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이 위험한 처방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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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소득이 위험한 처방인 이유
  • 김한나 기자
  • 승인 2020.09.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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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소개]

■ 기본소득은 틀렸다: 대안은 기본자산제다 | 김종철 지음 | 개마고원 | 168쪽
 

기본소득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소수의 몽상적 주장에 머물렀지만,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되면서 각광받더니, 코로나 사태를 맞이해서는 진지한 대안으로 논의되고 있다. 기본소득일 수 없는 재난지원금도 재난기본소득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가 하면, 보수정당인 미래통합당도 ‘한국형 기본소득’이라는 정책을 내세울 정도로 여기저기서 기본소득을 외친다. 이제 기본소득을 빼고는 미래의 정책을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기본소득은 우리가 닥친 많은 문제를 해결할 만능열쇠로 기대받고 있다. 특히 그 지지자들은 극심한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자본주의 체제를 근본적으로 사유하는 정치철학자 김종철은 기본소득이 대단히 잘못된 방향이라고, 그것의 약속과는 달리 양극화를 해소하고 어려운 처지에 빠진 이들의 삶을 돕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며, 선동적 정치가들에게만 이득이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기본소득이 도입되면, 기존의 현금 지출성 사회보장제도 상당 부분이 사라지게 된다. 예컨대 노인연금·아동수당·농민수당·실업급여 등의 기존 사회수당과 사회보험이 기본소득액보다 적으면 기본소득으로 대체된다. 그러나 기본소득제는 현금 지출성 사회보장제도보다 소득보장과 복지 사각지대 해소, 소득재분배, 소비증대 측면 모두에서 비효율적이다. 예컨대 한국은 2019년에 실업급여로 9조3000억 원을 지출했는데, 개인당 최대 월 198만 원까지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만약 이 9조3000억 원을 5200만 명 모든 국민에게 기본소득으로 나누어 지급하면 월 1만4900원짜리 기본소득이 된다. 2017년 기준으로 전체 현금 지출성 복지 금액이 약 73조 원 정도다. 이 돈으로 생계급여, 기초연금, 아동수당 등을 지급한다. 그런데 이를 5200만 명에게 지급하면 월 11만7000원밖에 되지 않는다. 받는 이들에게 실제적인 혜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소득재분배에서도 기본소득제와 사회보장제도의 차이가 크다. 세금을 걷을 때 부유층에게 세금을 많이 걷게 되면 소득재분배 효과가 생긴다. 이때는 기본소득과 사회보장제도의 재분배 효과가 같다. 그런데 그 재원을 모두에게 똑같이 나눠준다면 그때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반면 사회보장제도는 소득이 많은 이들에게 거둬 소득이 적은 이들에게 나눠주므로 재분배효과가 크게 나타난다. 즉 기본소득의 재분배 효과는 세금 징수에서만 나타나고 사회보장제도는 세금 징수와 지출 모두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고 소득재분배 효과는 지출 부분에서 더 큰데, 누진 소득세의 재분배 효과가 1이라고 하면, 사회보장제도의 소득재분배 효과는 3.12라고 한다.

소비증대 효과 측면에서도 기본소득제가 현금 지출성 사회보장제도보다 훨씬 비효율적이다. 부자들은 원래 쓸 돈이 충분하기 때문에 기본소득을 받아도 소비를 더 늘리지 않지만, 저소득층은 쓸 돈이 급하기에 그대로 소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기본소득론자들도 이러한 문제점을 알고 있기 때문에 기본소득이 충분한 액수가 되기 전에는 과도기적으로 현금 지출성 사회보장제도와 공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 제도는 소득세·법인세·부가가치세 등 같은 재원을 쓴다. 이 재원의 일부를 기본소득에 쓰게 되면, 결국 사회보장에 쓸 돈이 잠식되는 셈이어서 취약계층이 도움을 받기 더 어려워진다.

‘로봇이나 AI 등이 다수의 일자리를 없앨 것이므로 기본소득을 도입해 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 알파고 쇼크 이후 기본소득론자들은 이런 주장을 내세우며 공감을 얻었다. 그러나 저자에 따르면, 이는 ‘생산활동’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오는 잘못된 인식이다. 생산활동이란 분업과 분배가 같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기술발전은 분업을 재편하기에 기존 일자리를 없애긴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도 만든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누가 더 이득을 보고, 누가 더 손해를 보는지는 ‘권력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예컨대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다수의 배달 어플이 생기고, ‘라이더’들이 고용되었다. 하지만 어플의 개발자와 운영자들이 고수익을 누리고, 라이더들은 저임금을 받는 건 기술이 아니라 권력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다. 4차 산업혁명이 아니라, 사회의 권력관계가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건 사회의 권력관계를 바꾸는 일인데, 기본소득은 여기에 전혀 무관심하다는 비판이다.

저자가 제안하는 대안은 기본자산제다. 최근 기본자산제의 모습을 한 정책들이 여럿 제시되기도 했다. 정의당이 총선 공약으로 만 20세가 되는 모든 청년에서 3000만 원을 주자고 한 ‘청년기초자산제’도 그 하나다. 또 피케티는 저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서 만 25세가 되는 청년에서 성인 평균자산의 60%를 주는 ‘보편적 자본급여’를 주장했다. 이렇듯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에게 삶을 꾸려갈 수 있게끔 상당 액수의 자산을 주자는 것이 이 주장들의 골자다.

하지만 저자가 제안하는 기본자산제는 여기서 한 걸음, 아니 몇 걸음은 더 나아간 것이다. 여기서 기본자산은 “한 개인이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격체로 바로 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산”을 말한다. 이 자산은 한 사람의 ‘몸’과 같은 것이기에 “스스로 파괴하거나 혹은 비생산적으로 소비해버리거나 타인에게 팔거나 양도할 수 없도록 하고, 반드시 생산적으로만 활용되도록 한다.” 위에 나온 정의당이나 피케티의 제안과의 가장 큰 차이는 생산적 활용의 의무다. 때문에 이 자산은 20~64세 나이의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협동조합에 투자되는 식으로 생산적으로 활용되어서 개인의 경제적 자립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기에 이 제도는 그냥 복지제도가 아니며, 시장경제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과감한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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