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의 역할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 『존 듀이의 경험과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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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의 역할을 고민하게 만드는 책, 『존 듀이의 경험과 교육』
  • 이상원 서평위원/서울대·통번역학
  • 승인 2020.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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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베르타스]

이 책은 존 듀이의 글 두 편과 역자 엄태동 선생님의 변론 글 한 편을 묶은 것이다. 존 듀이의 글은 1902년의 ‘아동과 교육과정’ 및 1938년의 ‘경험과 교육’이다.

두 편의 글은 36년의 시간차를 두고 쓰였지만 새로운 교육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 새로운 교육을 옹호하는 입장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동일한 맥락이다. 듀이의 새 교육 주장에 대한 비판이 얼마나 거셌는지, 새 교육 현장에서의 시행착오가 얼마나 많았는지를 보여준다고도 하겠다.

‘아동과 교육과정’은 교육의 두 축인 아동(즉 학생)과 교육 과정(즉 교과)의 관계를 설명하는 글이다. ‘아동의 개인적 특수성과 경험을 무시하고 최소화시킨 채 고정된 완성 형태의 교과를 강제’하는 전통 교육을 비판하고 ‘아동의 현재 경험 속에 내재하는 역동적 특질과 성장의 힘을 인정하고 이를 교육의 동력으로 삼는 것’이 새 교육의 특징이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교과(이는 오랜 세월 동안 여러 개인들이 해온 경험을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일종의 지도로 비유된다)를 무시한다거나 아동의 흥미에만 호소해 오로지 스스로의 힘으로 진리를 찾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여 새 교육의 잘못된 접근을 경고한다.

‘경험과 교육’ 또한 마찬가지로 ‘성인의 기준과 성인의 교과, 성인의 방법을 위로부터 그리고 외부로부터 부과’하는 전통 교육의 문제를 지적한다. 대안은 경험 중심의 교육이다. 학생 한명 한명이 물리적 사회적 환경에서 하고 있는 경험에 맞춰 교과 내용을 조절하고(상호작용의 원리), 앞선 경험을 바탕으로 뒤이은 경험을 조직하고 발전의 방향을 잡으라는 것(계속성의 원리)이다. 전통적 교육을 무조건 거부하고 비판하는 것만으로 새 교육이 실현되는 것이 아니며 외적 권위를 모두 배격하기보다는 혜안을 지니고 적절히 개입하는 교사가 효과적인 권위의 원천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한다.

70년대 후반부와 80년대 전반부에 초중등 교육을 받은 사람으로서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교과들 사이의 단절 문제이다. 워낙 과학에 관심이나 적성이 없어 더 그랬겠지만, 생물 교과에서는 모든 것의 기본이 세포라 하고 화학 교과에서는 원자라 하니 대체 세포와 원자는 무슨 관련인지 알 수가 없었다. 문과생을 위한 교과 내용이 워낙 제한적이었기 때문인지 물리와 지구과학은 도대체 무엇을 관심사로 삼는 학문인지 끝내 아리송하게 남았다. 교과들을 어떻게 결합해 세상의 구조를 이해해야 하는지는 학생 개개인에게 맡겨진 셈이었고 나는 그 과제를 고교 졸업 때까지도 달성하지 못했다.

대학에서 글쓰기 교양 교과목을 담당하는 선생으로서는 듀이의 경험 중심 교육 주장에 동조하면서도 이상화된 교사의 모습 앞에 움츠러들게 된다. 교사는 학생들을 면밀히 관찰해 정확히 파악해야 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교육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교사는 적절히 개입하면서도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아야 하고 알아서 하라는 식의 방임은 더더욱 안 된다. 교사는 멀리 내다보는 혜안을 지니고 현재의 경험이 장차 학생들에게 무엇을 실현시키고 무엇을 실현시킬 수 없는지 조망해야 한다…… 경험 중심 교육의 성패는 교사에게 달려 있는 것 같다. 도대체 누가 이런 교사 역할을 100% 해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일단은 이렇게 나를 위로하려고 한다. 교사 역시 학생으로서 교육받은 경험과 지금까지 교육해온 경험이 종합된 독자적인 존재이다. 교사의 이해력과 판단력은 기존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교육 경험이 축적될수록 확대 발전될 것이다.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완벽한 존재로 비쳐지고자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아니, 완벽한 존재가 되려고 하면 할수록 강요와 강압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 교육은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성장의 경험이다. 교사는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 안에서도 실수를 저지를 수 있지만, 학생들 앞에서 이를 인정하고 수정함으로써 이를 양측 모두에게 긍정적인 교육적 경험으로 변모시킬 수 있다.

선생 역할을 하는 사람은 늘 자기 존재에 대한 반성적 성찰이 필요하다. 선생이라는 이름 앞에 많은 권한과 권위를 인정하는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그렇다. 이 책은 그 성찰을 도와준다. 


이상원 서평위원/서울대·통번역학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와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학교 기초교육원 강의 교수로, 글쓰기 강좌를 운영하며 저서 『서울대 인문학 글쓰기 강의』, 『매우 사적인 글쓰기 수업』, 『엄마와 함께한 세 번의 여행』 등을 출간했으며, 『첫사랑』, 『살아갈 날들을 위한 공부』, 『안톤 체호프 단편선』과 같은 러시아 고전을 비롯하여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홍위병』, 『콘택트』, 『레베카』 등 80여 권의 번역서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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