 보수주의를 비판하는 가장 큰 이유로, 보수주의가 그 본성상 발전 방향을 제시해 줄 수 없다는 점을 들었다. 자유주의자의 입장은 결과를 예측할 수 없을 때라도 용기를 가지고 변화를 추진하는 것인데 반해 보수주의자들은 새로운 미지의 것을 불신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보수주의는 어떻게 미래를 개척해 나아가야 할까? 얼마 전 ‘인국공’ 사태에서도 드러나듯이 요즘 젊은이들은 ‘평등’이 아니라 ‘공정’을 최고의 가치로 받아들인다. 이 점에서 평등을 핵심 가치로 강조하는 사회주의는 이미 시합에서 뒤처진 것이 확실하다. 영국 보수당은 1970년대부터 ‘불평등해질 권리’라는 문구를 사용해왔는데, 불평등하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남보다 ‘더 잘 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말이다. 더 많이 노력한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세상을 요즘 젊은이들은 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노력만으로는 공정한 보상을 약속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 노력과 근면은 자기 몫이지만 재능은 많은 부분 타고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약자를 위한 안전망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선진 복지국가들의 경험을 잘 살펴보고 잘못된 전철을 따르지 않는 것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도덕적 해이와 재정 부담이다. 복지정책은 필연적으로 노력 없이 남이 내는 세금에 얹혀살려는 사람들을 낳게 마련이다. 영국과 스웨덴의 여론조사를 보면, 사람들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 대한 복지 지출을 싫어하며 무조건적인 복지의 확대를 반기지 않는다. 우리 정치인들이 새겨들을 대목이다. 복지국가의 또 하나의 문제점인 국가의 비대화와 재정 부담은 이미 우리 국민들도 실감하고 있는 사안이다. 근대 복지국가의 초석을 닦은 비버리지도 복지 ‘국가’라는 용어를 꺼려했다. 우리의 경우 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공부문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과세율이 오르고 있다. 과연 우리 국민들은 어느 정도의 세금을 부담할 용의가 있을까? 영국은 1970년대 노동당 정부 하에서 소득세의 최고세율이 83퍼센트까지 올랐는데 그 때문에 경제는 더욱 파탄에 이르렀다.

보수주의는 자유주의만큼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을 강조하지 않고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지만, 대처가 주장한 바와 같이 정부는 ‘작지만 강한 정부’이어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다 해결해 주겠다고 나서는 ‘유모 국가’에 의존해 살면서 자신의 삶을 개척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리는 도덕적 해이는 피해야 한다. 내 삶의 선택권을 내가 가지고 있고 내 삶에 책임지는 것이 인간적 삶의 기본임을 기억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사회, 그것이 바로 우리 젊은이들이 원하는 세상이다. (월간 '헌정' 2020년 9월 호에 게재된 글로 수정·보완했음을 밝힌다)


박지향 서울대학교 명예교수·서양사

서울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로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서양사학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뉴욕주립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프랫대학교, 인하대학교 교수를 지냈고, 동경대학교와 케임브리지대학교의 객원 교수를 거쳤다. 서울대학교 도서관장, 한국 영국사학회 회장, 국사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 『클래식 영국사』, 『대처 스타일』, 『슬픈 아일랜드』, 『영국적인 너무나 영국적인』, 『제국주의: 신화와 현실』, 『제국의 품격: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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