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오는 태양신을 기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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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오는 태양신을 기리는 날이었다
  •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 승인 2020.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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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연재: 연호탁의 말로 푸는 역사 기행(23)_태양을 기리는 날 '단오'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불교 경전중의 하나인 천수경은 이렇게 시작된다.
 
해(日)는 ‘陽 中의 陽’이므로 太陽이라고 불린다. 단오는 1년 중 양의 기운이 가장 왕성한 날이다. 태양이 하늘 가장 높은 곳에 떠있는 날이라 하여 天中佳節이라고 한다. 고려시대만 해도 단오를 수리, 수릿날이라고 불렀다. 왜일까? 수리는 해와 더불어 태양을 가리키는 우리말이다. 단오(端午)의 端자는 처음 곧 첫 번째, 午자는 다섯 五와 소리가 상통한다 하여 음력 오월 초닷새를 가리킨다.

▲ 김홍도(1745~1816, 영조 21년) 풍속화 도첩 중 씨름
▲ 김홍도(1745~1816, 영조 21년) 풍속화 도첩 중 씨름

단오 무렵이면 모내기를 위시해 각종 농작물의 파종 등 바쁜 농사일이 끝나고 이제 남은 일은 하늘님의 도움으로 풍년이 되기를 기원하는 일 뿐. 그동안의 수고와 마음 씀에 대해 스스로와 일꾼들(흔히 머슴이라고 했다)의 노고를 위무하는 차원에서 잔치를 벌였다. 물론 태양신을 기쁘게 하고 감사의 뜻을 전한다는 의식을 통해서였다. 단오는 태양신을 기리는 날이었다. 그래서 항간에서 수릿날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이날 주민들은 샤먼(shaman, 무당)을 불러 하늘에 제사 지내고 춤과 노래로 신을 기쁘게 하며 마을의 안녕과 주민의 행복을 기원하였다. 
 
태양을 기리는 날인 단오의 이칭(異稱)은 다양하다. 며느리날(경북), 미나리환갑날(경기 동두천), 소 군둘레 끼우는 날(강원 삼척 지방), 소  시집가는 날, 쇠 코 뚫는 날, 단양(端陽), 여아절(女兒節), 중오(重午), 중오절(重五節), 천중절(天中節), 천중(天中), 오월절(五月節)이라고도 불리며, 내가 36년 째 몸담고 있는 가톨릭관동대학교가 있는 강릉 땅 사람드르는 단오를 과부 시집가는 날, 돌베개 잠자는 날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이 이색적인 명칭들의 유래를 일일이 다 알지는 못하지만, 며느리날이라는 별명이 붙은 까닭은 단오날은 며느리가 친정을 찾아가 하루 종일 그네를 타며 놀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 혜원 신윤복이 그린 端午風情
▲ 혜원 신윤복이 그린 端午風情

앞 문장에서 “강릉땅 사람들은”이라고 하지 않고 “강릉땅 사람드르는”이라고 표기한 건 강릉사투리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복수형 어미 ‘-들’을 ‘-드르’로 발음한다는 점을 보이기 위해서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강릉말이 몸에 밴 토박이들은 “선상님드르는 어느 모테(~텡)이 사슈?”, “우리드르는 밥으 시나메 먹아”라는 식으로 말한다.
 
단오를 수릿날이라고 하는데 대해 『한국세시풍속사전』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첫 번째는 고려가요 ‘동동(動動)’에 단오를 수릿날이라고도 하였는데, 수리란 말은 상(上), 고(高), 신(神) 등을 의미하니 수릿날은 신일(神日), 상일(上日)이란 뜻을 지닌다. 우리나라 삼한시대 5월 파종기에 신령에게 제사지내며 풍년을 기원한 데서 유래하였다.
 
두 번째로 홍석모(洪錫謨)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단오는 세간에서 수릿날이라고 하니, 수리라는 것은 우리말로 수레라는 뜻이다. 이날은 쑥잎을 따서 곱게 빻아 멥쌀가루에 넣어 푸른빛을 내며, 두드려 떡을 만드는데, 수레바퀴 모양으로 만들어 먹었기 때문에 ‘수릿날’이라고 한다(端午 俗名戌衣日 戌衣者 東語車也 是日採艾葉 爛搗入粳米粉 發綠色 打而爲(作?)餻象車輪形食之 故謂之戌衣日).”라는 구절이 있다.

수리란 말이 상(上), 고(高), 신(神) 등을 의미하므로 수릿날은 신일(神日), 상일(上日)이란 뜻을 지닌다는 설명은 잘못이다. 세간에서 戌衣라 쓰고 수리라 일컫는 이 말이 우리말로 수레(車)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견해 또한 잘못이다.
 
유만공의 『세시풍요(歲時風謠)』 5월 5일조에 보면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단오 옷은 젊은 낭자(娘子)에게 꼭 맞으니(戌衣端稱少娘年), 가는 모시 베로 만든 홑치마에 잇빛이 선명하다(細苧單裳茜色鮮). 꽃다운 나무 아래서 그네를 다 파하고(送罷秋天芳樹下), 창포뿌리 비녀가 떨어지니 작은 머리털이 비녀에 두루 있다(菖根簪墮小髮偏). 단오옷을 술의(戌衣)라고 한다(端午衣曰戌衣).”

여기서는 端午衣曰戌衣 즉 단오 때 입는 옷을 戌衣라고 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端午는 戌이 되어야 한다. 단오 때 입는 단오빔을 술의(戌衣)라고 해석한 유만공의 할주(割註)에 따르면 술의란 태양신을 상징하는 거룩한 의상인 신의(神衣)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순조 때의 문신 김매순(金邁淳)이 열양 즉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1819년)에 중국에서는 단오날 멱라수(汨羅水)에 몸을 던져 죽음으로 자신의 지조를 증명한 초(楚)나라 회왕(懷王)의 신하 굴원(屈原)을 제사지내는 풍속이 있는데, 이날 밥을 지어 수뢰(水瀨: 물의 여울)에 던져 굴원을 기리므로 ‘수릿날’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대목 또한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이날 양지 바른 야산에서 자생하는 구설초(狗舌草)라는 이름이 독특한 나물을 뜯어 떡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고 했는데, 글자적 의미로는 개혓바닥풀이지만 솜방망이라 불리는 구설초는 어린 순을 나물로 해먹는 수리취(戌衣翠) 나물을 가리킨다. 

▲ 수레바퀴로 형상화된 태양신 수리야(인도 오디샤주 코나르크의 태양 사원)
▲ 전차를 탄 태양신 수리야

戌衣는 둘 다 태양을 가리키는 고대 범어 수리야(surya)의 음차어다. 가락국의 시조 이름 首露왕도 태양을 뜻하는 surya의 음차어다. 首陵이라고도 표기되는데 이 역시 동일한 말이다.


연호탁 가톨릭관동대·영어학

한국외대에서 영어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명지대에서 중앙아시아사 전공으로 두 번째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가톨릭관동대 관광경영학과 교수로 그동안 『중앙일보』에 ‘차의 고향’, 『동아일보』, 『중앙일보』, 『문화일보』 등에 칼럼 ‘문명의 뒤안, 오지 사람들’, 『교수신문』에 ‘욕망의 음식: 음식문화사’를 연재했다. 저서로는 『문명의 뒤안 오지의 사람들』, 『차의 고향을 찾아서』, 『궁즉통 영어회화』, 『중앙아시아 인문학 기행: 몽골 초원에서 흑해까지』, 『문화를 여행하다: Travel, Culture&People』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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